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민·조현아만 사퇴?… ‘빵점’ 한진그룹 위기대처능력
조현민·조현아만 사퇴?… ‘빵점’ 한진그룹 위기대처능력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4.23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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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진정성 없는 늦장 사과가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진그룹의 위기 대처 능력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양호 회장은 일가의 갑질·탈세 논란이 커지자 22일 사과와 함께 조현아·조현민의 경영 퇴진,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이라는 수습책을 내놨다. 조 회장은 “제 가족과 관련된 문제로 국민 여러분과 대한항공 임직원들게심려를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라며 “조현민 전무에 대해 대한항공 전무직을 포함해 한진그룹 내 모든 직책에서 즉시 사퇴하도록 하고,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도 사장직 등 현재의 모든 직책에서 즉시 사퇴하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수습책으로 “대한항공에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겠다”라며 “부회장직을 신설하고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를 전문부회장으로 보임하겠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러한 대처에 대중은 ‘진정성이 없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과거 땅콩회항 사건 당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던 조현아가 집행유예도 끝나기 전에 복귀했으며, 조현민 전무의 ‘물컵 갑질’ 사건이 논란이 된 후 사과를 하기까지 열흘이 걸렸고, 열흘 동안 조 회장의 집무실에 방음 공사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국민 정서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조 회장의 장남 조원태가 여전히 대한항공의 사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석 부회장이 제대로 전문경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을 샀다.

PROne 대표 겸 브랜딩 연구소장 조재형은 그의 책 『위험사회』에서 한진그룹처럼 위기에 처했던 기업의 사례를 들며 기업의 위험 매니지먼트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는 ‘위기 때보다 더 큰 임팩트를 만들어라’이다. 아웃도어 기업인 팀버랜드는 2009년 브라질에서 사들이는 가죽이 산림 파괴는 물론 노예 노동자 양산, 아마존의 토착민 방출 등을 야기한다는 그린피스의 비난에 직면했다. 임원들은 브라질에서 구매하는 가죽이 7%에 불과하므로 향후 브라질에서 가죽을 사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재빨리 사건을 종결하자는 태도를 취했지만 제프 스워츠 최고경영자(CEO)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슈 재발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그린피스와 협력해 원산지 추적 시스템을 만들어 환경 훼손 지역에서 가죽을 공급받지 않도록 했다. 그 결과 그린피스는 한 달 만에 팀버랜드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회사의 노력을 칭찬했다.

월마트는 회사의 상징이기도 한 ‘언제나 싼 값으로’라는 저가 공급 원칙을 내세우지만 이러한 공급 원칙이 저임금과 부실한 사내 복지를 담보로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2005년 18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카트리나 재해 당시 월마트는 신속하게 구호품을 피해 지역 주민에게 나눠주며 생명을 구하는데 앞장섰다. 현지 언론은 “정부도 적십자도 없는 곳에 월마트가 있었다”라며 “월마트 최고경영자 리 스캇이 트럭 운송회사 배차원 출신인데다 월마트에서도 오랫동안 상품 운송부서에서 일한 적 있다. 그의 현장 경험이 크게 발휘됐다”라고 전했다. 그 결과 월마트를 강하게 비판하던 시민단체 조차 월마트에 박수를 보냈다. 비난 여론은 “착한 행위가 밖으로만 향하지 말고, 회사 내 직원에게도 베풀어져야 한다”라는 식으로 누그러졌다.

두 번째는 ‘공중의 관심사에 귀 기울여라’이다. 저자는 “변명하고 해명할 것이 아니라 기업이 앞으로 어떻게 해결하고 변화시킬 것인지 고민하고 실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그는 “개선 의지와 방향성이 결정되면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을 시행해야 하지만 국내 기업은 이러한 원칙에 소극적이다”고 덧붙였다. 과거 KFC 말레이시아에서는 음식을 준비하는 직원이 역겨운 행동을 하는 장면이 촬영돼 물의를 일으켰지만 변명하지 않았다. 곧바로 영어와 말레이어로 제작한 개선 방향이 담긴 동영상을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공개했고, 고객이 궁금해하는 7개 문답 탭을 제공했다. 이러한 신속한 대처 후 회사는 이미지 회복에 성공했다.

세 번째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마라’이다. 2014년 초에 발생한 코오롱의 경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건 당시 이웅렬 회장은 사고 발생 9시간 만에 현장에 나타나 유족에게 사과하고 적극적인 대책을 약속했다. 10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당한 대형 사고였지만 빠른 대응이 사태 악화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1993년 펩시콜라의 사례도 칭찬받는다. 펩시콜라에서 주사바늘이 발견되는 사례가 속출하자 CEO는 위기에 숨지 않고 소식을 접한 날 바로 위기관리팀을 구성해 진두지휘했다. 생산 과정을 언론에 공개했으며, 기업 안팎의 이해당사자를 적극적으로 관리했다. 그 결과 펩시의 그해 여름 실적은 오히려 전년 대비 7% 상승했다.

마지막으로 ‘정직하게 공개하라’이다. 2003년에는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코에너지의 임원이 기내에서 승무원을 폭행한 이른바 ‘라면 상무’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일단락된 뒤 당시 포스코 회장과 계열사 임원은 ‘윤리실천다짐대회’를 열고 한국갤럽에 의뢰해 기업 이미지 조사를 했다. 응답자의 67.2%가 승무원 폭행 사건은 포스코의 명성을 실추시켰다는데 동의하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포스코 측은 조사 결과를 언론에 공개했다. 저자는 이를 “가장 정직한 방법으로 사후 이미지 회복 전략을 실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기업이 위기 이후의 개선 프로그램이 없거나 있어도 이벤트성에 그치는 상황에서 포스코는 자신의 과오를 대중에게 상기시키면서 기업의 가치를 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려놨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위기 대처 능력은 형편없었다. 사과의 골든타임을 놓쳤고, 개선 방안도 설득력이 없었으며, 방음 공사 의혹을 받는 등 자신의 과오를 정직하게 공개하고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경영인으로서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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