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글쓰기 교육 특집(51)] “국제 바칼로레아(IB) 도입과 같은 발상의 전환도 필요”
[독일 글쓰기 교육 특집(51)] “국제 바칼로레아(IB) 도입과 같은 발상의 전환도 필요”
  • 신향식 객원기자
  • 승인 2018.05.2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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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현지 인터뷰]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교수가 전하는 독일 교육
<독서신문>은 창간 49주년을 맞아 신향식  객원기자(신우성글쓰기본부 대표)의 ‘독일 글쓰기 교육’을 연재합니다. 베를린과 함부르크, 비스바덴,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괴팅겐, 튀빙엔, 뮌헨 등 독일 현지 취재와 국내에 체류 중인 독일 교육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독일의 선진적인 글쓰기 문화를 소개합니다. 신 기자는 하버드대와 MIT, UMASS대 등에서 미국 글쓰기 교육을 심층 취재해 보도한 바 있고, 대학과 고교에서도 글쓰기 및 소논문, R&E, 보고서 작성법을 체계 있게 지도하는 논증적 글쓰기 교육의 전문가입니다. / 편집자 주(註)

[독서신문]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를 도입하면 한국 청소년들도 동시대를 살고 있는 세대와 함께 지구촌의 문제를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각 나라마다 문화적 전통과 사회정치적 현실이 다르기에 토론 및 논술을 하는 주제도 다양하겠지요. 우리 문제를 지구적 관점에서 돌이켜보는 ‘이주민’이나 ‘평화’ 또는 ‘자본주의의 미래’ 등 토론 주제는 많을 겁니다.”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전 뮌스터대 교수(74)는 “한국 교육은 학생 스스로 판단하여 답을 적을 수 있는 평가 방식으로 교육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며 “교육담당기관이나 교사들이 근시안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대담하게 미래 세대를 위해 (국제 바칼로레아 도입과 같은) 발상의 전환을 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독일 교육에서는 주관적 사고를 키우고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훈련을 철저하게 시킨다”면서 “객관식 시험문항이 주로 자동차 운전면허시험에나 있는 독일에 비해 한국은 아직도 (내신은 물론 대학입시에서) 암기식, 주입식, 객관식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에서는 다른 과목은 물론이고 수학 문제조차 서술형으로 출제해 답안 과정을 글로 쓰게 한다”면서 “교사는 답안을 이끌어낸 과정을 살펴보고 점수를 부여한다”고 밝혔다. 독일 교육 자체가 ‘사고하는 과정’,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을 중시한다는 뜻이다.

“독일에서는 자기 생각을 확실하게 정립할 수 있도록 지도합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논술식으로 공부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지요. 독서와 토론과 글쓰기를 통해 종합적으로 공부를 하는 겁니다.”


♦ “독일 교육에선 '사고하는 과정',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 중시”

송두율 교수는 “객관식 시험방식이 왜 문제가 되냐”는 질문에 “그것은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객관식 평가방식에서는 제시된 것 중에서 하나만 고르라고 하니 사고력을 키우는 데 역부족”이라면서 “그런 교육 속에서는 사고가 고착되어 창의력을 키우기도 어렵고, (민주적인) 사회로 발전하는 데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0과 1 사이에는 많은 숫자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 아니면 저것을 고르라고 전제하는 식의 교육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넓히는 훈련을 해야겠지요.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주입식, 암기식, 객관식 평가방식에 너무 집착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송 교수는 “4차산업혁명이 인공지능의 시대라며 여기에 적응하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목적처럼 인식되고 있다”면서 “하지만 그럴수록 인공지능을 어떤 목적으로 개발하고 사용해야 하는지 기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반성적 성찰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인공지능, 4차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대담한 교육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에는 관성 따라 움직이는 교육이 학생들만이 아니라 교사나 교육행정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편할지라도 새로운 시대를 위해 발상의 전환이 시급합니다. 수업 및 평가방식을 크게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4월 23일(현지 시간) 송두율 교수의 독일 베를린 자택을 방문하여 인터뷰를 했다. 송두율 교수의 부인 정정희 씨가 함께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이다. 


