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민·조현아·조원태… 재벌 자녀 세습 자격 있나
조현민·조현아·조원태… 재벌 자녀 세습 자격 있나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4.1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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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의 ‘갑질’ 논란과 무책임한 행동으로 지난 12일 대한한공의 주가는 6.5%, 계열사인 진에어의 주가는 4% 폭락하는 등 시가총액 약 2228억이 증발했다. 이렇게 경영자로서 자격 미달인 아들·딸에게 경영자 자리를 세습해서 빚어지는 오너리스크는 2005년 두산가(家) ‘형제의 난’ 때 처음 대두돼서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며 주주들의 피해를 낳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벌 총수들이 그들의 자녀가 경영자로서 자격이 없음에도 차기 총수로 만들기 위해서 온갖 꼼수를 쓰는 폐습과 그 꼼수를 가능케 하는 허점 많은 사회구조를 비판한다.

대한항공 조 전무는 지난달 16일 회의 중에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고성을 지르고 직원의 얼굴에 물을 뿌렸다는 의혹을 받았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지난 2일 해당 사건과 관련된 익명의 글이 올라왔고 삭제됐기 때문이다. 이후 사건은 더 이상 커지지 않는 듯했으나 지난 14일 한 매체를 통해조 전무가 직원을 상대로 고성을 지르며 욕을 하는 음성파일이 공개됐고, 지난 12일 조씨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기내에서 촬영한 사진과 함께 ‘#나를찾지마’, ‘#휴가갑니다’, ‘#클민핸행복여행중’ 등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을 올린 것이 알려져 본격적으로 국민의 공분을 사기 시작했다. 15일 조씨는 귀국해 취재진 앞에서 사과했으나 이미 대한항공과 진에어의 주가는 폭락한 뒤였다. 여론은 조씨를 경영자로서 기업의 주인인 주주에 대한 ‘책임감’과 ‘사회적 공감능력’이 결여됐다고 질타했다.

경영자로서 무능력한 가족 후계자 때문에 주주들이 피해 입은 사례는 2005년 두산에서 시작됐다. 두산그룹은 초대회장 박두병의 자녀 5명이 돌아가며 경영했는데 두산 일가가 박용곤, 박용오에 이어 박용성과 박용만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기로 결정하자 위기감을 느낀 박용오는 박용성, 박용만이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검찰에 고발했다. 두산 오너 일가는 가족회의를 열어 박용오를 모든 직위에서 끌어내렸지만 이후 두산의 주가는 급락했고 검찰은 비자금 수사를 시작했다.

법인카드 유용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아들 조현준 효성 사장, 국정농단 뇌물공여 사건과 경영비리 사건, ‘형제의 난’으로 시가총액 약 1조5000억원의 피해를 초래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그의 형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탈세·횡령·배임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2016년 사면된 이재현 CJ그룹 회장, ‘땅콩 회항’으로 시가총액 2500억원의 피해를 입힌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2005년에 아기를 안고 있는 70대 노인을 밀치고 폭언을 해 구설수에 오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등의 사례도 있다.
 

경영자로서 자격 없는 재벌 자녀의 경영권 세습이 문제

조재형 PROne 대표는 그의 책 『위험사회』에서 “30대 재벌 가운데 오너리스크를 경험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지경”이라며 “아버지 세대와 달리 사회적 검증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영 승계교육을 받았지만 그 시간은 일천했고 직원들로 부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기록이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정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인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재벌은 어떻게 우리를 배신하는가』에서 “재벌이 권력을 형성하고, 나누고, 승계하는 방식은 혈연 중심”이라며 “재산이야 일정한 세금만 납부하면 상속할 수 있지만, 능력이 확인되지도 않은 자녀에게 기업에 대한 지배력과 경영권을 물려주고 물려받는 행태는 누가 봐도 시대착오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시장경제에서 가장 합리적 선택을 해야만 살아남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가장 불합리한 경영권 승계 행태를 보여주는 재벌이나, 인민의 천국을 만든다면서 세습으로 권력을 승계하며 인민을 억압하는 북한 정권이나 한심하기는 매한가지다”라고 덧붙였다.

