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표석(標石), 푯돌 혹은 표지석은 어떤 사실을 구별하거나 기념하기 위해 세우는 돌이다. 오래된 도시 서울에는 2018년 3월 기준으로 316개의 기념 표석이 설치돼 있다. 정비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어 개수와 디자인은 물론 몇몇은 위치까지 유동적이다. 소설가 김별아는 이런 표석에 직접 가보고, 거기 담긴 역사를 살펴보고 그 위에 상상을 담았다.
을지로의 옛 이름은 구리개였다. 남산으로부터 흘러내린 산자락이 충무로와 만나 진고개를, 명동길과 만나 북달재를, 을지로에 이르러 구리개라는 고개를 만들었다. 을지로입구(1가)에서 2가로 향하는 이 언덕이 진흙밭이었던지 비만 오면 곤죽이 되기 일쑤였기에 구리개라는 구터분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광화문광장에는 기로소 터 표석이 있다. 기로소는 조선시대에 정이품 이상 관직을 지낸 70세 이상의 고위 문신에 대한 예우를 위해 설치된 관청이다. 태조 3년(1394)에 설치돼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유지됐다. 국왕도 나이가 들면 일정한 의식을 거쳐 이곳에 들어갔다. 현재로 보면 고급 국립 경로당인 셈이다.
독서당은 조선시대 뛰어난 선비들에게 특별 말미를 줘 글을 읽게 한 곳이다. 옥수동, 금호동, 행당동을 끼고 오르내리는 10리가 조금 안 되는 4차선 도로의 이름이 독서당로다. 지금도 옥수동 3통 일대는 한림말이라 불린다는데, 한림(翰林)은 예문관 검열(檢閱)을 통칭하는 말로 풀이하면 ‘선비가 글 읽던 독서당 마을’이란 뜻이다.
2호선 을지로3가역 8번출구 100m 지점 명보아트홀 앞 보도는 충무공 이순신 생가 터다. 이순신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오가는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끝끝내 자기 감정과 생각과 삶에 정직하다. 미화도 없고 변명도 없고 머뭇거림도 없다. 그는 생각보다 더 자주 울고 더 많이 아팠지만, 연약한 자신을 숨기지 않을 만큼 진정으로 강한 인간이었다.
『도시를 걷는 시간』
김별아 지음|해냄 펴냄|266쪽|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