♦ “독일에선 보통 초등학교 3학년 때 논술 시작”

- 성장기에 어떤 책을 읽으셨는지요? 
“초등학교 때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삼국지', '수호지' 등과 함께 열암 박지원의 '허생전'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여름방학 때 자주 들렀던 제주도와 겹쳐지면서 유토피아에 관한 상상력을 발동시켜준 책이지요. 사춘기에는 세계문학전집과 클래식 음악에 심취했답니다.”

- 철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사연을 듣고 싶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진로를 놓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문학과 철학 책을 탐독했고 이공계에도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다 국사를 가르쳤던 송찬식 선생을 만났는데 물리학이나 건축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나에게 '민족 분단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훌륭한 철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분은 후에 국민대 교수로 한국화폐사연구에 있어서 큰 업적을 남겼는데 불행하게도 일찍 세상을 떴습니다. 그 뒤로 나는 점차 철학을 전공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게 되어 결국 서울대 철학과를 택했습니다.”

- 독일 학생들은 언제부터 논술을 시작하나요?
“(주마다 다르긴 합니다만) 초등학교 3학년에 논술을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단답형 답안이 아니라 자기가 사고해서 글을 쓰게 합니다. 그러니까 토론 문화에 익숙해지게 되지요. 그런 교육 제도는 권장할만 합니다. 한국은 아직도 암기 방식에 집중된 게 아닌지….”

- 교사들이 첨삭을 제대로 해 줍니까? 
“논술 답안지의 절반을 접게 합니다. 절반만 답을 쓰게 한 뒤 그 옆에 교사나 교수가 의견을 달게 합니다. 첨삭을 해 준다는 말입니다. 고교나 대학 모두 그렇게 합니다.”

- 한국에서 유학을 온 일부 학생들은 논술형 시험이 익숙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일부는 자기 생각을 전개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한국에서 객관식 시험문제에 길들여지다보니 과정을 중시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교육을 받았겠지요. 그 때문인지 그들은 독일 대학 공부에 힘들어 하곤 합니다.”


♦ “독일도 한때 교수가 강의 원고 읽어주는 방식으로 수업”

- 제주, 충남, 서울 등 일부 교육청에서 국제 바칼로레아를 공교육에 시범학교 식으로라도 도입하려고 추진 및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만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국제 바칼로레아가 순전히 ‘국제적’ 수준만을 염두에 두고 생각한다면 물론 문제지요. 그래서 시기상조니 교사 준비 정도가 안 되었느니 하면서 제동을 거는 여론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반 수준에서는 어느 나라든 간에 학생들이 충분히 자기 의견을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미 성년이거든요.”

- 독일도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뜨겁겠지요?
“독일에서는 학부모 대표를 선거로 뽑습니다. 교육과정을 논의하는 직원 회의에 학부모 대표도 참여합니다. 담임 한 명이 초등학교 때 처음 3년간 한 학급을 담당하고, 그 후에는 과목별로도 담당 교사들이 분담하여 맡습니다. 담임이 바뀔 때 고마웠다고 책이나 꽃다발이나 와인을 한 병 정도 선사합니다. 그것도 학부모 대표가 합니다. 돈 봉투는 상상할 수도 없지요.”(부인 정정희 씨)

- 독일 대학(인문과학, 사회과학)의 수업 방식이 궁금합니다.
“우리 때만 해도 교수가 강의 원고를 읽어주는 방식이 있었지요.”

- 요즘엔 세미나 수업 위주라고 들었습니다만.
“68년 학생운동을 계기로 권위적인, 일방향적인 수업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거의 세미나 식으로 진행합니다. 물론 수강생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

- 세미나 수업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알려 주시지요.
“다음 학기에 무엇을 수업한다고 강의록에 지향하는 바를 안내해 줍니다. 학기 시작 전에 참고문헌을 제시하여 미리 자료를 찾아보게 합니다.”

- 세미나 수업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겠지요?
“고급과 초급 세미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콜로키움이라는 방식의 세미나도 있습니다. 주로 석박사 논문의 주제를 발표하고 교수와 학생들이 토론하는 형식입니다.”

- 어떻게 진행하나요? 
“세미나 첫 시간에 주제를 알려줍니다. 이번에는 10주 과정으로 어떤 주제로 한다고 공지하면, 희망 학생들이 신청을 합니다. 20명이 넘어가면 두세 명이 함께 한 주제로 발표를 합니다. 분량은 15~20매입니다. 발표자가 중요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나머지 시간에 집중 토론을 합니다.”


