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함정을 파서 추궁한다” 태종의 정치 스타일
[책 속 명문장] “함정을 파서 추궁한다” 태종의 정치 스타일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3.0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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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조정에서는 불교적 의례를 다 없애느니 마니 하는 이 때에, 이성계는 뒤로 내시를 보내 친했던 국사의 기념물을 설치하게 하고, 거기에 자신과 사적으로 친밀한 인물들과 정작 개국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인물들이 참여하게 했다. 공양왕대 정도전 등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그렇게도 연복사 중수를 문제 삼고 있을 때, 정작 이성계는 뒤로 대장경을 봉안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복사 공사까지도 마무리하고서는 한양 천도 이전인 1394년까지 매해 성대한 문수회를 행했다. 이쯤 되면 소문도 났던 모양이었다. 당시 불사를 열 것이니 시주를 해달라고 돌아다니던 연화승들 중에는 이 불사가 바로 임금님이 지원하는 것이라며 사기를 치고 다녔던 경우들도 꽤 있었다. 이런 행위들을 일체 금지시키라는 명령이 실록에까지 수록된 것을 보면, 물밑에서 처리할 정도가 아니었던 듯하다.<94~95쪽>

한양이라는 수도의 모습은 개경과 비교할 때 전혀 새로운 무엇이라는 느낌이기보다는 전반적으로 매우 비슷한 모습인 점은 틀림없다. 수도의 계획 도면을 만들 때 참여한 인물들 면면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지리 지식이 뛰어나다고 인정받았던 권중화나 김주, 이직 같은 사람들이 참여했다는 점은 계획안을 만들 때 이전의 지리 지식을 많이 참고했다는 의미일 것이기 때문이다.<128쪽>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하겠다는 명을 내렸지만 이를 그대로 추진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여전히 한양 천도를 반대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태종의 오른팔이라 할 하륜은 이 틈에 다시금 무악이 최상의 천도지라는 의견을 적극 개진했다. 그러자 태종은 무악을 답사하겠다면서 1404년 10월 2일 조준, 하륜 권근 등과 여러 종친, 윤신달, 유한우, 이양달 등의 서운관원을 데리고 무악으로 떠났다. 앞서 태조대 천조 논의에도 참여했던 바로 그 서운관원들이었다. 그런데 이때 논의 과정을 보면 태종이라는 인물의 캐릭터가 확연하게 들어온다.<194쪽>

한양이 석산이 험해서 좋지 않은 땅이라면 태조대 한양을 도음으로 택할 때 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냐는 비수 같은 질문이었다. 그러자 윤신달은 “신은 그때 마침 어버이의 상을 당해 호종하지 못했습니다”고 답했다. 거짓말이다. 그는 분명 태조대 무악을 답사했을 때 그 자리에 있었다. 유한우는 자신에게 결정권이 없었다는 비겁한 변명을 했다. (중략) 그러자 태종은 내 앞에서도 너희들이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데, 다른 데서는 승복을 하겠냐며 비아냥댔다.

다른 경우에도 태종의 이러한 스타일이 잘 드러난다. 함정을 팠다가 걸려들면 가차 없이 추궁하는 태도, 상대에 대한 거침없는 조롱, 자신이 신뢰하는 이는 어떻게든 감싸주지만(이 경우에는 하륜이 그 대상이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가혹하게 숙청할 수 있는 냉혹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나쁜 수단도 거침없이 사용할 수 있는 과단성, 이런 인물을 상사로 모시기에 어떨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태종이 이렇게 이들을 추궁했던 것은 수도를 옮겼다 돌아갔다 다시 옮기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모양 좋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195~196쪽>

『경복궁 시대를 세우다』
장지연 지음 | 너머북스 펴냄 | 308쪽 |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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