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 네 몸은 네 것이 아니야... 성 상품화
소녀들, 네 몸은 네 것이 아니야... 성 상품화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2.09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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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정하는 억압된 소녀상 『걸 페미니즘』
<사진출처=픽사베이>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지난달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여성 아동의 이미지’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다음 카페 인기글 순위 1위에 등극했다. 글에는 유치원생 정도 돼 보이는 여자 아이들이 가슴골이 보일 정도로 파이고 쫙 달라붙는 옷을 입고 립스틱을 바르는 사진들이 즐비했다. 네티즌들은 “이제 어린 아이에게까지 야한 옷을 입히고 성 상품화를 시키느냐”며 분개했다.

소녀의 성 상품화란 미국심리학협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APA)가 2008년 발표한 리포트(Sexualization of girls)에 따르면 △소녀에게 신체가 과도하게 드러나는 옷을 입히거나 성적인 자세나 표정을 강요하는 등 소녀를 성적으로 묘사하는 것 △소녀를 전인격적인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장식의 용도로 쓰거나 신체의 일부분만 보여주는 것 △소녀의 비현실적인 신체 기준을 강조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방송에서 소녀를 성 상품화해왔다. 지난해 방영된 CJ E&M의 <아이돌학교>는 첫 방송이 시작되기도 전에 ‘예쁜 신입생을 찾습니다’는 홍보문구와 ‘미소녀 데뷔반’이라는 부제목을 달아 많은 네티즌들의 빈축을 샀다. 또 10대 후반에 불과한 소녀들에게 일본에서도 성적인 문제로 논란을 일으킨 ‘부르마’라는 체육복 등 짧고 붙는 옷을 입히고 소녀들의 특정 신체 부위를 클로즈업했다.

CJ E&M의 <프로듀스101>에서는 소녀들에게 짧고 달라붙는 교복을 입히고 노래에 맞춰 칼 군무를 선보이도록 했으며 혹독한 트레이닝, 등급나누기, 몰래카메라 등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도록 교육시켰다.

성 상품화 논란에 2부 만에 종영된 JTBC 예능 <잘먹는 소녀들>에서는 유명 걸 그룹 멤버들이 누가 음식을 더 먹음직스럽게 먹는가를 놓고 먹방(먹는 방송) 대결을 펼쳤다. 네티즌들은 “입을 벌리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여성을 관음의 시선으로 집중 클로즈업 했다”며 “마치 포르노를 연상시킨다”고 비판했다.

 

성 상품화, 소녀의 선택이 아닌 남성들과 미디어의 강요

미디어에서 이뤄지는 소녀의 성 상품화를 비판한 『걸 페미니즘』의 저자 중 한 명인 청소년 인권운동가 호야(가명)는 <소녀들이 주요 인물로 나오는 콘텐츠를 ‘소녀 콘텐츠’(혹은 ‘소녀물’)이라고 명명한다면, 사회적으로 소녀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소녀 콘텐츠와 필연적으로 불화할 운명에 처한다. 소녀 콘텐츠의 핵심은 실제의 소녀 주체들을 소외시키고 대상화하는 것에 있다. (중략) 소녀 콘텐츠는 소녀가 아닌 다른 주체들이 정의한 ‘소녀다움’을 실제의 소녀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소녀 콘텐츠가 말하는 ‘소녀다움’이란 대개 비청소년, 특히 비청소년 남성의 관점에 의해 정의된다. 그래서 소녀 콘텐츠의 주요 향유층은 아이러니하게도 비청소년 남성들이다. 비청소년 남성이 정의한 ‘소녀다움’은 실제 소녀 주체들의 모습을 왜곡 변형하고 선택적으로 골라 구성한 것이기 때문에 일면 허구적인 특성을 가진다>(279쪽)면서 <소녀 콘텐츠 속의 소녀들은 비청소년 남성이 가진 ‘소녀 이미지’를 충족시킬 사명을 띠고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역할에 충실해야만 존재 가치를 가진다>(280쪽)라고 소녀의 성 상품화가 소녀의 선택으로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이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소녀들을 옭아매는 소녀의 ‘자격’

미디어에서 소녀들의 성을 상품화하는 것은 소녀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소녀들은 자연스레 미디어에서 선전하는 비정상적인 ‘소녀다움’에 자신을 맞추려 노력한다.

『걸 페미니즘』의 또 다른 저자인 청소년 인권운동가 아고(가명)는 <어느 날 한 예능 프로를 보다가 걸 그룹의 다이어트 식단을 보고 충격 받은 적이 있다. 내가 먹는 한 끼보다도 적은 양의 음식이 하루 식사의 전부이고, 활동 기간이 다가오면 아예 굶기도 한단다. ‘슈퍼스타K' 출신 박보람은 첫 데뷔에서 폭풍 다이어트를 하고 ‘바나나 1개, 계란 2개 정말 피곤해 남들처럼 예뻐지는 게’라고 외친다. 이 노래는 (소녀들에게) 살만 빼면 내가 짝사랑하던 사람도 나를 좋아해 주고,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환상을 3D로 실현해준다. 이러한 걸 그룹과 여성 아이돌의 모습이 ‘소녀’의 표준으로 제시되기에, 비인간적일 정도로 다이어트를 하고 몸매를 관리하는 것이 여성 청소년들, 젊은 여성들의 당연한 과제처럼 주어진다>(263~264쪽)며 소녀들이 미디어가 조장하는 성 상품화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비판했다.

미국심리학협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APA)가 2008년 발표한 리포트(Sexualization of girls)는 소녀가 성적으로 매력적이게 보이는 옷을 구매하거나(혹은 부모에게 사달라고 조르거나) 성적 매력이 있는 셀럽들을 모방한다면 소녀들이 스스로 자신을 성 상품화한다고 봤다.

우리나라 소녀들이 과도하게 다이어트 하는 것도 미디어에서 조장하는 성 상품화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 여성 아동 및 청소년(5~17세)의 비만율은 14.1%이며 이는 OECD 최하위 수준이다. 2015년에 교육부·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가 공동으로 실시한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마른 사람(체질량지수 85% 미만) 중에서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여학생이 34.7%로 신체 이미지 왜곡 인지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교적 마른 체형의 여학생 10명 중 약 3.5명은 자신이 뚱뚱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10대 여성 청소년의 섭식장애 비율 역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아고(가명)는 <나는 궁금했다. 왜 학교에서는 ‘여학생’들에게 정숙할 것을 요구하는데 TV 방송에서는 교복을 입고 과격한 춤을 추며 섹스 어필을 하는 10대 여성들이 태반인지. 왜 10대 때는 화장 안 해도 다 예쁘다고 하는데, 꾸미지 않으면 주변에서 은근히 욕을 먹어야 하는지 말이다>며 <소녀다움이라는 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를 옭아매는 억압의 굴레였다. (중략) ‘소녀다움’의 이미지가 이미 매우 비현실적으로 정해져 있고, 그 특정한 이미지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세뇌돼서가 아닐까>(265쪽)라고 말했다.

소녀들이 자신들이 성 상품화 되는 것을 자유의지로 충분히 선택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어느 사회학자의 말처럼 의지의 ‘자유로움’은 선택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회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그 보장 정도가 다르다. 국가의 기간(基幹)인 한국의 소녀들은 자신도 모르게 성 상품화라는 대기 속에서 필터 없이 숨 쉬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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