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 예술가 전창운 “인생이란 빈집을 돌아오는 것”
[책 읽는 대한민국] 예술가 전창운 “인생이란 빈집을 돌아오는 것”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5.03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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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테오도르 모노 『사막의 순례자』
<사진=이태구 기자> (장소협찬=마포구 일삼책방)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인생이란, 예술이란, 허허 벌판을 이슬비 맞으면서 혼자서 걸어가는 것이에요. 걷다가, 걷다가 보면 끝내 빈집을 발견하게 되고 우리는 그 빈집을 돌아오는 것이죠. 빈집에는 빈방이 있는데 거기서 우리의 뿌리를 찾게 되는 거예요.”

스물 한 번의 개인전과 두 번의 사진전. 웬만한 전업 작가보다 많은 저서들. 그를 만나기 전부터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대면하니 대단한 것을 넘은 무언가가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마침 칠판이 있었고, 무언가를 그려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그는 스스럼없이 소 한 마리를 그렸다. 소와 모내기하는 여인들은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피사체였다. 그는 “그림 그리는 일은 모를 심어서 생육하는 농사일과 같다”고 했다.

<사진=이태구 기자> (장소협찬=마포구 일삼책방)

‘그림이 예술일까,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가 예술일까.’ 멍하니 그를 바라본 것이 멋쩍어 “파블로 피카소를 닮았다”고 했더니 “그런 말 많이 듣는다”라고 웃으며 굳은살이 박힌 손을 내밀었다. 일흔 일곱의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만큼 손아귀 힘이 억셌다. 그 손으로 붓을 잡고 펜을 들었으리라. 10년 만에 세상에 나온 『화필잡담』의 저자이자 서양화가 전창운 서울예술대학 명예교수는 한 마디로 ‘예술가’였다.

책 이야기는 집어 치우고 예술에 대해 한 말씀 듣고 싶었다.

― 연세에도 불구하고 정력적으로 보이시고, 다작을 하신다.

일생을 부지런하게 살아온 이유는 돌아가신 내 아버지 덕분이다. 내 아버지께서는 “남자는 조기출(아침에 일찍 일어남) 해야 하루를 버는 거야”라는 말을 하셨고 나는 그 목소리를 지금까지도 기억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일찍 일어남’과 같은 부지런함에 의미를 뒀다.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육체를 깨우는 일일뿐 아니라 정신을 깨우는 의식이다. ‘반복되는 일상을 어떻게 깨워 새롭게 맞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일찍 일어나지 않는 삶, 즉 부지런하지 않은 인생은 죽은 인생이다.

―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예술’이란 무엇인지…

한 두 마디로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예술(藝術)’이라는 단어의 ‘예(藝)’ 자로 설명할 수 있다. ‘예(藝)’ 자는 ‘심을 예(埶)’ 자와 ‘향초 이름 운(芸)’ 자로 나눠진다. 즉, 예술의 ‘예’ 자는 ‘생육(生育)’한다는 말, 살아있는 어떤 것을 잘 살 수 있도록 보듬는다는 말이다.

예술은 금방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식물을 심어서 기르듯이 평생을 두고 해야 한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림이 빨리 그려졌으면 하는 욕심이 앞서는데, 새싹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긴 날을 두고 해야 한다는 말이다. 소낙비에 젖을 일이 아니라 이슬비에 젖어서, 인생의 원행(遠行)을 쓸쓸히 가면서 차분하게 해나가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대표작은 대부분 말년에 나온다. 예술의 길은 길고, 녹록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길러진 예술은 인간에게 기쁨을 준다. 즉, 예술은 기쁨을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예술은, 자기 혼자만의 기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즐거워서 시작한 일이 모든 이들에게 기쁨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책임감’이기도 하다.

― 그렇다면 한 사람의 예술은 무엇을 먹고 자라는지…

피카소를 예로 들면, 스페인에서 내전이 한창이었을 때 나치가 게르니카를 폭격하면서 15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피카소는 이 참상을 신문에서 보고, 세계에 알려야겠다는 마음에 7m나 되는 ‘게르니카’를 완성시킨다. 이 그림 안에는 신화, 역사, 전설이 담겨있을 뿐 아니라 피카소가 유년기에 꾼, 육신이 잘려나가는 악몽이 투사돼있다. 예술은 작가와 작가가 품고 있는 세상을 담고 있다. 그것을 먹고 자란다고 봐도 되겠다.

