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도 모르는 영화 ‘버닝’, 이창동의 ‘은유’를 찾아라
봐도 모르는 영화 ‘버닝’, 이창동의 ‘은유’를 찾아라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5.30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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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무언가 메시지가 있는 것 같은데 그 의미를 명확히 모르겠다.” ‘버닝’을 보고 나온 관객들의 반응이다.

영화의 중심 플롯은 종수가 벤을 ‘해미를 죽인 살인자’라고 의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종수에게는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없다. 벤의 “해미는 연기처럼 사라졌어요”라는 말과 벤의 집 화장실에 있는 해미의 시계, 해미의 고양이인 것으로 보이는 고양이를 보고 종수는 벤이 해미를 죽였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까지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메타포(은유)가 여기 있다. 종수가 벤이 살인자라는 사실을 확실히 모르는데도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아는 것. 귤이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먹는 시늉을 하고 입 안에 침이 고인다고 말하는 해미의 판토마임. 벤의 “나는 비닐하우스를 태워요”라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는 말에 하염없이 텅 빈 비닐하우스를 찾아다니는 종수. 영화는 관객에게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모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실체 없는 문제 사회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창동 감독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젊은 시절에는 답이 분명한 것처럼 보이는 시대였다. 그것이 계급의 문제든, 정치적 민주화의 문제든. 그런데 요즘은 ‘뭔가 잘못돼 있다’고 느끼지만 그게 뭔지를 잘 모르는 시대다. 그에 대한 답은 더더욱 불명확하다”고 말했다.

종수는 ‘삶의 의미를 찾아 아프리카로 떠나는’ 해미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런 해미를 죽였다고 생각되는 벤을 증오한다. 종수는 어쩌면 ‘의미 없는 상태’에서 ‘의미’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영화를 보고 난 관객은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까. “대한민국에는 뭘 하는지도 모르는 부자가 너무 많아”라는 식의 대사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종수와 해미, 일하지 않고 놀아도 부자인 벤. 감독은 이런 대사와 등장인물을 별 이유 없이 넣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수석 편집자이자 경제 칼럼니스트 라이언 아벤트는 『노동의 미래』에서 “새로운 기술의 발전으로 자본 소유주들에게 부가 집중될 뿐만 아니라 고액 연봉자와 여타 근로자 사이의 소득 불평등이 지나칠 정도로 심화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결책을 제시하며 “재분배와 관련된 정책이 지금까지 기대보다 훨씬 미흡했다”며 “높은 수준의 내부 재분배를 위해 힘겹게 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어쩌면 영화에서 말하는 ‘잘못된 그 무엇’은 ‘빈부격차’와 같은 사회문제가 아니었을까.

한편, 영화는 남북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을 수도 있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종수와 자존심 하나는 전교 1등이어서 많은 돈을 가지고도 부자가 되지 못한 종수의 아버지는 북한을 상징할 수도 있다. 반대로 교포 발음의 젊은 부자 벤은 대한민국을 상징할 수도 있다. 벤과 종수 사이의 해미는, 태극기 아래에서 북한 땅을 바라보며 옷을 벗어버리고 춤을 춘다. 해미는 춤을 추며 새 모양을 만든다. 따라서 해미가 상징하는 것은 ‘자유’이며, 이는 남과 북이 비록 체제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자유를 열망한다는 해석도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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