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갑질'에 폭발한 '을'… 반격을 시작하다
'재벌 갑질'에 폭발한 '을'… 반격을 시작하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8.04.2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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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갑질과 관련한 폭로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간 오너 일가의 해코지가 두려워 눈뜬장님으로 지냈던 '을'의 분노가 폭발한 모양새다. 

25일 JTBC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의 갑질과 관련한 새로운 증언을 보도했다. 전 인천 하얏트호텔 직원이었던 A씨는 "2010년 여름 이명희씨가 인천 하얏트호텔을 둘러보면서 혼자만 우산을 쓰고 30분 넘게 돌았다"며 "직원 중 임부복 입은 임산부도 있었지만, 이명희씨는 (직원들을) 마치 조선 시대 노비 다루듯 했다"고 토로했다.

또 2009년 대한항공 비서실에서 해외 지점장에게 보낸 '사모님 지시사항 전달'이라는 제목의 이메일도 공개됐다. 사모님은 이 이사장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XXX 제일 좋은 것 2개를 구매해서 보낼 것", "제품 카탈로그도 보낼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연일 새로운 '갑질'로 주요 뉴스를 장식하는 대한항공 오너 일가에 대응하는 달라진 '을'의 모습을 알아본다. 

◆ '땅콩회항' 박창진 때와 달라진 대응 

2014년 12월 5일 대한항공 오너 일가인 조현아 전 부사장은 땅콩 서비스를 문제 삼아 이륙 준비 중이던 항공기를 회항시켜 당시 박창진 사무장을 하기(下機)시켰다. 해당 일로 조 전 부사장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사측은 박 사무장을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했다. 매뉴얼대로 응대했다고 주장하는 박창진 사무장은 지금까지 외로운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같은 을이었던 동료와 을의 입장을 대변하는 노조가 외면했기 때문이다. 그런 을의 마음속에는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변화가 감지됐다. 일부 인원이 신원이 특정될 위험을 감수하고 '물벼락 갑질' 녹음 파일, 조현민 전 대한항공 여객마케팅부 전무의 폭언 음성 파일, 이 이사장의 갑질 영상 등을 잇달아 공개했기 때문이다. 

<사진출처=연합뉴스>

이어 대한항공 직원이 모여 오너 일가의 갑질을 제보하는 채팅창이 등장했다. 현재 1000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너 일가의 퇴진을 요구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국내 한 법무법인은 "대한항공 경영진 교체를 위해 소액 주주 운동을 벌이기 위해 주주를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혹시 내게 피해가 올까 몸을 사렸던 을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을이 반격에 나선 형세다. 

◆ 워라밸·미투 폭로가 영향 

을이 자신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갑에게 대항하고 나선 것은 최근 워라밸(Work-life balance)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돈을 많이 벌기보다는 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풍토가 자리 잡으면서 상사에 의한 부당행위를 더는 묵인하거나 용인하지 않게 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굽실대며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보다 인격적으로 존중받는 것을 우선하는 이들이 늘었다"며 "구성원과 공감하고 섬길 줄 아는 리더가 더 주목받는 사회로 변한 만큼 경영 주체가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일고 있는 미투 열풍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고은 시인, 조민기 전 청주대 교수 등 정치·예술·문학·교육계 권위자에게 항거하는 을의 모습이 알려지고, 이를 지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또 다른 을이 용기를 얻은 것으로 추측된다.  

◆ 좋은 게 좋다?… NO! '할 말은 한다'  

사회 분위기 변화는 서점가에서도 나타난다. 그간 직장생활에서 살아남는 처세술 위주의 책이 인기를 끌었다면 이제는 '갑질'을 배척하는 내용의 책이 부상하고 있다. 특히 '갑질'과 '차별'을 꼬집는 내용의 에세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베스트셀러 진입이 눈에 띈다. 지난 1월 출간한 해당 책에는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방어적 태도를 탈피해 '할 말은 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2030 세대에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펴낸 가나출판사 서선행 편집자는 "1월 출간 이후 꾸준하게 잘 팔리고 있다. 3월에 잠깐 주춤하다가 4월 들어 다시 판매가 늘고 있다"며 "대한항공 일가의 갑질 논란, 미투 폭로 등의 영향인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저자 강연을 나가면 갑질을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며 "그동안에는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생각했다면 최근에는 '어 이건 아닌데', '더이상 참지 않겠다' 등의 반응이 많았다"고 전했다. 

1970-80년대 경제성장을 이끈 강압적인 리더십에서 파생한 '갑질'이 묵인되던 시대가 있었다. 결과만 보장되면 과정은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활·의식 수준은 진일보했고, '갑질'은 타도해야 할 적폐가 됐다. 이제라도 모든 '갑'이 세상의 변화를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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