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으로 드러난 무소불위 권력자들의 민낯
‘미투’ 운동으로 드러난 무소불위 권력자들의 민낯
  • 권보견 기자
  • 승인 2018.03.01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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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직도 권력 남용하는 ‘왕’ 많아
<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권보견 기자] 법조계를 넘어 문화계·예술계 등 사회 전반에 ‘미투’ 캠페인의 불길이 번지고 있다. 이로 인해 권력의 힘 뒤에 숨어 성범죄를 일삼던 인물들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대중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달 서지현 검사의 고백이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자신이 성추행 피해자라고 밝힌 현직 검사의 고백은 성범죄 피해를 당하고도 이를 밝히지 못했던 여성들의 고백을 이끌어내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에 법조계를 넘어 문화계·예술계 등 사회 전반에 감춰져 있던 성범죄 피해 사실이 하나둘씩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직 검사의 고백에 용기를 얻은 피해자들의 폭로가 이어지자 직장인 커뮤니티 어플 ‘블라인드’에서는 지난 1일 ‘#미투(#Me Too)’ 게시판을 열었고, 게시판을 연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캠페인 참여 글이 400건을 돌파하면서 문화계·예술계·학계 등 곳곳에서 새로운 피해 사실이 추가로 폭로되고 있다.

한편 서지현 검사, 최영미 시인, 홍선주·송하늘 연극배우가 가해자로 지목한 안태근 검사, 고은 시인, 이윤택 연출가, 조민기 배우에게는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피해자들에게 사회적 권력을 이용해 인사 상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어 배역을 바꾸거나 학점이나 학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권한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가해자의 주변 권력들이 일방적으로 가해자 편을 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조직의 힘을 이용해 피해자의 용기 있는 고백을 인사 불만, 배역 불만, 학점 불만 그리고 명예훼손 등으로 매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권력을 손에 쥐고 칼을 휘두르는 ‘왕’

현재까지 법조계·문화계·예술계 그리고 학계 등에서 폭로되고 있는 성범죄는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다. 이와 같은 분야에서는 일을 배우고 꿈을 향해 걸어가기 위해 스승과 제자 관계가 성립되는 ‘도제식 시스템’을 거쳐야 한다. 이에 몇몇 권력자들은 등단을 비롯해 데뷔, 전수, 학점 등을 좌지우지하며 힘없는 자들을 괴롭히고, 희롱하며 중범죄를 일삼았다.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특히 문화·예술계에서는 이 같은 권력형 범죄에 대한 소문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이는 모두 가해자가 자신의 지위와 인기, 영향력을 무기로 내세워 피해자들을 만든 경우로, 성범죄 특성상 피해자가 되레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몸을 숨기기 때문에 그들의 추악한 모습이 지금까지 수면 아래 숨겨져 있을 수 있었다.

‘미투’ 운동 바람을 타고 각종 제보가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각각의 사건에 대한 진위 여부는 정확하게 가려져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각종 성적(性的) 적폐들을 수면위로 올려 진위 여부를 따지고 마땅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특히 반복적인 악행을 저질러온 상습범에게는 피해자의 고통을 능가하는 단죄가 주어져야 한다. 둑에 구멍이 난 이상 상습범에게 당한 많은 피해자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실제로 현재까지 성범죄와 관련해 실명이 드러난 이들에 대해서는 피해 증언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증언은 모두 구체적이며, 피해자가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자신의 이름이 거론될까 노심초사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잘못한 행동이 있었는지 뒤를 돌아보는 움직임 또한 감지되고 있다.