― 예술을 하는데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있다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내 작품을 보고 ‘따뜻하다’, ‘토속적이다’, ‘서정적이다’라고 말한다. 원색적인 강한 색이 툭툭 튀는데도 이러한 표현을 하는 이유는 내 작품이 다가가기 어렵지 않고 ‘친숙해서’라고 생각한다. 내 작품이 친숙한 이유는 작품을 하는 내 자신이 이 모든 세상에 감사하고 존경하기 때문이다. 자연을 감사와 존경으로 대하는 것이 내가 작품을 하는 기본자세다. 자연을 항상 가까이 하려고, 야외 생활을 많이 하려고 노력 한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에, 여행에 빠져서 젊었을 때는 중국의 시안에서 로마까지, 실크로드도 가보고, 교단에 있을 때는 방학마다 여행을 계획했다. 이 모든 자연을 그리며, 사진 찍으며 여행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파키스탄에서는 사진기도 빼앗기고 죽을 위기를 겪은 적도 있다. 지금 내 얼굴이 새까만 이유도 야외 스케치를 많이 나갔기 때문이다. 또한 흙 만지는 것, 생초 만지는 것을 좋아해 아내와 같이 농장을 가꾸며 산다. 내 입이 웃으려면 먼저 흙을 웃기고, 하늘을 웃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즐거움 그 자체가 아니면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세상에 예술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초·중·고등학교 동창 민병삼 소설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내가 “야 병삼아, 도대체 문학은 왜 필요하니?”라고 물으니, 그가 마치 가래침 뱉듯이 “사람 만들려는 거지”라고 말했다. 나에게 묻는다면 "내 책과 그림은 ‘세상에 기쁨을 주기 위해서’ 태어난다"라고 말하겠다. 나는 예술이 ‘치유제’나 ‘치료제’는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겸허하고 평화롭게 만들어 사람들이 이 자연에, 세상사에 감사하게 하는 것이 예술이다. 즉 예술가는 ‘피스 메이커(Peace maker)'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사랑의 전언사다. 작품 안에는 따스한 체온이 흐르고 있다.

<사진=이태구 기자> (장소협찬=마포구 일삼책방)

― 이 시대를 사는 청년들에게, 혹은 예술가가 되기 위해 사는 사람들을 위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첫째로, 이 세상에는 나를 위한 스승들이 널려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듣기’를 잘해야 한다. 생각하기에 따라 풀벌레에게서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둘째로, 항상 감사해라. 나는 아침마다 아내와 “오늘도 새로운 날을 살게 해주셔서 감사 합니다”라고 기도한다.

매일 새롭게 태어나 감사하고, 새롭게 배워야 한다.

예술을 하려는 친구들에게는, 조급해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조급해 하면 지고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낙비 맞아서 이뤄지는 성공은 없다. 적어도 예술은 그렇다. 있더라도 금방 떨어지고 만다. 『장자』에 ‘이시(移是)’라는 말이 나온다. ‘옳은 것도 이사 다닐 수 있다’, 즉 세상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말이다. 남들보다 뒤떨어져서 서글프고 우울해도 자존감을 대나무의 마디처럼 굳게 세워 견뎌 나가야 한다. 절대로 빨리 될 수 없는 것이 예술이다. 완행열차를 탔다고 생각해라. 급행을 탄 친구들이 못 보는 세상을 볼 수 있음에 행복해하고 감사해라. 터키의 소설가 오르한 파묵은 예술을 ‘바늘로 우물 파기’라고 했다. 예술을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 남은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시다면…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서 소녀가 소년이 앉아 있는 개울가에 던진 조약돌처럼, 내 작품이 어느 한 사람에게 어떤 마음의 움직임을 일으켰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겠느냐 생각한다. 일등조우 만등편우(一燈照隅 萬燈偏隅: 등불 한 개가 켜지면 만개의 등이 빛을 낸다)가 됐으면 좋겠다.

― 책을 많이 읽으시는지…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말에 동감한다. 독서신문 홈페이지의 메인 화면에 적어놔도 괜찮을 말이라 생각한다.

― 좋은 책 몇 권 추천해주신다면…

흔히 세계적인 명저를 추천하지만, 나는 테오도르 모노의 『사막의 순례자』를 권한다. 쉽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인생은 빌린 배와 같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이 작은 배를 내가 언제 돌려주게 될까. 세계의 처음과 새로운 내일을 발견하려는 내 탐구심이 고갈되려면 아직 멀었다. 평생 배우고 인내하며 나누고픈 목마름과 열정을 내게 선물한 자연에 늘 감사한다. 과잉의 세계에서 침몰하지 않고 한결같이 나를 지켜준 내 작은 배가 자랑스럽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칠판을 바라보며 “소 한 마리 놓고 가네”라고 했다. 마치 함께 농사일을 하며 고락을 나눈, 살아있는 소와 작별하는 것 같았다. 하루가 지나고서도 여운이 남아 『화필잡담』을 다시 펼치니, 마치 그가 옆에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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