그리운 얼간이
그리운 얼간이
  • 김동민
  • 승인 2006.04.05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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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 (소설가 · 문학평론가)
 

 

그는 요즘 무섭다. 세상이 무섭고 사람이 무섭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무섭다. 뾰족한 날을 세운 무기로 호시탐탐 공격할 기회만 노리고 있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잠시라도 허점을 보이면 당장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올 듯하다. 그래 팽팽한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
 한마디로 모두가 똑똑하다. 말 못하는 이가 없고 물으면 모르는 이가 없고 하지 못하는 이가 없고 물러서는 이가 없다. 너나없이 천재다. 전문가이고 잘났다, 정말.
 그런 세상 이런 사람들 틈새에 살고 있는 그는 요새 미치도록 보고 싶은 얼굴 하나가 있다. 꼭 그 얼굴을 만나고 싶다. 정말 그립고 그립다. 그 사람이라면 자신의 무섬증을 덜어줄 성싶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다. 헤어진 지 어언 사십 년이 되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무런 풍문도 듣지 못한 채 강산이 네 번 바뀌도록 살아왔다. 무서운 사람들 사이에서 무섭게, 똑똑한 사람들 사이에서 똑똑하게, 나름대로 그렇게.
 

 그는 몸서리친다. 너무나 잘난 이들이 많아서. 가령 어제 목격한 가벼운 차량 접촉 사고 건(件)만 해도 그렇다. 도심지 네거리에서 차들이 꿈쩍도 않았다. 교통 신호등 파란 불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앞쪽에 무슨 사고가 터진 모양이었다. 아니라면 음주 단속 경관들이 출동한 건지도 몰랐다. 퇴근 시간대인지라 그러잖아도 복잡하기 그지없는 도로가 완전히 주차장으로 둔갑했다.
 그는 마음이 조급했다. 회사 사무실과 집의 중간쯤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급히 만나야할 중요한 사람이 있었다. 긴히 부탁할 일이 있어서였다. 어쨌든 이번 일이 성사되지 않으면 그의 인생에 적지 않은 마이너스로 작용될 성질의 것이었다. 그는 적어도 상대방보다 이, 삼십 분은 먼저 그 장소에 도착해야 했다. 만에 하나 상대보다 1분이라도 늦게 닿으면 첫인상부터 형편없어지고 당연히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게 뻔했다. 그래 그는 회사에서 보통 때보다 한 시간이나 빨리 나왔던 것인데 벌써 그 절반을 까먹어버린 것이다.

 결국 답답한 놈 샘 판다고, 그는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도대체 무슨 대형사고가 났기에 이리 오랫동안 정체 현상이 풀리지 않고 있는가. 사고 현장은 생각보다 한참 앞쪽인 듯했다. 그는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는 게 차량 서른 대는 지나쳤지 싶었다.
 마침내 원인 제공 장소에 이르렀다. 그런데 얼핏 둘러봐도 어디 사고가 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음주 측정기를 권총처럼 든 정복 교통 경찰관도 보이지 않았고 파손된 차량도 없었고 치인 행인도 띄지 않았다.
 그의 눈에 든 것은 사내 둘이 전부였다. 삼십대와 사십대로 보이는 그들은 모두 양복을 받쳐입었고 머리에는 포마드가 번지르르 한 게 막노동꾼은 아니고 화이트칼라 같았다. 그 사내들이 서로 삿대질을 해가며 다투고 있는 것이다. 그가 좀더 자세히 살펴보니 뒤차 한 대가 앞차 꽁무니를 들이받고 있었다. 그렇다고 뭐 운행이 어려울 만큼 크게 상한 건 아니고 그저 약간 들어가고 흠집이 났을 정도였다. 그는 사내들이 내지르는 소리를 통해 사태를 간파했다.

 “당신이 급정거를 했잖아?”
 “무슨 소리야? 가만히 서 있는 차를 와서 떠받은 게 누군데….”
 그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이 세상에 그들만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차가 막혀 움직이지 못하든 말든 서로가 옳고 무죄라고 고집 피우는 일만 급급했다. 헌데 둘이 하나도 지지 않았다. 저울로 달아도 눈금 하나 틀리지 않을 인종들이었다. 그 기세들이 하도 감사나운 탓에 다른 운전자들이 나서지 못하는 듯했다. 아니면 좋은 구경거리 생겼다 싶어 그대로 두는 것도 같았다. 만약 경찰차가 출동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지구 종말이 올 때까지 그러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여하튼 그 일이 그의 기억 속에 숨어 있던 사십 년 전을 밖으로 불러낸 계기였다.
 그가 다닌 초등학교는 완전 시골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도시에 있는 것도 아닌, 중소도시에 흔히 있는 그저 그렇고 그런 학교였다. 전교생이 1천5백 명쯤 되었고 아이들 가정 환경은 ‘중’ 정도였고 역사는 50년이 되었다. 여하튼 밋밋하고 건조한 그런 학교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런 학교가 한 사람의 등장으로 확 달라지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그는 각별한 학교장이거나 육성회장, 하다 못해 새로 전근 온 괴짜 교사겠거니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그는 일개 소사(오늘날의 행정보조원이랄까)였다. 그것도 정상적이지 못한. 그랬다. 얼간이였다.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칠푼이 팔푼이 정도가 아니라 서너푼밖에 안 돼 보이는.
 그런 얼간이가 어떻게 해서 거기 오게 됐는지는 모르나 그는 굉장한 파문을 몰아왔다. 언제부턴가 그는 얼간이가 돼 있었으며 누구든 ‘얼간아!’ 하고 부르면 어김없이 ‘왜? 그래, 나 얼간이다. 히히히.’ 하는 답변이 돌아왔다. 얼간이를 모르면 간첩이었다. 얼간이를 모르면 얼간이였다. 대체 스물 하고도 두서넛은 더 먹은 그 나이는 모두 어디로 갔더란 말이냐. 그의 이름을 아는 이도 없었다. 아이고 어른이고 간에 그는 ‘스트레스받이(?)’였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무슨 짓을 해와도 그냥 ‘히히히.’였다.

