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스포츠에 집중할 수 없는 평창올림픽
[칼럼] 스포츠에 집중할 수 없는 평창올림픽
  • 독서신문
  • 승인 2018.02.1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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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재홍 발행인

올림픽은 금전 개입과 함께 정치 개입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다. ‘인류 평화 제전’이라는 고귀한 이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탈이념·탈인종·탈민족·탈상업주의로 오로지 스포츠 행사다. 그러나 지난 올림픽은 이념·인종·민족 등 문제로 굴곡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올림픽 헌장은 국가 간 경쟁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회명도 그래서 개최 도시 이름을 쓰는 게 원칙이다) 육상 200미터에서 1, 3위를 한 미국의 두 흑인 선수가 미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시상대에서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높이 치켜들었다.

인종차별을 향한 무언의 시위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하고 1년 뒤 일이다.

이어진 뮌헨올림픽은 피로 얼룩졌다. 팔레스타인 게릴라가 이스라엘 선수단을 인질로 잡고 11명을 살해하는 최악의 참사를 빚었다. 또 당시 사격에서 금메달을 딴 북한 이호준은 “적의 심장을 쏘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말해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모스크바올림픽과 LA올림픽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반쪽 올림픽이 됐다. 이쯤 되면 올림픽이 ‘인류 평화제전’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사어(死語) 수준이다.

평창올림픽도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한 단일팀 구상은 처음부터 정치적이었다. 논란이 거듭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 전 “대다수는 찬성하는 데 소수의견을 반영하지 못해 송구하다”고 했다.

대다수가 찬성했는가, 대다수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소수의견은 또 누구를 말하는가. 그렇다면 대다수가 찬성하는 일이라면 소수의견은 뒷전으로 밀려도 좋다는 생각이 혹시 통치철학 밑바닥에 있는 것은 아닌가. 이낙연 총리의 메달권 운운 발언도 정치 개입의 합리화와 다름이 없다.

우리 선수 몇 명이 벤치 아닌 관중석에 앉을 수밖에 없음은 마치 ‘청년 일자리 박탈’과 같다. 단일팀 구성 자체가 공정함을 가질 수 없었다. 남북대화라는 대의명분도 개인의 권한을 빼앗을 수 없기에 젊은이들의 분노가 더욱 컸다. 문 대통령의 사과성 발언은 여론조사 인기도가 하락하면서 나왔다.

현송월에 대한 칙사대접은 분명 도를 넘었다. 호텔 한 층을 통째 빌려주었고 강릉에서 서울까지는 KTX 전세를 내주었다. 몇십억원 들었다는 말이 과장이었으면 좋겠다. 손님 대접에 야박할 수 없다는 주장이라면 한 발 물러설 수 있다.

그렇다면 올림픽 개막 하루 전에 치르는 북한의 건군절 행사에 대해 말 한마디 못하는 것도 손님 대접인가. 정부 관계자는 “그냥 국군의 날 행사 비슷한 건데 뭘”이라고 했다.   

올림픽에 정치 개입도 피할 수 없다면 적절히 이용하는 게 전략이라면 전략이 될 수 있다. 북한 비핵화를 향한 한국과 미국의 눈물겨운 노력이 평창을 무대로 한 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면 평창올림픽은 두고두고 올림픽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극적 반전이 없는 한 지금은 없어 보인다. 아니, 애초 우리 국민 대다수는 냉담했다. 북한과의 대화에서 주도권을 상실했기에 그렇다. 한반도 운전대는 누가 쥐고 있는지 새삼 물을 것도 없다. 그런 마당에 단일팀 논란, 현송월 대접 등은 팍팍한 살림의 국민들 부아를 치밀게 했다.

정부 노력을 폄훼하는 게 아니다. 북한에 분명한 메시지를 주지 못한 채 저자세로 일관하기에 많은 국민은 답답해한다. 그 답답함이 올림픽이 끝난다고 풀릴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은 어떤가. 북한에서 체포 감금됐다 풀려나 숨진 웜비어 부친을 개회식에 초청했다. 신호가 분명하지 않은가. 평창올림픽 시청률이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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