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그들은 어떻게 세월을 이기고 전설이 됐나 『노포의 장사법』
[리뷰] 그들은 어떻게 세월을 이기고 전설이 됐나 『노포의 장사법』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8.04.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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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업력(業歷)이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대다. 수많은 식당이 간판에 'SINCE 19XX'를 써 붙이고, 전국의 노포 식당만 찾아다니는 식객도 늘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복합쇼핑몰인 신세계 스타필드는 발 빠르게 광화문 '미진', 의정부 '평양면옥' 등 유명 노포를 입점시키기도 했다. 또한, 서울시는 오래된 가게의 가치를 헤아리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2017년 39곳의 노포를 '오래가게'라는 이름으로 지정한 바 있다. 바야흐로 '노포의 시대'라 할 만하다. 

오래 살아남은 집은 살아남은 이유가 있다. 터줏대감, 원조, 본가… 수많은 수식어를 얻게 된 전설의 밥집들은 우리 시대의 살아 있는 유물이 된 전설적 노포들이다. '글 쓰는 셰프'로 유명한 박찬일 셰프가 한 길만 걸어온 사람들, 그중에서도 서민의 뼈와 살이 돼준 한국의 요식업 1세대 산증인들을 만났다.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됐다. 제1장에서는 멀리 보는 장사꾼의 배포와 뚝심을 뜻하는 '기세' 편으로 채워졌다. '기세'는 평균 업력 50년 이상의 노포 식당의 창업주에게서 발견되는 공통 면모다. 1939년에 창업한 서울 하동관은 지금도 점심시간마다 직장인들이 줄을 서지만, 하루 단 500그릇만 팔고 문을 닫는다는 원칙을 어긴 적이 없다. 매일 최선을 다하되 욕심내지 않는 것, 그것이 하동관의 장수 비결이다. 눈앞의 이익에 흔들리지 않는 장사꾼의 배포는 서울 팔판정육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1940년에 창업해 3대를 이어오는 이곳은 언뜻 동네 정육점으로 보이지만 한때 소시장의 가장 큰 손이었다. 유명 음식점인 우래옥과 하동관이 무려 70년 고객이다. 

제2장은 최고만을 대접하는 집념과 인심을 의미하는 '일품' 편으로 쓰여졌다. 최고의 맛을 위해 고된 노동을 포기하지 않은 노포들이 대다수이다. 화교 출신으로 타국에서 60년 넘게 산둥식 만두를 빚어온 부산의 신발원이나 인천의 신일반점은 오직 손맛으로 일가를 이룬 집념의 장사꾼들이다. "67년째 손으로 빚는다. 그것은 자존심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서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값싼 해산물로 배고팠던 청춘들을 위로했던, 부산의 명물 수중(해물) 전골을 40년 넘게 해온 바다집 창업주도 오직 노동력으로 '1인분 8000원'이라는 싼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제3장은 노포가 세월을 이기고 대를 이어 전설이 된 힘으로 '지속'을 꼽았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고통스러운 근현대사를 맞은 탓에, 우리에게는 백 년 노포가 거의 없다. 지금 노포가 새롭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무엇보다도 대를 이어 수십 년간 업을 지속해 온 위대함을, 그 가치를 이 시대가 재발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메뉴만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노포는 좁게는 개인의 추억 속에서, 넓게는 한 사회의 문화사 속에서 유물이 되고, 독자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대를 이어 47년을 맞이하는 인천의 대전집과 구십세가 다 된 주인이 매일 아침 10시에 문을 열고 맥주를 판매하는 서울 을지로 을지오비베어 등 이 책에 소개된 스물여섯 곳의 노포들 모두가 그러하다. 

이 책에는 저자가 삼고초려를 하면서 한국의 전설적 노포들을 취재하고 위대한 장사 비결을 기록으로 남겼다. 간결하지만 깊은 그들의 장사 내공이 고스란히 담겼다. 노포의 위대한 장사 비결을 배우고 싶다면 이 책이 좋은 교과서가 될 것이다.  

■ 노포의 장사법
박찬일 글·노중훈 사진 | 인플루엔셜 펴냄 | 392쪽 | 1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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