 그런데 이 얼간이가 하루아침에 영웅이 될 줄이야. 내막은 이러하다. 요즘은 보기 어렵지만 당시는 ‘차력사’라는 게 있었다. 차를 밧줄로 묶어 입으로 끌기도 하고, 배 위에 과일을 올려놓고 칼로 베기도 하고….
 그날 학교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여 차력술을 관람하게 되었다. 차를 이빨로 끌 때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들도 환호했다. 보조하는 사람 배 위에 사과를 놓고 시퍼런 칼로 단숨에 싹 두 조각 낼 때 여자애들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다가 조회대 위에 선 차력사가 모두에게 주문을 해왔다. 한 사람 나와 보라는 것이다. 기합을 넣어 혼을 뺀 후 전구알을 씹어먹게 하는 시범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위험천만한 짓을 누가 하겠는가. 하나같이 머리칼이 야수같이 제멋대로 자란 차력사의 손에 들린 전구알을 시한폭탄처럼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차력사는 계속 재촉했지만 여전히 희망자는 없었다. 자칫 그 신기한 재주가 물 건너갈 판이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조회대 위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감탄과 경이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얼간이였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얼간이, 얼간이가 나서다니. 아, 역시 그는 얼간이였던가. 차력사는 퍽 반가운 동작으로 얼간이를 맞았다. 하지만 얼간이 얼굴은 무표정했다.
 “자아, 그러면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차력사 음성에 활기가 넘쳤다. 그는 왼손을 얼간이 등에 붙이고 오른손은 얼간이 이마에 갖다댔다. 곧이어 얍! 하는 기합소리가 운동장을 울렸다. 순간, 얼간이 몸이 그대로 뒤로 넘어지려 했다. 나무토막 같았다. 차력사가 등을 받치고 있지 않았다면 얼간이는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을 것이다.
 그때만큼 얼간이가 진짜 얼빠져 보인 적은 없었다. 차력사가 얼간이 입속에 전구알을 넣더니 또 한 번 기합을 넣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얼간이는 입을 오물거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차력사가 마이크를 얼간이 입가에 가져갔다. 그러자 모두의 귀에 들려오는 소리. 바삭 바삭 바삭….

 그것은 분명 유리 씹히는 소리였다. 얼간이가 얼나간 채 전구알을 씹어먹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먹듯. 그러더니만 종내 꿀꺽 삼키는 게 아닌가. 세상에 유리조각을 목으로 넘기다니. 모두 넋이 나가버렸다.
 “다 먹었군요. 이제 입안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차력사 말에 모두 정신을 차렸다. 차력사는 얼간이를 모두가 잘 보게 정면으로 세웠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얼간이 입안을 열어 보였다. 얼간이는 입을 있는 대로 벌린 채 그대로 있었다. 앞쪽에 있던 남선생 하나가 조회대로 뛰어올라가 얼간이 입안을 들여다보며 소리쳤다.
 “아, 아무렇지 않아요. 피, 피가 조금도 안 났네요.”
 차력사가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 그러고는 아까처럼 천천히 오른손을 얼간이 이마에 가져가서 얍! 하고 기합을 넣었다. 그 순간, 얼간이가 번쩍 눈을 뜨더니 비로소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차려’ 된 것이다. 얼간이가 밑으로 내려오자 모두들 얼간이 입안을 보느라 난리가 났다. 말짱했다. 피 한방울 없었다. 전구알 하나를 통째 삼키고도 끄떡없다니.

 그 일은 얼간이를 다시 보게 했다. 용기 있는 청년, 유리조각을 삼키고도 살아남은 철인, 어려운 일에 솔선하는 착한 사람.
 그렇다. 그는 더없이 보고 싶은 것이다. 얼간이 같은 사람이. 약아빠진, 닳아먹은, 잘나고 잘난 인간들 속에서, 그는 소리쳐 묻고 싶은 것이다.
 -얼간이는 어디 있소? 진정 이 시대의 얼간이는 사라진 것이오? 그리운 얼간이여!
(끝)
 
독서신문 1394호 [2006.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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