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아직까지는 무죄다… “너무 쉽게 낚이는 사회”
미투 운동, 아직까지는 무죄다… “너무 쉽게 낚이는 사회”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3.13 17: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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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 소문으로 단죄해서는 안 된다
<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최근 들끓는 미투 운동이 양성 평등을 위한 새로운 사회운동으로서 긍정적 효과를 양산하고 있지만, 확인되지 않은 소문으로 한 쪽을 궁지로 모는 마녀사냥식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모든 사건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문이 진실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식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소문이 진실이 되고, 그 영향력이 막강한 사회에서 자살, 진실왜곡 등의 병폐가 일어난다는 염려가 있다. 

지난 7일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이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을 퍼뜨리자 매체들은 일제히 정 전 의원을 성추행범으로 ‘프레이밍’ 했다. 다수의 매체들은 “민주당 복당한 정봉주도 ‘성추행 미투’…수감 앞두고 대학생 강제키스 시도”와 비슷한 제목의 기사들을 쏟아냈고 “<프레시안>의 단독 인터뷰에 따르면 정 전 의원은 현직기자인 A씨가 대학생이던 2011년 호텔로 불러내 키스 시도를 하는 등 성추행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라는 식으로 적어 성추행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마치 정봉주 전 의원을 성추행범인 것처럼 몰았다. 이에 정봉주 측에서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반박하자 매체들은 근거가 부족한 그의 주장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제목을 잡고 기사를 작성했다.   

네티즌들은 어느 쪽의 주장이든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 그들은 주장에 근거가 부족하더라도 각자 믿고 싶은 것을 믿었다. 정봉주 전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어 프레시안의 보도에 반박하기 전까지 매체들의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정봉주도 정치 인생 끝났네”, “문재인이 책임져야지”, “문재인이 성추행범을 특별사면 해줬어”, “정봉주 부인은 무슨 죄”라는 식으로 이미 정봉주 의원의 성추행 의혹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12일 정봉주가 프레시안의 기사에 반박하자 ‘프레시안’이 한동안 포털 검색어 순위에 오르며 “프레시안이 잘못했네”, “프레시안은 제발 증거 좀 내밀어라” 등 프레시안을 비판하는 댓글들이 쏟아졌다.  

오늘(13일)까지 프레시안과 정봉주 전 의원은 각자의 주장을 끊임없이 반박해 진실은 미궁에 빠졌다. 이제 쟁점은 ‘정봉주와 미래권력들’의 카페지기였던 ‘민국파(카페 닉네임)’의 주장이다. 그가 2011년 12월 22일부터 26일까지 정 전 의원을 밀착 수행한 것이 사실이라면 정봉주는 곤란해진다. 

진실 공방의 형국이다. 그러나 아직 정 전 의원이 확실히 무죄나 유죄라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미투 운동으로 인해 성추문에 휩싸인 50여명의 사람들 대부분이 조사 과정에 있을 뿐, 혐의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물론 그들 중에는 스스로 혐의를 인정한 사람도 있지만, 그들이 인정하지 않은 혐의들까지 언론은 사실인 것처럼 언급하고 대중들은 어느새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진실인양 받아들이고 있다. 진실 여부를 떠나 이 같이 편향된 대중의 관심이나 언론의 보도 행태는 되짚어 봐야할 부분들을 안고 있다.

“너무 쉽게 낚이는 사회”… 냄비공화국

PROne 대표 겸 브랜딩연구소장 조재형은 그의 책 『위험사회』에서 우리나라를 “너무 쉽게 낚이는 사회”라며 사설정보지(찌라시) 같은 의혹이 진실로 받아들여져 빠르게 퍼지는 점을 비판했다. 그는 소문이 사실처럼 급속하게 퍼져 개인과 사회에 피해를 입혔던 여러 가지 사건들을 지적했다. 

2014년에는 미국에 사는 최모씨가 일간베스트 게시판에 이건희 회장이 사망했다는 소문을 올렸다. 해당 소문은 빠르게 퍼져 하루 동안 삼성전자의 주가가 12조원이 넘게 출렁였다. 급격하게 퍼진 거짓 정보 때문에 악플에 시달렸던 배우 고(故) 최진실은 자살했다. 배우 류준렬이 일간베스트 회원이라는 거짓이 몇 시간 만에 퍼진 일도 있었다. 대중들은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류준렬이 일간베스트 회원이라고 단정 지었다. 국방부는 “닭, 오리, 달걀을 먹어도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릴 수 있다”, “AI가 발생한 뒤 군대 식단에는 닭만 나온다”는 소문이 확산돼 고초를 겪었다. 가수 타블로의 경우도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졌고 주동자에게 최고 2년 6개월의 형량이 선고됐음에도 여전히 ‘타진요’ 등에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 걸그룹 맴버는 악성 루머 때문에 데뷔 이틀 전에 빠져야 했고, 거의 1년여의 시간이 지난 후 합류할 수 있었다. 

“루머는 루머일 뿐?”… 소문의 영향력

소문이 빠르게 전파돼 대중들이 이에 쉽게 속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소문이 갖는 영향력이다. 세계적인 루머 전문가이자 『루머사회』의 저자 니콜라스 디폰조는 “소문은 개인과 사회를 휘두른다”라며 소문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지적했다. 

그는 히틀러가 독일 국민에게 경제공황의 원인이 “유대인이 경제를 장악하고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소문을 퍼뜨려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한 예를 들며 “소문이 사람 눈을 가린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문이 “의견, 선입견, 공포, 애정, 명성뿐만 아니라 선거에서 행사하는 한 표, 사귀게 될 친구, 진학, 취업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또 소문이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어떤 것이 혹시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준다고 설명했다. 2007년 중국에서는 ‘바나나에 사스 바이러스가 있다’는 소문이 퍼져 사람들이 바나나를 기피했다. 

사람들은 소문을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정계, 재계, 언론, 연예가 사설정보지(찌라시)에 따라 주가가 상승할지 하락할지를 예상하고 행동한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소문으로 개인이 속한 집단을 파악하고 상황에 대처하려는 동기를 부여받는다. 예를 들어 비슷한 일을 하는 비슷한 경력의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많은 연봉을 받고 있다는 소문을 듣는다면 자신의 연봉과 비교하고 공정한 수준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배우 고(故) 조민기의 발인은 경찰 조사가 이뤄질 예정이었던 12일에 진행됐다. 그가 정말 성추행을 저질렀느냐를 떠나서 사실관계를 넘어서는 소문은 어느새 진실이 돼 그를 괴롭혔을 것이다. 확실한 사실은 그가 아직까지 ‘무죄’라는 것이다. 

최근 대다수의 미투 운동들도 객관적으로 본다면 증명이 될 때까지는 피해 당사자의 일방적인 주장만 있을 뿐이다. 밝혀지지 않은 소문을 믿고 한 사람을 불한당으로 모는 행태는 중세시대에 한 여성을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했던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가해자들이 잘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가 확실히 밝혀졌을 때에야 그들에게 “잘못했다”고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치주의를 따르는 양식 있는 국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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