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폐지로 후폭풍 맞을 출판계
논술 폐지로 후폭풍 맞을 출판계
  • 권구현
  • 승인 2008.01.1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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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서울 상위권 대학 논술 폐지 시사
▲  서울 상위권 대학의 논술 폐지 발언으로 교육계에 다시 한 번 혼란이 예상 되고 있다.     © 이애경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내신이 문제가 되니 내신을 살리려 수능 등급제를 했지만 수능의 변별력이 없어지니 대학이 논술을 하는 것 아닌가”라며 “등급제를 폐지하고 대학에 변별력만 주면 논술고사를 어렵게 할 필요가 없다”고 언급하자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성균관대, 중앙대는 이날 수능 등급제가 폐지되면 이르면 2009학년도부터 자연계를 중심으로 정시 논술을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연계 논술은 현재 시행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서울 상위권 대학
논술 폐지 언급


연세대 이재용 입학처장은 지난 14일 중앙일보와의 지면을 통해 “인문계는 논리력과 사고력 등을 평가하기 위해 논술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자연계는 수능에서 학생의 능력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고 변별력이 확보되면 정시 논술을 보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처장은 “올해 고3을 대상으로 한 2009학년도 입시는 혼란을 줄이기 위해 인문·자연 모두 논술을 치르고 2010학년도부터 자연계 정시 논술을 폐지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성균관대 성재호 입학처장도 “수시에서는 여전히 논술이 유효하겠지만 객관적이고 신뢰성 있는 학업 성적이 제공된다면 정시에서 논술고사를 보지 않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논술 폐지에 대한 언급이 확장 되면서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코스닥에 상장된 온라인 논술교육 업체인 ‘엘림에듀’의 주가는 이 당선인의 기자회견이 끝난 오전 11시 이후 급락해 가격제한폭까지 떨어진 채 장을 마감했으며, 강남 대치동의 논술 학원가에서는 “논술 학원의 존폐 위기” 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입시생들은 “학생들은 입시정책의 시험 대상이자 희생양”(서울 b고 홍수정 양) 이라며 보다 “변화 보다는 보다 일관적인 교육법을 원한다” 고 말했다.
 

논술 폐지, 출판계 악영향
학습/참고서 분야 큰 타격 예상


논술 폐지라는 메가톤급 폭탄의 후폭풍은 출판계에도 강하게 불어 닥칠 예정이다.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역시나 ‘학습/참고서’ 분야일 것으로 예상된다.
 
논술이라는 것이 교과서 교육처럼 딱 집어서 가르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자신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서술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교사들의 지도와 첨삭이 담겨 있던 논술 교재들은 다른 과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할애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논술 시험의 특징 덕분에 호황을 이루었었다.
 
하지만 이러한 논술 교재의 호황도 이제는 빛 바랜 추억으로 전락할 위기에 닥쳤다. 비단 논술 교재 뿐만이 아니라 이 당선자의 수능시험과목 축소방안 또한 학습/참고서 시장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논술 교재 관계자는 “현재 학원들도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 속에서 누가 논술 교재를 사서 보겠는가? 논술 교재 시장은 이제 닫힌 것이나 마찮가지다” 라며 침통한 심정을 밝혔다.
 
문학 및 교양 서적 시장 또한 논술 폐지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일례로 민음사의 초대형 스테디셀러인 이문열의 『삼국지』는 논술 시험에 인용 되면서 이후 대입 수능과 논술 시즌마다 화제를 뿌리며 1700만부를 훌쩍 뛰어넘었다.
 
논술 시험은 흥미 위주의 독서 습관을 가졌던 청소년들에게 보다 심층적인 문학작품들과 고전 작품들을 읽게 하는데 영향을 미쳤고, 출판사들은 이러한 트랜드에 맞추어 발 빠르게 ‘논술’ 이라는 타이틀을 부제로 걸고 문학작품을 출간해내었다.

주진국(서울 c고 국어 교사)씨는 “그나마 논술 시험이 있어 학생들이 교과서에 담긴 문학 작품 외에 작품들을 읽어보려고 노력했었으나, 이제는 학생들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며 “입시가 가장 중시되는 교육 현실 속에서 학생들에게 문학 작품을 읽어보라는 것은 어찌보면 말도 안되는 일” 이라고 말했다.

어린이 서적 분야에서는 논술 시험 덕분에 일어났던 ‘독서 습관 들이기’ 열풍이 사그러들 것을 걱정하는 눈치다.
 
‘책 읽는 습관을 들여야 훗날 논술에 대비하기 쉽다’ 는 생각 덕분에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보다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권유하였고, 보다 넓은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치려는 의견이 그간 출판계에 반영 되어 그림책이나 동화책 외에도 사고력 증진 및 창의적인 면을 키워주는 책들이 많이 출간 되었으며, 교양 상식이나 어린이 철학서 등 보다 교육적인 측면이 강조된 책들 또한 출간 되었다.

독서의 중요성이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에 독서에 대한 관심이 크게 줄어들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중요성이 “논술 시험이 있을 때 만큼이겠느냐” 라는 의견이 대부분의 생각이다.

인문 서적 분야도 논술 폐지는 약하나마 악재로 작용할 예정이다. 지난 한해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 딱 2권만 이름을 올릴 정도로 현재 인문 서적의 상황은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딱딱하고 어려운 책을 싫어하는 요즘 독서 취향을 볼 때면 앞으로의 돌파구 모색 또한 막막한 상황이었다. 논술 시험이라는 것이 인문 서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사회적 현상에 대해 익히고, 철학서들을 접하려는 트랜드에 맞추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출간되던 책들이 이제는 그 매리트를 잃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공들인 독서환경 조성
한순간 물거품 될 수도

 
2007년은 출판계에게 환경적인 측면에서 대단히 행복한 한 해였다.
 
국가 차원에서 ‘작은 도서관 만들기’ 가 진행 되었고, 언론사를 중심으로 한 독서 캠페인이 풍성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저명인사들의 양서 추천에서부터 한 해를 빛낸 분야별 도서를 선정하는 것은 물론 가정 독서 환경과 학교 독서 환경 조성 지원, 2004년부터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왔던 병영 도서관 건립 운동 지원, ‘거실을 서재로’ 같은 캠페인의 면면 또한 다양했다.

물론 독서라는 것은 억지로 권장할 수는 없는 수단이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라는 우리의 속담이 있지만 유난히도 독서 습관만큼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책을 좋아하지만 중ㆍ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치열한 입시 경쟁 때문에 책을 가까이할래야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논술 덕분에 독서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강조할 수 있었으며 그 중요성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물론 논술 시험 때문에 사교육이 보다 더 조장되었다는 어두운 측면은 존재한다. 하지만 논술 시험으로 인해 독서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요소라는 것을 강조할 수 있었고, 독서는 미래의 성장 동력이 되고 개인과 조직의 창조성을 키울 수 있는 시대적 트랜드라는 것을 생각하면 논술 폐지로 인해 잃어버리는 것 또한 크다고 말할 수 있다.

논술 폐지라는 것이 아직 확실하게 결정난 것은 아니기에 왈가왈부할 수 없지만 논술 고사가 여러 해 동안 우리의 입시제도와 사회 전반에 걸쳐 흡수 되어있던 시험 제도라는 것을 생각할 때, 섣불리 결정할 것이 아니라 심사숙고하여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이 되어야 할 것이다.
 
<권구현 기자> nove@enew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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