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장품 사내 성폭력 함구 지시?… 성폭력 피하는 방법 유행
한국화장품 사내 성폭력 함구 지시?… 성폭력 피하는 방법 유행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4.0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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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장품 본사 전경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최근 한국화장품에서 심각한 사내 성폭력이 있었는데도 취재하기 전까지 가해자들에게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화장품의 직원들은 심지어 경영지원본부로부터 ‘함구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아직도 사회에 성폭력이 만연하며, 성폭력이 이슈가 되지 않는 이상 가해자들은 무사하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성폭력 중에 이슈가 되는 사건은 몇 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다수의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으며 잠재적인 성폭력 피해자들은 여전히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성폭력 대처법이 담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 수주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와 있는 것도 ‘성폭력은 잠재적 피해자 스스로 대처해야 한다’는 사회의 공포감을 반영한다.

지난 2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한국화장품의 자회사인 더샘인터내셔날에서 성폭력이 있었고,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성폭력 피해사실을 덮고 가해자 3명을 감쌌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게시글은 얼마 안 돼 삭제됐다.

게시글의 글쓴이는 3명의 가해자가 직원들에게 행한 성폭력을 구체적으로 열거했다.

게시글에 따르면 영업관리팀의 A대리는 지난해 9월 영업회의 후 회식이 끝나고 여직원에게 자신의 아내가 처가에 가 있으니 집에서 술 한 잔 더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해당 여직원에게 “퇴근하고 술 한잔 같이 하고 싶다”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해왔으며 회의 도중 갑자기 “너무 예뻐서 회의에 집중할 수가 없다”라고 했고 회의가 끝난 후 “안아 달라”고도 말했다. 그는 회사 내에서 “따로 술 마시자”는 내용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냈고 회식자리에서 어깨를 감싸는 등의 스킨십을 여러 차례 시도했으며 회식이 끝난 후 전화로 “영등포에 좋은 곳, 자리 마련해놨으니 지금 와 달라”라고 5번 이상 말했다.

구매팀 B과장은 회식이 끝난 후 여직원과 택시를 같이 탄 뒤 얼굴을 들이대고 입술을 내밀며 키스해달라고 말했다. 식당에서는 여직원 옆에서 웃으며 여직원의 허벅지에 손을 올리거나 허벅지로 엎어지며 웃었다. 지방 출장에서는 여직원과 술을 마신 후 같은 방에 들어가서 자자고 했다. 워크숍 술자리에서는 여직원에게 “xx는 색기가 있다”라고 말했고 레크레이션 도중 “xx직원 엉덩이가 제일 힙 업 돼 있다”라는 말을 했다. “내가 결혼만 안 했더라면 사귀고 싶다”는 말을 들은 여직원이 다수라고 했다. 그는 평소 사내 대다수 여직원들의 얼굴과 몸을 습관적으로 훑어보고 평가하며 “xx직원은 생각보다 가슴이 크다”, “xx직원은 골반과 엉덩이가 없다”, “xx직원은 다리 라인이 예술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직원들에게 “내가 유부남만 아니었다면 연애는 xx직원과 하고 결혼은 xx직원과 하고 싶다”라는 말을 했다.

재무팀 C주임은 다수의 여직원들에게 회식 자리마다 옆으로 와서 허리에 손을 두르고 거절해도 쫓아와서 지속적으로 허리에 손을 두르는 행위를 계속했다. 상품기획팀 xx대리와는 합의하에 손을 잡고 스킨십을 하고 노래방에서 껴안고 만지며 춤을 췄다. xx직원에게는 허벅지를 만지면서 수차례 스킨십을 시도했다. 워크숍에서는 xx팀장에게 스킨십을 했다가 제지를 당했고 xx직원에게는 밤마다 연락했다.

글쓴이는 “위의 가해자 3명 징계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회사 내에서 너무나도 많은 피해자들과 목격자들의 증언이 있었지만 경영지원본부 이사(임원)는 징계하겠다는 말을 번복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교육시간에 모든 직원들 앞에서 이번 일은 함구 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했고 추후 발생하는 건에 대해서만 처벌하겠다고 했습니다”라며 “이번 사건으로 인해 여직원들이 받는 대우와 인격모독, 뼈져리게 느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제대로 된 조치 취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글을 끝맺었다.

