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4월의 노래
[칼럼] 4월의 노래
  • 독서신문
  • 승인 2018.04.1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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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재홍 발행인

‘꽃그늘에 스며든 찬 기운은 기어이 비를 몰고 와 꽃잎 하나 둘 떨어뜨리고 바람마저 거세 가지는 속절없이 웁니다. 땅에 떨어진 꽃잎들은 하늘을 보고, 가지를 붙들고 있는 꽃잎들은 땅을 내려 봅니다. 서로 마주하는 눈길이 애처로워 가지에서 떨어진 빗물은 차라리 봄의 눈물인가 봅니다’

한 지인이 며칠 전 카톡으로 장문의 글을 보내왔다. 몇 년 전 남편을 잃은 심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렸다. 땅에 떨어진 꽃잎과 가지에 매달린 꽃잎의 마주 보는 눈길은 부부의 못 다한 인연을 그리고 있어 애달프다.

4월은 날씨가 흉흉하다. 흐리고 바람 불고 때로는 눈비가 섞어 치기도 하고 그러다 쨍하곤 한다. 사람들이 하늘의 뜻에 순응하기가 어려운 때다.

그래도 소생의 기운은 어김없이 땅속에서 힘을 키우고 어린 잎 하나 솟구치게 하는 것을 보면 그 뿌리의 강건함은 경이롭다. 봄의 햇살 몇 조각 얻으면 겨울을 버틴 대가를 얻는 것이다. 바람은 시샘이요 빗소리는 봄을 흔들어 깨우는 방울소리다. 그래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나보다.

사실 4월의 특징은 잔인함에 있지 않다. 더욱이 우리 4월은 헌법 전문에도 명시된 4·19의 빛나는 저항 정신이 있어 자랑스러운 4월이라고 할 법도 하다. 그 정신은 박종철과 이한열을 낳았고 대통령 탄핵 촛불에 불을 댕겼다.

자유를 향한 의지와 독재에 저항하는 인류 보편의 정신을 기리고 우리를 깨어있게 하려고 4월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도 담은 것 아닌가.

그런데 청와대는 개헌을 시도하면서 헌법 전문에 5·18, 부마항쟁, 6·10 항쟁 등을 새로 넣으려 하고 있다. 5·18 등은 법적 제도적으로 정리됐기에 4. 19 연장선상에서 무리가 없다는 게 청와대 측 설명이다.

여기에 최근 제주 4·3‘사건’과 관련, 정부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좌익폭동에 의한 양민 희생이라는 주장이 여전한 가운데 “4·3은 교육으로 기억되고 전승돼야 한다(이석문 제주도교육감 독서신문 인터뷰)”라는 것도 중요한 외침이 되고 있다.

“이념 충돌로 좌우 양쪽 3만명 희생한 현대사 비극(원희룡 제주도지사)”발언도 관심의 대상이다. 아직 역사적으로 제도적으로 정리되지 않아 중립적 단어 ‘사건’을 쓰고 있다.

그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유족들에게 미안함을 표해 현 정부의 4·3에 대한 인식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마치 4·3을 4·19, 5·18, 부마항쟁, 6·10 항쟁과 같은 반열에 올리려는 의도는 아닌지 궁금함을 자아내게 한다.

진보를 자처하는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동안 오래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지배해왔다고 보이는 가치들의 다양한 변주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한 변주가, 묻혀있던 진실의 부상에서 비롯된 것인지, 피할 수 없는 진보의 계절풍인지 알 수 없지만 국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지 여부는 더욱 알 수 없다. 혹여 역사를 너무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닌지, 잣대는 공평한지, 수렴할 의견도 많고 살펴볼 인물도 한둘이 아닌데 하는 걱정만 앞선다.

4·19 희생 영령, 천안함 호국 영령, 6·25 전쟁 영령 등은 말이 없다. 5·18 희생자, 부마항쟁 6·10 항쟁 희생자, 4·3 희생자 역시 말이 없다. 이들 모두 침묵하는 가운데 우리는 정녕 이들 희생자들을 사랑하고 있는가.

한용운 시인이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라고 했듯이 님들은 침묵하는데 제 멋에 겨운 우리 사랑의 노래는 제 곡조를 못 이기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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