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을 가로지는 상상력
꿈과 현실을 가로지는 상상력
  • 관리자
  • 승인 2006.04.0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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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도연
 
▲ 김도연 작가     ©독서신문
어느덧 가을인가 싶더니 밤새 온 대지를 덮어버린 하얀 세상과 급강하한 날씨는 벌써 동장군의 위세를 느끼게 한다. 꽁꽁 언 대지의 침묵을 몸으로 체험하며 자신의 일터로 향하는 도시의 하루가 시작되지만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는 이제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를 펼치며 창작열을 불사르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다.

 김도연(39)은 강원 평창 진부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농사꾼이 아니다. 유난히 겨울이 긴 강원도 산골에서 겨울에는 글을 쓰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2000년 중앙신인문학상에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후 각종 문예지에 꾸준히 글을 써왔다. 그 결과 이번에 두 번째 소설집 『십오야월』(문학동네)을 펴냈다.

 표제작을 포함해 ‘흰 등대에 갇히다’ ‘도망치다가 멈춰 뒤돌아보는 버릇이 있다’ ‘이제 그는 시인을 믿지 않는다’ ‘동부전선 별일 없다’ ‘북호텔’ ‘불개’ ‘하조대’ ‘출가’ ‘검은 하늘을 이고 잠들다’ 등 모두 10편의 묵직한 단편들이 수록됐다.
공간의 한계를 벗어난 무한한 상상력
김도연의 작품들은 공간의 한계를 벗어나 자유로운 세계를 꿈꾸는 있는 경향이 짙다. 즉 갇혀 있는 공간의 한계를 꿈으로 극복하려는 경향, 상상력의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김도연의 소설에서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를 분간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꿈과 현실을 능란하게 교직해나가는 그 특유의 상상력과 소설 작법은 이미 첫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익히 보아온 바이지만, 『십오야월』은 그보다 한층 분방하면서도 손쉽게 현실의 장에서 이탈하지 않는 무게감과 함께 자조와 비애의 정서를 감싸 안는 능청과 익살까지 겸비하고 있다.
이런 점은 이 소설집의 큰 줄기를 이루는 산골 농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과는 다소 이질적인 몇몇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중편 「검은 하늘을 이고 잠들다」는 알코올 중독자가 돼 사북으로 돌아온 전직 광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를 중심으로 모인 이들이 펼치는 ‘사북 해방 작전’은 우울하면서도 시종 어딘가 유쾌한 기운을 잃지 않는다.
그의 작품들의 또 다른 특징은 특유의 서술법을 통한 독특한 문체이다. 동시대 작가들 사이에서 비교적 분명하게 자신만의 자리를 안전하게 확보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의 이러한 점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해설을 쓴 평론가 김경수는 “인간과 동물, 그리고 그 밖의 자연의 이질적인 선택항들을 하나의 통사로 엮어내는 김도연 특유의 서술법은 이미 이효석에게서 그 효용이 한껏 발휘된 바 있는 독특한 문체”라면서 “인물들의 순박성과 그로 인해 발휘되는 순간순간적인 희화적 응전, 그리고 그런 것들로부터 종합되는 피카로적 성격이란 측면에서 김유정의 세계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자서전적인 소설집 『십오야월』
이번에 김도연이 선보인 그의 두 번째 소설집은 그 내용상 그의 자서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의 삶을 빼 담고 있다. 그는 한때 수원에서 카페를 하는 등 도시생활을 전혀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러한 자신의 부유를 끝내고 그는 평창골에 다시 돌아가 그만의 세계를 창조해내고 있다. 이번 소설집은 바로 그러한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는 강원도 첩첩산중 외딴 시골에서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여태 노총각인 그의 집은 외양간도 닭장도 텅 비어 있고, 잡종 사냥개만이 유일한 그의 벗이다(「십오야월」). 그는 노모를 도와 민박집을 꾸려나가거나(「이제 그는 시인을 믿지 않는다」) 고라니로부터 소중한 당근 밭을 지켜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도망치다가 멈춰 뒤돌아보는 버릇이 있다」).
혹은 면소재지의 작은 도서관을 근거지로 삼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사향노루 연구에, 아니 문학에 몰두해 있다(「흰 등대에 갇히다」). 그러나 거의 유일한 혈육인 노모는 먹고사는 일 외에 그의 욕망과 열망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 답답한 현실을 견디다 못해 가출을 감행한 그에게, 노모는 야밤에 불쑥 전화를 걸어 텔레비전 리모컨 사용법을 물어온다(「출가」). 어쩔 것인가. 그는 다만 늙은 사냥개를 앞에 앉혀놓고 자신이 쓴 시를 절실하게 읽어줄 도리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그는 환몽에 빠져들어 있다. 과거에 사랑했던 여자의 기억이 불쑥 달려들고, 고라니와 산양과 멧돼지와 늙은 사냥개가 능청스럽게 그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뿐인가, 할아버지 할머니 조상님 귀신들까지 나타나 한판 떠들썩한 난장을 벌인다. 현실과 환상이 서로 섞여들며 서로의 경계를 무화시킨다. 그는 해수욕을 갔던 것 같기도 하고 도서관 옥상으로 올라갔던 것 같기도 하다.
금강산 계곡에서 나무꾼을 만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무려면 어떨까. 그의 누추한 삶이 현실이고 그의 욕망과 열망이 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의 욕망과 열망이 현실이면 그의 누추한 삶은 오히려 꿈이 아닐까. 그것도 아무려면 어떨까. 이쯤이면 다만, 이리저리 휘날리는 삶의 누추와 열망과 환몽 따위만이 달빛에 선연할 뿐이다.
수려한 미사구어가 아닌 진솔한 대화
그의 글은 화려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김도연의 하루하루 역시 화려하지 않다. 그래서 일까. 작가는 수려한 미사구어를 구사하거나 화려한 문체를 뽐내지 않는다. 그의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양주나 맥주보다는 쏘주한잔. 막걸리 한잔을 즐긴다. 화려하지 않지만 인간적인 내음이 물씬 풍기는 그런 모습이다.
하지만 그의 글에는 알 수 없는 분노를 느낄 수 있다. 아니 알지만 차마 허례에 사로잡혀 말하지 못하는 우리사회의 허식에 대한 분노를 느낄 수 있다. 그의 글은 인간과 자연이 동화되어 함께 어울리는, 인간과 인간이 함께 어울리고 서로 호흡하는, 그래서 정겨움을 느끼게끔 한다.
하지만 그래서 인지 그의 글은 냉철하다. 강원도 첩첩산중을 휩쓴 싸늘한 동장군 칼바람이 마침내 우리의 길목에서 불어오는 그래서 우리가 미쳐 깨달지 못한 것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처럼. 아직 미혼인 김도연은 소주잔을 기울이던 한 술집에서 “제 앞에서 단 5분만이라도 침묵을 이해해줄 수 있는 여인을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1966년 강원도 평창 生
강원대 불문과 졸업
1991년 강원일보, 199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0년 중앙신인문학상 수상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십오야월』

독서신문 1394호 [2005.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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