그러나 글은 삭제됐고 사측은 ‘이번 사건은 함구하겠다’는 입장을 이뉴스투데이의 취재가 시작될 때까지 유지한 것으로 보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늦장대응이라는 오명은 지울 수 없다. 지난달 블라인드에 성폭력 폭로 댓글이 올라온 것을 시작으로 지난 2일에 ‘사측에서 성폭력을 무마하려했다’는 게시글이 올라온 이후, 성폭력 사실이 사내에 이슈가 됐음에도 가해자들에게 내려지지 않던 징계조치가 취재가 시작되자 뒤늦게 내려졌다.

취재가 시작되자 내려진 징계조치는 ‘가해 직원 3명의 해고’였다. 더샘인터내셔날측은 성폭력 의혹을 덮으려는 행태는 강력히 부인하며 “내부 성희롱 사건은 블라인드 게시물로 파악하고 있었다”면서 “정확한 피해 사실을 확인하던 단계이며, 가해자로 파악된 직원들은 퇴사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가해 사실을 함구’하고 있던 시간이 ‘피해 사실을 확인’ 하는 시간으로 바뀐 것이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

일각에서는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 수주간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른 이유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과 갑질에 스스로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국화장품 사례에서 보듯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이 일어나면 사회는 피해자를 돌봐주지 않으며 상황은 여전히 가해자에게 유리하다. 피해자 스스로 대처법을 배우고 연구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저자인 정문정 <대학내일> 디지털미디어 편집장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준의 성희롱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괴물을 키우지 않을지, 성희롱을 당했다면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보태고 싶다”며 성폭력을 당했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로 성희롱을 당했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내가 예민한 사람인 거겠지’, ‘그분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 하는 생각을 멈추는 것이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추후에 제지하거나 불쾌감을 표현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다 보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그냥 두고 피해 받은 자신을 책망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실제로 여성가족부가 2015년 직장 내 성희롱 실태를 조사했을 때, 성희롱을 당한 사람 중 78.4%가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고 넘어갔다고 응답했다.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서’가 가장 큰 이유였고, ‘신고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가 두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로 할 일은 웃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정색하면서 거부하기 힘들더라도 최소한 웃지는 말아야 한다”며 “많은 여성은 성희롱을 당했을 때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해 웃어버리곤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성들은 거절할 때조차도 너무 단호하게 들릴까봐 머쓱하게 웃고, 카카오톡 등 SNS에서 성희롱적인 말을 들었을 때도, 성희롱했던 사람이 카톡을 보내와 이에 답장을 할 때도 ‘ㅎㅎ’ 같은 표현을 하는 일이 많다”며 “가해자들은 이를 악용한다”고 주장했다. 상대도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고 생각했다거나 적극적인 거부 의사를 알리지 않았다는 증거로 쓰는 것이다. 그는 “단체 채팅방이나 개인 카톡으로 원치 않게 야한 사진이나 영상을 받으면 읽고 아예 답하지 않아야 한다”며 “상대가 눈치를 보게 하자”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할 일은 ‘이상함을 감지했다면 둘만 있게 되는 상황을 피하는 것’이다. 저자는 “부득이한 이유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최대한 모든 것을 문서로 남겨두자”고 말했다. 그는 “방금 말씀하신 거 녹음해서 인터넷에 올리면 순식간에 유명해질 것 같지 않으세요?”, “요즘 그렇게 말씀하시면 큰일 나요” 같이 분명하게 문제가 되는 상황임을 경고하는 것도 유용하다고 덧붙였다.

몇 해 전 청년 취업난 문제가 대두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이 많아지자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유행했고, 지난해 불안한 사람들이 많아지자 위로의 글을 담은 『언어의 온도』가 잘 팔렸다. 베스트셀러는 이렇듯 사회상을 반영한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 흥행하는 이유도 그만큼 ‘무례한 사람’이 많은 사회이기 때문이리라. 문제가 무엇인지 알았다면 해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더 이상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 유행하는 사회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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