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은 소설집 등 책의 맨 뒤 또는 맨 앞에 실리는 ‘작가의 말’ 또는 ‘책머리에’를 정리해 싣는다. ‘작가의 말’이나 ‘책머리에’는 작가가 글을 쓰게 된 동기나 배경 또는 소회를 담고 있어 독자들에겐 작품을 이해하거나 작가 내면에 다가가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에 독서신문은 ‘작가의 말’이나 ‘책머리에’를 본래 의미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발췌 또는 정리해 싣는다. 해외 작가의 경우 ‘옮긴이의 말’로 갈음할 수도 있다. <편집자 주> |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방에는 알록달록한 빛깔의 아름다운 자갈이 깔려 있는 '우수리'라는 이름의 만이 있다. 파란색, 붉은색, 초록색, 하얀색의 자갈들이 어우러져 일출이나 일몰 때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 낸다.
이 자갈의 정체는 유리 조각이다. 인근 지역에 있는 공장에서 10톤에 달하는 도자기와 유리병을 불법으로 버린 것이 오랜 시간 파도에 휩쓸리며 자갈처럼 동그랗게 다듬어진 것이다. 쓰레기 바닷가였던 이곳은 파도와 시간의 조화 속에서 아름다운 유리 자갈 해안으로 변모했다.
보잘것없는 작은 생명체였던 내가 도대체 어떤 파도와 시간을 거쳐 지금의 내가 됐는지 가만히 생각해 봤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건 사람들의 얼굴이다. 어린 시절 내 전부였던 가족을 비롯해 고등학교 시절 처음 기숙사 생활을 하며 만난 동기들 그리고 군대와 대학을 지나 사회에서 만났던 약 1만명의 사람들, 때로는 저를 흔들고, 때로는 저를 때리고, 때로는 저를 북돋고, 때로는 저를 보듬어 주던 그 파도는 모두 사람이었다.
그들의 크고 작은 손길이 내 몸과 마음에 닿아 나라는 조각상을 만들어 왔다. 그들과의 만남을 뺀다면 지금의 내가 어떤 모습이 됐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어떤 때는 피하고 싶은 순간이기도 했고, 싫지만 내색할 수 없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1만명의 인맥을 알고 지냈던 내가 나이가 들어 가면서 "만남은 행복이다"라고 나직이 읊조린다.
만남 자체가 행복임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내적 성숙의 과정이 필요했다. 이 책에는 그 과정이 담겨 있다. 더불어 나는 평생에 걸쳐 만난 1만명 중에 내게 감명을 안겨 준 분들의 이야기를 소재 삼아서 성숙과 행복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이야기하려 한다.
성숙은 마이너스 성향을 갖고 있다. 깊이라는 게 흙을 퍼내어 얻어지듯 성숙도 더해서 얻는 게 아니라 덜어 내면서 얻는 것이다. 더하기에 익숙했던 시절, 우리에게는 소유와 만족이 전부였을지 모른다. 이제는 빼기의 세계에 익숙해질 때가 됐다. 성숙과 행복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가 됐다.
행복의 해안가를 꿈꾸는 당신에게, 1만명의 친구를 만나면서 알게 된 행복의 비밀을 소개하려고 한다.
■ 보통의 행복
김기남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펴냄|320쪽|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