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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연극은 끝났다
방재홍 발행인

경남 밀양의 한 황토방이 연극문화의 열기로 달아오르는 줄 알았건만 연극연출가 등의 욕망을 채우는 또 다른 열기로 달떠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오래전 한 젊은 시인이 ‘압구정에선 정액 냄새가 난다’고 했을 때도 참으로 점잖지 못한 언사라고 토를 달았지만, 밀양의 황토방도 압구정 못지않은 배설의 현장이었다니 기가 막히다.

요원의 불길이라는 표현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라는 한 여검사의 성추행 피해 사례 공개이후 우리 사회는 문화계 뿐 아니라 대학가 등에서 왕성한 파급력으로 수많은 ‘괴물’들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더 많은 ‘괴물’들은 미공개의 장막 뒤에서 잠을 못 이루고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일촉즉발, 위기일발이라는 말이 적당하겠다.

이윤택, 조재현, 오달수 등의 ‘연극’은 끝나고 ‘가면’은 벗겨졌다. 무대 예술을 지휘하거나 스크린 또는 TV 화면에서 보았던 그들은 더 이상 우리가 아는 그들이 아니었다.

대중 인기는 권력으로 변질했고 권력은 다시 약자를 희롱하는 데 더 없이 좋은 도구가 됐다. 많은 대학 교수들도 이름만 공개되지 않았을 뿐 SNS에 오르내리고 있다. 연구실은 또 다른 황토방이었다.

고은 시인은 참으로 애통하다. 최영미 시인의 폭로가 아니었어도 ‘기행’은 알 만한 사람들은 알았다고 한다. 다만 고은의 문단 내 위상 또는 진영 내 상징에 가려 그런 일들은 묻히고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매년 거명되었기에 그 명성의 추락은 쓸쓸하기 짝이 없다. 독서신문은 2016년 10월 그를 인터뷰했다. 광화문에서 만난 그를 기자는 ‘휘적휘적 걸음이 전형적인 남성같지 않다’고 했다.

손을 맞잡은 기자는 또 손도 뼈마디가 연약하다고 했다. 그리고 일년 하고 서너달, 고은은 황혼의 저 끝에 바스락거리는 낙엽처럼 쇠락한 늙은이처럼 구부정하다. 그 연약한 손마디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울음을 삼키고 수치에 떨었다고 했다.

문학적으로 노벨문학상에 근접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용감하게’ 작품성에 회의를 보였다. 이시영 시인은 고은 시인이 다산이면서도 태작(馱作)이 많다고 지적했다.

한국 현대시의 도도한 강물이었다고 칭송받던 시작(詩作) 60년은 ‘똥물(최영미 표현)을 튼 시간’이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고은의 급전직하(急轉直下)는 가슴 먹먹해지는 일이지만 문학적 성취에 대한 공과 논란은 필요해 보인다.

미투 운동의 출발은 수치를 무릅쓴 피해 사례 공개이지만 지향점은 단순 폭로에 있지 않다. 어려운 명제 ‘성평등’에 있다. 남성들이 권력을 이용, 성희롱·성추행·성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문제는 남성에 있다.

급기야 ‘남성’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 모든 평등의 출발은 성평등이라고 천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세계 첫 대통령이라는 비공식 타이틀도 얻었다.

오래전 여성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여성 해방을 위해서는 남성의 도움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평등을 향한 노력은 정책으로 결실을 맺어야 하고 정책이 역할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정책과 시스템의 열쇠는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 남성이 쥐고 있다. 그 열쇠를 남성에게서 빼앗을 것인가, 열쇠를 돌리도록 남성을 움직일 것인가 하는 게 지금도 현실적 고민이다. 마거릿 미드 여사는 후자가 현명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대통령이 말한 성평등을 향한 노력은 이제 정책에 맡겨야 할 일이다.

다만, 미투 운동을 ‘공작적 측면’ 운운하면서 ‘좌파 분열 노림수’ 등등의 해괴한 논리를 공개적으로 폄훼하는 일각의 정서는 아연 실색케 한다. 또 이런 발언을 비판한 의원에게는 ‘내부 총질’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니 이 또한 해괴하다.

성추행 성폭력에 보수 진보가 따로 있나. 미투에도 진보 보수가 있나. 미투를 응원한다는 말조차 조심스럽다. 그러나 미투 여성들은 용감하다. 끝을 알 수 없는 행렬이기에 더욱 용감하다.

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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