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대폼장] 방탄 차력사, “오늘날 간신은 누구인가?”
[지대폼장] 방탄 차력사, “오늘날 간신은 누구인가?”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4.1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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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대세에 충실한 스타일의 간신들입니다. 예종 때 남이의 역모 사건과 연산군 때 일어난 두 차례 사화의 중심인물로 중종반정 때 연산군의 반대편에 선 유자광, 인조 때 친청파의 거두였던 김자점, 매국노 이완용 등이 있습니다. 그 중 이완용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완용이 친일파의 대명사지만 처음부터 친일파였던 것은 아닙니다. 이완용은 스물다섯 살 때 문과 급제하여 당시 국왕인 고종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마침 정부에서는 개화기의 인재 양성을 위해 육영공원이라는 근대 학교를 만들고 미국인 교사를 초빙해 교육시켰죠. 육영공원에서 더 큰 세상에 눈뜬 이완용은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돌아와 대표적인 친미파가 됐지요. 미국이 조선의 개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봤던 것입니다. 그러다 1894년부터 1895년 사이에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을미사변 등 우리 역사에 일대 회오리바람이 몰아칩니다. 그와중에 1896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도 일어났죠. 이완용은 이 아관파천을 주도하며 친러파로 변신합니다. 심지어 독립협회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죠.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이완용이 반대파의 공격과 양아버지의 죽음으로 잠시 정계를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러·일 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굳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후 을사늑약 체결에 앞장서고 고종 퇴위와 한·일 강제 병합의 일등 공신이 됐죠. 이토 히로부미는 이런 이완용을 총애했고, 이완용은 이토 히로부미를 정치적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이완용은 힘이 있는 존재라면 국적과 색깔을 가리지 않았지요. 이념이나 소신 같은 단어는 그에게 무의미했죠. 그에게는 안중근이나 독립운동가들의 선택이 절대 이해되지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어리석다고 생각했겠죠. 그런 그가 끝까지 부여잡았던 것은 재산이었습니다.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그는 한국인 2위의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의 정의를 믿는 겁니다. 역사를 배워야 할 이유죠. 간신은 난세에 등장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간신이 난세를 만드는지도 모르죠. 오늘날 우리들도 현대판 간신들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중략) 과거 왕조 시대에 간신을 만드는 것은 결국 무능하고 포악한 군주들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왕조 사회가 아니라 민주 사회입니다. 그러니 결국 간신들이 날뛰도록 만든 것에는 국민들의 책임도 있다는 거죠. 그러므로 다시는 이런 간신들이 날뛰지 못하도록 이제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겠습니다. <55~56쪽>


『방탄 차력사의 오늘 이야기』
차경호 지음 | 노느매기 펴냄 | 360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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