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묵인하는 갑질 대한민국… 학계는…
성범죄 묵인하는 갑질 대한민국… 학계는…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2.23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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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도 성범죄 가능성 높아
잇따른 ‘#Metoo’에도 대학 갑질은 현재진행형
<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고은 시인, 조민기 교수, 이윤택 연출가 등 최근 잇따른 성범죄 의혹의 핵심은 지나친 갑을관계였다. 성범죄 피해자들은 거부할 수 없는 권력의 상하관계가 있었기에 그동안 침묵했었고 폭력을 당해왔다. 한편, 이러한 갑을관계에 노출되는 시기가 막 20대가 된 대학생 때부터이고, 대학(원)생들은 그러한 권력관계에 속절없이 노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학생 치고 갑질 안 당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실제로 대학에 갑질이 횡행하고 있냐는 질문에 서울 소재 유명 사립 음대 졸업생 조모씨가 한 말이다. 그녀 뿐 아니라 다른 학부생들 역시 교내 연주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실기점수에 불이익을 준다는 학칙 때문에 다른 일정을 포기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연주회에 동원돼야 했다.

또한 조교실에서 교수의 외부 공연 티켓을 강매하는 일도 빈번했다. 그녀는 교수에게 한 번 잘못 보이면 이 바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학생들이 부당함에 저항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 모 대학 무용과 교수가 학생들에게 공연비를 지급하지 않아 문화계 단체장직을 조기 사퇴한 사건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예술대학만이 아니다.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 경영학부 학생은 기자에게 단체 카톡방에 올라온 교수의 지시사항을 보여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온 교수의 카카오톡 메시지는 “일단 처음 보낸 파일에 들어간 요약본을 읽어보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파악한 다음에 그것을 논문으로 만드세요”라는 지시였다. 교수는 “내가 시간이 없어서 미안해요”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어쨌든 자신의 논문을 대신 써달라는 요구였다.

학생은 “졸업하려면 그 교수 전공과목 7개 정도를 필수로 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거부하면 좋은 성적은 당연히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 외에도 다른 학생들도 교수의 프로젝트에 동원되거나, 논문을 번역하는 일을 한다. 물론 보수는 최저임금의 10분의 1도 안 되거나 아예 없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어느 남자 교수는 여자에게만 유독 학점을 잘 주고 남자는 학점을 잘 주지 않는다. 그리고 유독 여학생들만 교수실로 부르는데, 성추행을 시도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된다”고 했다.

이런 갑을 관계는 대학원에서 더 심해진다. 서울의 한 유명 국립대 대학원생은 “예술대학을 제외한 대학에서 왜 미투 운동에 조용한지 이해가가지 않는다. 내가 당해왔던 갑을관계를 생각하면 대학에서도 성범죄가 쉽게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고, 피해자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원은 도제식 교육이기 때문에 교수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 끝장”이라며 “교수님 가방 들어주기부터 방청소, 김장까지 군말 없이 해왔다. 논문을 대신 써왔고 폭언도 당했다. 그러나 다들 뒤에서는 불평하지만 교수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한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2014년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가 진행한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의 45.5%가 교수로부터 언어, 신체, 성적 폭력이나 차별, 사적노동 등 여러 부당 처우를 경험한 것으로 밝혀졌다. 2015년에는 경기도의 모 대학교수가 대학원생 제자를 2년여간 상습 폭행하고 소변과 인분을 먹인 혐의로 고발당했다. 2017년 말에는 유명 국립대 교수가 대학원생들에게 8만장 분량의 논문을 스캔하게 해 ‘스캔 노예 대학원생’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한 유명 사립대 대학원생은 “대학(원)에서 검찰이나 문화 예술계에 비해 이런 문제를 쉬쉬하며 잘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피해자들이 더 잃을 게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 한다”며 “연기를 하는 사람들은 피해가 드러나도 얼마든지 다른 극단에서 연기를 할 수 있다. 검찰에서도 문제를 제기하면 적어도 해고되지는 않는다”라며 “그런데 우리는 ‘을’ 중에 ‘을’이다. 당장 먹고 살 돈도 벌지 못하고 꿈을 대학교수에게 저당 잡힌 입장에서 문제를 터트리면 하나도 좋을 것이 없다”고 했다.

올 초에 대학원생 노동조합이 출범했다. 출범을 알리는 글은 “대학원생들은 대학의 사각지대에서 끊임없이 노동하고 있습니다. 조교와 간사, 연구자로서 지식생산과 대학행정에 기여하고 있음에도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인권마저 침해당하던 대학원생의 처지에 작별을 고할 때입니다”라고 시작해 “우리가 돈이 없지 노조가 없냐! 대학을 바꾸는 실험, 전국대학원생 노동조합”이라는 말로 끝난다. 대학원생들이 그동안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렇듯, 지금까지 대학(원)생들은 갑을관계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었다. 많은 성범죄 피해가 의심 되는 반면 피해자 파악은 쉽지 않다. 교육부는 전국 대학원생의 피해 실태를 조사하고 각 대학에 인권센터를 설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갑을관계’를 종식시키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말이 나온다. 더 많은 피해자들이 나오기 전에 본질을 파악하여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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