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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대한민국] 김언호 출판도시 이사장 “끝까지 책과 함께”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서울시 중구 순화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의 첫인상은 ‘책이 많다’였다. 그 양으로 치면 서울의 어느 구립도서관 수준이었다. 책을 쭉 훑어보니 전부 책 끝에 ‘한길사’라고 적혀 있었다. 그 책들 사이에서, 평생 책 3000권 이상을 펴낸, 그리고 “여전히 기획하고 있는 책이 많다”는 김언호 한길사 대표 겸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사진을 보며 상상했던 것보다 키가 크고 풍채가 좋았다. 김 이사장은 “모자를 쓴 게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라며 양복에 모자를 쓰고 자신이 펴낸 책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어느 책을 집어 들든 그 책을 출간할 당시 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1976년부터 책을 만들기 시작했으니 들을 이야기가 많았다. “책은 시대와 함께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74세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리타분한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르고 옳은 길’이라면 ‘한길’만 가겠다는 고집과 장인정신이 그의 칼칼한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7년여의 기자 생활의 종지부를 찍게 된 계기는 박정희 정권 시절 ‘자유 언론 수호·실천 운동’이었다. 당시 그와 함께 기자 130여명이 해고됐고 복직되지 못했다. 그는 “기자 활동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또 다른 언론 활동인 ‘출판’을 시작하게 됐다”며 “책을 좋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1976년 12월 24일 순화동에서 한길사를 설립한 그는 42년 동안 3000권이 넘는 책을 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로마인 이야기』 등 전부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책이며 대부분의 독자에게 조금 ‘어렵다’는 평을 듣는 책들이다. 그는 “어렵지만 누군가는 출간했어야 했고, 읽어주는 독자들도 꽤 많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옥관문화훈장, 가톨릭매스콤상, 한국출판인회의공로상, 중앙언론문학상을 받았으며 2013년부터는 출판·독서 문화를 장려하는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를 ‘책의 해’로 지정했고, 20년 만에 파주출판문화정보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이 완료되는 시점에서 그보다 <독서신문>의 ‘책 읽는 대한민국’ 캠페인의 셀럽으로서 적합한 이가 없었다. 단숨에 그를 찾아갔다.

-선생님께서 이번에 <독서신문>의 ‘책 읽는 대한민국’ 캠페인 셀럽으로 선정되셨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책 읽는 대한민국’을 만든다는 점에서 저와 독서신문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사람이 왜 책을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많은 답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먼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책을 읽습니다. 도덕성, 윤리의식과 같은 것은 책을 읽는 과정에서 생깁니다. 따라서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도덕적이고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회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책을 읽지 않더라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책은 지혜로운 삶, 사람다운 삶을 사는데 필요충분조건입니다. 또한, 책은 개인의 창조성을 발현시킵니다. 나라에서 ‘창조 경제’, ‘창조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개인과 국가의 창조성을 키우는 근본적인 방법은 책 읽고 토론하는 것입니다. 이 메시지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출판인들 사이에서 전설로 불릴 정도로 책을 많이 출간하셨는데요. 무엇을 이루고자 하셨습니까.

우선 저 자신이 책 만드는 일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어떤 것을 이루고자라기보다는 책 만드는 일이 저 자신의 ‘정신적 축제’였습니다. 특정한 목적은 없었지만, 책을 만드는 원칙은 있습니다. 첫째로 제가 동의하지 않는 책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동시대인들이 즐겁게 고민하고 공유할 수 있는 주제를 책의 내용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저는 책이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공공재라고 생각합니다. 한길사가 내는 책은 한길사의 것이기도 하지만 한길사의 것이 아니기도 하다는 의미입니다. 책을 만든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시대와 정신의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대가 당면한 문제는 무엇이고, 만약 지금 당장 책을 낼 수 있다면 어떤 책을 만들고 싶으십니까.

당연히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좋은 책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무엇을 고민하고 희망하는가.’ 즉, 시대정신을 담고 있으면 그 책은 읽힙니다. 출판사는 좋은 책을 만들 의무가 있고 독자들은 읽을 의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난달 한길사에서 출간한 이삼성 교수의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같은 책을 낼 것입니다. 이 책은 오늘날의 시대상을 치열하게 성찰하고 혼을 담아서 기획한 책입니다. 우리 한반도에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고 있고 이웃 나라와 공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꼭 필요한 책입니다. 또한, 최근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젊은이들을 주제로도 기획해보고 싶습니다. 다양한 주제, 모든 장르에 걸쳐서 의미 있다고, 시대의 정신에 부합된다고 생각되는 책을 만들 계획입니다.
 

-한길사 대표 겸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이십니다. 출판인으로서, 출판문화 활성화를 돕는 단체장으로서 현재 가장 고민하는 점은 어떤 것인지요.

