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잔인해야 ‘흥행’... 심의기준도 ‘엉성’
한국 영화, 잔인해야 ‘흥행’... 심의기준도 ‘엉성’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8.07.0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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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영화 포스터>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영화 ‘마녀’의 흥행이 눈에 띈다. 개봉 9일(지난달 29일 개봉) 만에 누적관객수 127만명을 돌파하며 7월 둘째주 박스오피스 종합순위 2위에 올라 있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피를 뒤집어 쓴 채 누군가에게 쫓기는 다급한 모습의 아이로 시선을 끈 후 125분의 러닝타임 대부분을 피가 솟구치고 살과 뼈가 으스러지는 자극적인 장면으로 소비한다. ‘신세계’(2012), ‘브이아이피’(2017)에 이어 박훈정 감독 특유의 ‘피투성이’ 화면이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다. 

어느 때부터 ‘폭력성’은 한국 영화의 특징으로 꼽힌다. 1990년대 후반 한국 영화가 질과 양적인 면에서 크게 성장한 이래 다수의 해외 평론가들은 한국 영화 속 ‘폭력’과 ‘욕설’에 비평을 쏟아냈다. 미국 영화 평론가 그레이디 핸드릭스는 2007년 기고문에서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2005) 등을 거론하며 “서구에서 한국 영화는 잔인하고 짜증을 돋우는 영화로 낙인찍히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작가이자 인문학자인 르 클레지오는 책 『발라시네:르 클레지오, 영화를 꿈꾸다』에서 “한국 영화의 큰 축은 폭력성”이라며 “동족상잔의 비극을 낳았던 한국전쟁으로 한국에서는 폭력과 정치가 뒤섞인 독특한 문화가 탄생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한국 영화가 지닌 폭력성의 특징 중 하나는 ‘칼’이다. 조폭영화 ‘친구’(2001)를 시작으로 봇물처럼 쏟아지기 시작한 조폭영화에는 칼이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총 소지가 금지된 국내 사정을 반영한 설정으로 오히려 총보다 공포감과 잔인성을 극대화 한다. 이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스시 셰프가 쓰는 사시미를 쓰는 것이 (총보다) 더 무섭고 익스트림하다. 칼의 소리, 몸을 베는 소리 등이 무시무시하다”며 “(우리나라가) 역사의 굴곡과 개인과 사회의 충돌이 많은 점에서 (국내 영화는) 서유럽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 등의 영화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폭력성은 한국영화 부흥의 주역으로 꼽히는 김기덕,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감독의 작품에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꽁꽁 얼어붙은 손을 망치로 깨버리는 충격적 장면이 나오는 봉준호의 ‘설국열차’(2013), 인두로 얼굴을 지지는 고문 장면이 나오는 김지운의 ‘밀정’(2016), 또 성적으로 폭력성을 드러낸 작품으로는 근친상간을 다룬 김기덕의 ‘뫼비우스’(2013), 남성의 여성 억압과 동성애를 다룬 박찬욱의 ‘아가씨’(2016)가 있다. 일각에서는 현실의 부조리를 그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자극적인 장면은 일부 관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비록 이러한 영화가 폭력성을 띠었지만 이들 작품 대부분은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으로 분류돼 청소년과는 거리를 뒀다. 하지만 최근에는 달라진 모습이다. 얼마 전 영화 ‘독전’과 ‘마녀’가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에서 ‘15세(중2)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아시아 최대 마약상과 그를 쫓는 형사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조직의 치열한 혈투를 그린 ‘독전’은 약물 투여 장면, 총과 칼을 이용한 폭력·살해 장면, 여배우 상반신 노출신까지 포함했다. 영등위는 “영화가 마약 불법제조 및 불법거래를 조장하거나 미화하지 않았다”고 평가 이유를 밝혔지만 일부 관객은 “15세 영화에 마약과 총기가 노골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문제”라고 우려를 표했다. 일부 관객은 “15세 관람가 등급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내기도 했다. ‘마녀’와 관련해서도 “청소년이 관람하기에 잔혹한 장면들이 많았다. 명확한 영화등급 심의기준이 필요하다”라는 국민청원이 올랐다.   

이처럼 영화등급 심의기준에 지적이 나오는 데는 청소년의 모방범죄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청소년기는 모방심리가 상대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영화 속 허구내용을 현실에 그대로 접목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구정화 경인교대 교수는 논문 「청소년의 폭력성 멀티미디어의 수용정도가 폭력 성향에 미치는 영향」에서 “청소년 비행 및 범죄는 미디어가 보여주는 공격적 행위 및 폭력적 태도에서 학습됐다”며 “폭력적 내용에 한번 노출되면 성장 후에도 심각한 형태의 범죄 행동과 연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4월 대전에 사는 유(19)모군 등 초등학교 동창생 6명은 대마 167g를 채취해 그중 1g를 판매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해외여행 경비를 마련하고자 범죄영화를 모방해 마약을 거래했다”며 “영화 속에 나온 것과 유사한 흉기를 구입하고 검거를 피하려고 건물에서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연습도 했다”고 진술했다. 

세상 천태만상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영화에 좋은 내용만 담길 순 없지만 막연히 흥행을 위해 폭력·선정적 설정을 남용하는 문제는 우리 영화계가 고민해야할 문제다. 또 ‘청소년 보호’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영등위도 그 설립목적을 되새겨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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