박 의원은 “재벌 총수들은 그들의 자녀를 차기 총수로 만들기 위해 온갖 시장 교란 행위를 한다”라며 “가족회사 만들어 일감 몰아주기, 계열사에 손해를 떠안기며 자녀에게 온갖 특혜 밀어주기, 세금 없는 경영권 승계를 위해 공익법인 악용하기 등이 동원 된다”라고 말했다.


쉬운 세습 가능케 하는 공익재단이 문제

재벌의 가족 세습과 경영권 방어를 가능케 하는 장치 중에 가장 문제라고 지목되는 것이 바로 ‘공익재단’이다. 국내 30대 그룹에서 출연한 공익재단은 현재 46개다.

공익재단이 세습에 이용되는 가장 큰 이유는 ‘세금 해택’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이 자녀에게 주식을 줄 때 50%를 상속증여세로 내야 하지만, 공익재단에 주식을 넣어놓으면 상속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재벌 회장은 공익재단에 자신의 주식을 기부하고, 공익재단의 이사장으로 자신의 자녀를 앉힌다. 그리고 공익재단은 그 주식을 매각한 돈으로 계열사들의 주식을 사 의결권을 행사하는 식이다. 만약 공익재단을 통하지 않고 상속을 했다면 50%의 주식만큼의 경영권 방어 능력을 잃었을 것이고 경영의 가족 세습도 그만큼 힘들어졌을 것이다.

박용진 의원은 “누군가는 공익재단이 갖고 있는 계열사 주식이라는 게 보잘 것 없는 수준이라 편법 승계와 경영권 방어에 동원된다는 주장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라며 “앞서 삼성의 경우에서 보듯 한국의 재벌기업들은 보유 지분율이 10% 미만인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니 공익재단 소유의 지분율은 결코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해 8월 재벌닷컴의 발표에 따르면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중 20대 그룹의 공익재단이 보유한 계열 상장사 주식규모는 총 6조7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으며, 20대 그룹의 공익재단은 그룹의 핵심 계열사 지분을 5% 이상 대량 보유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에 문제가 된 대한항공이 속한 한진그룹의 공익재단인 정석인하학원과 일우재단의 이사장은 각각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그의 부인인 이명희씨로, 2017년 기준 각각 한진칼 지분 2.14%와 0.16%, 대한항공지분 3.22%와 0.26%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정석인하학원의 경우 한진의 지분 3.97%도 보유하고 있다.

공익재단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또 다른 수치도 있다. 2017년 7월 기업 경영 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가 30대 그룹 중 공익재단에 출연한 26개 그룹의 46개 공익재단의 2016년 목적사업비 지출 현황을 조사한 결과 총 수입 6800억 중 47.1%인 3203억원만을 원래 용도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GS 남촌재단은 13%에 불과한 11억원을, 삼성문화재단은 13.7%인 109억원을 목적사업비로 지출해 가장 낮았다. 이는 공익재단이 공익의 목적으로 쓰인다기보다는 재벌가의 경영권 승계, 경영권 방어의 목적으로 쓰이는 정황으로 볼 수 있다.

과거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이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 바뀐 것을 두고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가 시작됐다는 기사가 나오는 이유도 이처럼 공익재단이 재벌가 세습과 경영권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재벌’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단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재벌’은 한국의 대기업으로 특히 ‘가족 소유의 것’(In the Republic of Korea: a large business conglomerate. esp. a family owned one)이다. 교토대학 시모타니 교수는 “재벌을 재벌답게하는 유일한 특징은 가족의 폐쇄적인 소유경영 지배구조에 있다”고 말했다. 달리 말하면, 다른 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대기업은 주주들의 것이지 ‘가족 소유’가 아니라는 말이다. 실제로 선진국의 가족기업은 단순히 창업자 가문이라는 이유만으로 후계자가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후계자가 되려면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자질과 경영능력을 인정받아야만 한다. 이들은 혈연이 아니라 가능한 다양한 인적자원을 후보군에 올려놓고 치열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후계자를 선정한다.

박용진 의원은 “재벌 총수 일가의 불공정한 기업 지배와 확장이 계속될수록 우리 사회는 활력을 잃고 경제는 쇠락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라며 “재벌대기업이 판을 칠수록, 그들이 누리는 경제력이 더 커질수록, 그들의 정치 지배력이 더 강해질수록 대한민국은 망국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경유착 등 지금까지 재벌의 행태를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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