한편 ‘미투’ 운동이 문화계 물갈이, 세대교체로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 또한 나오고 있다. “몇몇 가해자들을 단죄하는 선에서 끝나서는 안 되고, 도제식 시스템과 각종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문화계 전반적인 시스템 개선과 변화의 물결이 수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한 여성 드라마 제작자는 “권력형 성범죄는 우리 사회 전반에 있다. 문화계, 연예계만의 문제가 절대로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문화계가 대중의 관심을 많이 받는 분야인 만큼 이참에 사회 전체 ‘미투’ 운동에 힘이 실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칼에 찔려도 묵인하는 ‘방관자’

‘미투’ 운동의 열기가 식을 줄 모르면서 한 가지 의문 또한 제기되고 있다. “성범죄가 이뤄진 자리에 함께 있었거나, 이러한 성범죄를 목격하거나 인지하고 있던 사람들이 어째서 방관했는가?”하는 것이다.

이에 ‘조직의 폐쇄성’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법조계·문화계 그리고 예술계에서는 유력자의 권력이 상당하다. 안태근 검사나 이윤택 연출가가 성범죄를 저지르면서도 그런 사실이 은폐될 수 있었던 건 혹여나 피해를 입을지 몰라 방관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개인에게 희생을 거리낌 없이 강요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지적도 있다. 연희단거리패 단원이었던 홍선주는 인터뷰에서 “김소희 대표가 안마를 조력자처럼 시키고 후배들을 선택하는 역할을 했었다”며 “안마를 거부했더니 쟁반으로 가슴팍을 밀치면서 ‘어쩌면 이렇게 이기적이냐. 빨리 들어가라’고 강요했다”고 밝혔다. 성폭력에 반발하면 이를 ‘이기적’으로 몰아갈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투’ 운동은 사회 시스템에 변화에 움직임을 이끌어 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성폭력 관련 의식 또한 바꿨다. 쏟아져 나오는 ‘미투’ 고발에 “나도 방관자였다”면서 많은 남성들이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지난 2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남학생 A가 자신을 청주대 졸업생이라고 밝히면서 “방관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고 회개합니다”라며 “비난을 받으며 침묵하기보다 함께했던 동료들을 위해 이제 사실을 모두 적겠다”고 밝혔다. 지난 22일에는 같은 학교 남학생 B씨가 ‘조민기 매뉴얼’의 존재를 처음 알리기도 했다.

그에 앞서 성범죄 논란에 휩싸인 극단 연희단거리패 출신 오동식(46)은 이윤택의 공개 사과 기자회견 다음 날인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연희단거리패에서 있던 일들을 은폐하고 방관했다”고 털어놓으며 기자회견 사전 연출을 폭로한 바 있다. 이 같은 오씨의 폭로는 다른 문화·예술계 인사를 둘러싼 추가 폭로에 영향을 미쳤다.

한편 용기를 낸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힌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피해자들의 외모를 비하하거나 업무상 능력을 거론하면서 오히려 피해자들을 가해자로 몰아가는 일부 분위기는 피해자들에 대한 2차 피해를 낳고 있다.

이처럼 피해 사실을 용기 있게 고백하는 피해자들이 서로를 응원하고 연대하는 분위기와 피해자들에게 손가락질하는 풍토가 혼재한 가운데 어느 분야에서 어떤 내용이 추가로 터져 나올지 알 수 없다. 서지현 검사의 고백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포털사이트를 도배한 성범죄 사건들이 언론에 전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문화권력·학계권력·정치권력 등 우월한 위치에 자리한 권력자에 대해 그동안 언론에 제대로 감시했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본의 아니게 병풍 노릇한 적은 없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며,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들에게 먼저 손가락질하는 행동은 지양해야 한다. 2016년 여성가족부의 성범죄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범죄 피해자의 경찰 신고 비율은 2.2%가량에 불과하다는 결과는 절망적이다. 오죽하면 현직 검사가 방송에 출연해 피해를 호소하고, 대학생이 교수의 성범죄를 피해 도망 다니며 묵인해야 했을까. 성범죄는 어떤 기준을 막론하고 절대적 범죄다. 미투 운동이 빠른 속도로 사회 전반에 확대되고 있는 이 시점에, ‘더 넓게, 더 빠르게, 더 자세하게’를 외치는 국민의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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