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시죠? 월드컵 탓 아닙니다… 과로공화국의 운명은?
피곤하시죠? 월드컵 탓 아닙니다… 과로공화국의 운명은?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7.0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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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요즘 길거리를 지나다니면 눈 밑에 까만 다크써클이 있는 사람이 많다.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방영되는 월드컵 경기를 시청하고 아침 일찍 학교나 직장에 가는 국민들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한 직장인은 “직장에서 사람들이 월드컵 이야기를 하는데 나만 안 볼 수 없어서 보고 잤더니 너무 피곤하다”며 “업무에 지장이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한 고등학생은 “월드컵 보느라 늦게 자는데, 날이 더워서 더 피곤한 것 같다”며 “피곤해서 수업시간에 잘 것 같다”라며 볼멘소리를 낸다.

월드컵 때문에 시달렸던 것은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러시아에서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를 직관하고 러시아 국회에 방문하는 등 잇따른 강행군으로 몸살을 얻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달 27일 “문 대통령은 러시아 방문 등 과도한 일정과 누적된 피로로 인해서 몸살감기에 걸렸다”며 “주치의가 주말까지 휴식을 취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까지 예정돼 있던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누적된 피로는 이렇게 업무의 비효율과 국민 건강의 악화를 낳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월드컵 탓으로 돌려야 할까. 굳이 월드컵이라는 핑계를 대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은 애초에 과로사회라는 오명이 있다. 2016년 기준으로 한국의 노동시간(2,069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연간 노동시간이 300시간이 더 많았다. 이는 멕시코(2,255시간) 다음으로, 회원국 중 2위에 해당한다. 이에 더해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가 지난 5월 내놓은 ‘한국 기업문화와 조직건강도 2차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2년 전 후진적 기업문화 요소로 지적받았던 습관적 야근은 여전히 낙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난다. 어른만이 아니다. 초록어린이 재단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동·청소년 가운데 약 4명 중 1명은 하루 중 자유시간이나 휴식 시간이 전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100명 중 1명 정도만 아동 발달과 인권을 위한 권장기준(수면·학습·운동·미디어의 4가지 권장기준으로 측정)대로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참여한 아동·청소년 중 46.4%(2,902명)은 권장기준을 넘겨 지나치게 많이 공부했고,40.4%(2,596명)은 잠을 덜 잤다.

이 와중에 7월의 첫날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부터 시작되는 주 52시간 근무제는 사막에 내리는 단비 같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은 지난달 28일 “7월 1일부터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현행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노동시간 단축법’이 시행된다”며 “매일 한 명의 노동자가 과로로 목숨을 잃는 비인간적인 사회, 사람이 없는 ‘근면 성실’.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2020년부터, 5인에서 49인 사이의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된다(단, 30인 미만 사업장은 2022년까지 노사 간 합의에 따라 특별연장근로 8시간 추가 허용).

노동자는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취업 전문 포털 잡코리아가 300명 이상의 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9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개인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기대된다고 응답한 사람이 71.7%(이하 복수응답)였으며 55%는 직장에서의 ‘생산성 향상’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응답했다. 반면 야근은 하고 수당만 못 받을까봐(60.8%), 생산성이나 성과가 하락할까 봐(39.2%)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부가 주 52시간 근무제로 얻고자 한 ‘삶의 질 향상’과 ‘일자리 만들기’ 효과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일부는 개인의 업무 시간이 줄고 여가가 늘어 내수가 활성화되고, 기업은 부족한 업무시간을 채우기 위해 일자리 개수를 늘릴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업무 시간 감소가 임금감소로 이어지고, 사람을 더 많이 고용해야 하는 기업이 자동화에 투자하거나 해외로 생산을 이전해 일자리가 정체될 것으로 본다. ‘생산성 향상’에 대해서도 압축적으로 근무하기 때문에 근로자 1인당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라 예상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근로시간이 줄어 어쩔 수 없이 생산성이 낮아질 것이라 보는 이도 있다.

말들이 무성하지만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누구도 이 주사위의 윗면 숫자를 단정 지을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한 카이사르의 각오를 해야 한다. 바뀐 법이 장애가 되지 않게 국가와 사회는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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