늘 고민해온 것은 ‘어떻게 하면 독서를 새로운 삶의 질서로 만들 것인가’입니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Back to the books', '책으로의 귀환’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생겨난 디지털 콘텐츠들은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사람을 창의적, 창조적이지 못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역사와 시대를 기억해야 하고 그 안에서 창조적인 사고를 해야 합니다. 이를 도울 수 있는 책은 단연코 가장 가치 있는 매체입니다. 대한민국을 책의 유토피아로 만들고 독서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출판도시문화재단에서는 책 관련 문화 행사인 ‘어린이 책잔치’, ‘파주 북소리’, ‘출판도시 인문학당’, ‘국제출판포럼’ 등을 진행해왔으며, 출판인으로서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책을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읽힐 것인가’를 고민하며 책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 2016년에 출간하신 『세계서점기행』에서는 여러 국가를 다니며 디지털 문명시대에 ‘출판의 정신’, ‘서점의 길’ 등을 논하는 내용을 담았는데요.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 출판문화가 나아가야 할 길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재작년에 출간한 『세계서점기행』은 40년을 출판계에 종사한 한 출판인의 책에 대한 헌사였습니다. ‘왜 책을 읽느냐’, ‘왜 책을 만드느냐’, ‘어떻게 하면 더 정의롭고 민주적인 국가를 만들 것이냐’를 각국의 출판인을 만나며, 서점을 직접 가보며 고민했습니다.

지난해부터 ‘한국에서 한국 출판이 발전하려면 번역을 잘해야 한다’는 말이 많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지도 않고 번역만을 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국민이 책을 많이 읽어 출판문화가 번성하면 당연히 좋은 작가도 많이 나올 것이고, 자연스럽게 그 책이 번역돼 외국에도 알려질 것입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국민 독서율이 최하위입니다. 책을 읽지도 않으면서 누군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기 원합니다. 우리 국민이 먼저 책을 많이 읽고 나서 외국에 우리 작품이 알려지는 것이 그 선후 관계가 맞는 것입니다. 노르웨이를 보십시오. 노르웨이 인구가 우리나라의 10분의 1인 500만밖에 안 되는데 세계적인 작가는 우리보다 훨씬 많습니다. 노르웨이는 전 국민이 평균적으로 1년에 17권의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을 수 없는 노인과 아동을 제외하면 30권을 읽는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나라는 반성해야 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올해를 ‘책의 해’로 지정해 책 관련 사업을 지원하는 등 ‘책 읽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요. 이 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민에게 책의 가치를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안 하는 것보다 낫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는 그 방법 면에서 그다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국민이 계속 책을 읽게 하려면 먼저 도서관을 지원해 장서를 늘리고 확충해야 합니다.

또한, 책방을 공공 플랫폼으로 생각하고 활성화해야 합니다. 서점에도 공공 기금이 투입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요즘 서점은 장사가 안돼서 점점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서점이 줄어들면 국민의 책 읽는 문화가 활성화될 수 없습니다. 서점을 지원해 서점 주변에 시민 공동체를 활성화해야 합니다. 저는 서울시에 작은 책방 1000개를 만들자고 제안한 적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국민은 책을 더 읽을 수 있을 것이고, 일자리도 2000개나 더 생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책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것이 교육의 근본이 돼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입시는 아이들을 비창조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몰라도 될 것들을 많이 가르치고 무작정 외우게만 합니다. 나라에 창조적인 사람이 많아지려면, 학생들 교육부터 바꿔야 합니다. 책 읽고 토론하기를 교육 커리큘럼에서 더 많이 늘려야 합니다.
 

-인생의 방향을 바꿨던 책, 혹은 추천해주실 책이 있는지요.

저의 인생에서 가장 영향을 줬던 분은 사학자이신 함석헌 선생님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그분의 책을 읽고 교내 독후감 대회에서 발표했고 그 독후감을 교내지에 내기까지 했습니다. 그분의 강연을 들으러 자주 찾아갔었고 개인적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분의 글, 사상, 책은 모두 훌륭하지만, 굳이 꼽자면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함석헌 선생님의 책을 지금도 읽고 있습니다. 그분은 슬픔의 사상가이지만 희망의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가 배출해 낸 걸출하고 위대한 사상가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유합니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앞으로도 더 아름다운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언제까지나 책을 생각하는 삶을 살겠지만, 언젠가는 한 출판인으로서 책 만드는 것을 마무리해야 할 때가 올 것 같습니다. 정리되면, 카메라를 들고 전 세계에 책을 찾아가는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며칠 전 한 방송사에서 관련된 요청이 들어와 그것이 이른 시일 내에 이뤄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끝까지 책과 함께 살아왔으니, 책과 함께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김승일 기자  present33@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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