♦ “교수는 학생들이 토론에서 어려움 겪을 때 개입”

- 교수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교수는 일단 앉아 있습니다. 발표자와 학생들이 토론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으면 교수가 개입을 합니다. 맨 마지막에 토론을 평가해 주지요. '이런 방향으로 논리를 전개하면 좋았을 것이다', '앞으로는 이렇게 해 보라' 하면서 종합 평가를 해 줍니다. 그런데 유럽의 대학에도 미국식 평가가 도입되어 예전보다는 상당히 도식적이고 건조해졌습니다.”

- 어떤 상황인지 궁금합니다. '도식적이고 건조해졌다'면.
“유럽연합에서는 1999년 6월부터 대학교육과정을 통일했습니다. 이것을 '볼로니야 과정(Bologna Process)'이라고 합니다. 몇 년 간 적응기를 거쳐 실시한 결과, 독일을 포함한 유럽의 대학교육이 미국화된 걸로 보시면 됩니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지요.
“독일은 예전에 학부 과정이 (학생마다 다르지만) 6~7년이나 되어 너무들 힘들어 했습니다. 10년 가까이 공부해서 학부를 마치는 사례도 많았습니다. 강좌마다 수강료를 납부했는데 70년대 초부터는 모두 무상이 되었지요.”

- 그런 상황이었군요.
“그러던 중 이탈리아 볼로니야에서 유럽연합 교육부 장관들이 모여서 대학 과정을 통일하기로 결의했습니다. 그것이 '볼로니야 과정'입니다. 전에는 학사 석사가 하나로 통합되어 오랫동안 공부해야 하다보니 비효율적이었지요. 또 학점이란 개념도 없었답니다. 지금은 학사와 석사가 별도로 있고 두 과정을 합해서 5~6년 정도지만 좀 더 오래 걸리는 사례도 있습니다. 학사만 마치고 직업전선에 뛰어들 수도 있게 만든 겁니다.”

-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나 보군요.
“맞습니다. 길고긴 대학 교육과정이 국가 재정적으로도 부담되었지요. 전문인력이 너무 늦게 취업을 한다는 비판이 나온 겁니다. 그래서 미국식으로 빨리 공부시키고 빨리 사회에 진출하게 한 겁니다.”


♦ “졸업논문 표절 여부 검사하는 전담 교원 있어”

- 그런 변화가 수업 방식에 영향을 끼쳤나 봅니다.
“변화 과정에서 세미나 수업이 전보다 피상적으로 흘러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예전처럼 진지하게 세미나를 하기 어렵게 되어 버렸습니다. 한 주제를 놓고 깊이 있게 토론하기가 힘들어진 겁니다. 개혁 이전에는 학생이 한 학기에 세미나를 2개만 참가해도 무척 부담이 되었습니다. 논문을 그 만큼 깊이 있게 써야 했거든요. 하지만 요새는 그렇지 않습니다.”

- 세미나 수업에 또 어떤 경향이 있나요?
“요즘에는 파워 포인트를 자주 씁니다. 대체로 발표 내용을 요약하여 정리한 뒤 도표나 사진도 첨부합니다. 시청각적 의사소통에 좋은 점도 있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문장으로 표현하는 능력은 떨어집니다.”

- 부작용이 있군요.
“자신의 머리를 쓰는 것보다는 정보를 조합하는 데 집중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발표방식은 사회과학에서는 유용할지 몰라도 철학에는 조금 부적합합니다. 니체의 사상을 설명한다고 해 봅시다. 인용부호 안에 원문을 단편적으로 소개하는 정도로 흘러갑니다. 시청각적 효과를 노리다보니 문장을 통해 자기 생각을 전개하는 데는 방해가 됩니다.”

- 표절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감독한다고 들었습니다. 
“표절 여부를 확실하게 가려냅니다. 그 이유는 학생들이 인터넷으로 검색한 자료를 짜깁기하여 과제를 제출하는 게 쉬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졸업논문의 표절 여부를 검사하는 전담 교원들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일일이 책을 읽고 인용해 가면서 논문을 쓰는 수밖에 없었는데 요새는 워낙 정보가 많다보니 부작용이 생긴 거지요. 자기 머리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자료를 짜집기하고 적당하게 각자의 의견을 섞어서 쓰곤 하는 겁니다. 정보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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