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교육 평가혁명⑩] “나팔꽃 색깔이 변하는 이유는 뭘까” 창의적 주제로 탐구열기 후끈
[일본교육 평가혁명⑩] “나팔꽃 색깔이 변하는 이유는 뭘까” 창의적 주제로 탐구열기 후끈
  • 신향식 객원기자
  • 승인 2018.02.0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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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20년은 공교육의 경쟁력 상실에서 시작됐다. 일본이 ‘교육평가혁명’을 시도하고 있다. 부실한 공교육이 국가발전의 걸림돌이라는 값비싼 교훈을 얻은 결과다. 한국 교육계가 대입수학능력시험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문제를 놓고 갈등하는 가운데 일본은 대학입시와 중고교 교육현장에서 ‘평가혁명’에 착수했다. 객관식 문제를 줄이거나 폐지하고 서술·논술형으로 바꾸는가 하면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 교육과정을 공교육에 도입하는 혁명적인 변화다. 서울대, 고려대, 서울교대 등이 대입전형에서 논술고사를 전면폐지하고 다른 대학들도 논술전형을 축소하는 한국과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독서신문은 신향식 객원기자를 일본에 급파, 일본 교육의 평가혁명 현주소를 살펴봤다. <편집자 주(註)>

 

 

생선 뼈를 입 안에 닿지 않게 먹는 방법을 연구하여 발표하는 모습

[독서신문] 일본 교육혁명 현장취재 3일째, 의미있는 청소년 학술 행사를 참관했다. 행사 명칭은 슈퍼 사이언스 하이스쿨(SSH)의 ‘포스터 발표(Poster Session)’. 지적 호기심을 품고 관심 주제를 연구하여 밝혀낸 새로운 사실을 발표하는 활동이다. 슈퍼 사이언스 하이스쿨은 선진적인 자연계 교육을 실시하는 고등학교로 문부과학성이 지정한다.

지난해 12월 13일 오후, 삿포로(札幌) 시립 가이세이(開成) 중등교육학교 체육관. 창밖엔 온세상이 흰눈에 휩싸인 설국(雪國)이었다. 하지만 체육관은 학생과 교사 등 300여 명의 발표와 질문과 토론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논문 요약 자료를 부착한 이동식 게시판 20개에는 청중이 각각 10~20명씩 모여 있었다.

이 행사는 정규 교과 시간에 연구한 소논문(과제연구)을 공개하는 학술잔치다. 5학년(고2) ‘코즈모사이언스Ⅰ’ 과목의 활동 중 하나로 9개월째 진행됐다. 논문을 최종 완성하기 전의 중간 발표였다. ‘코즈모사이언스Ⅰ’은 과학 주제를 정해 조별로 연구하는 수업이다.

 

학회의 발표는 개인논문 발표(Oral Session)와 포스터 발표(Poster Session)가 있다. 구두발표는 보통 4쪽 이내로 논문을 제출하고 15분 발표와 5분 질의응답으로 진행한다. 포스터 발표는 A1 크기에 논문요약 자료를 이동식 게시판에 부착한 뒤 대기하다 참관객이 오면 질문을 받고 답변해 주는 방식이다.

 

학생들은 조별로 소논문을 발표한 뒤 청중과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았다. 조장들은 연구 주제와 연구 동기, 연구 과정, 연구 결과, 논문의 한계점을 중심으로 각각 발표했다. 자신의 연구가 타당함을 청중에게 이해시키려고 구슬땀을 흘렸다. 질의 응답이 이어지면서 즉석 토론을 하는 장면도 보였다.

청중은 지도교사들과 학생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기업 관계자와 대학원생, 학부모, 졸업생들도 있었다. 논문 발표를 귀 기울여 들은 이들은 학생들에게 도움말과 칭찬을 해 주었다. 특히 연구방법 측면에서 미흡한 부분을 설명해 주어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전문가 수준”이라면서 격려하는 참관객도 있었다. 이 학교의 아이자와(相沢) 코쿠메이(克明) 교장도 자리를 이동해 가면서 발표, 질문, 토론하는 활동에 참가했다. 교장은 학생들이 대견스럽다는 듯 연신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 12주에 걸쳐 조별 연구한 뒤 포스터 제작해 발표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학생들이 만든 포스터

“슈퍼 사이언스 하이스쿨(SSH)은 일본이 세계적인 과학자를 배출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에서 슈퍼 사이언스 하이스쿨(SSH)을 담당하는 오오니시 히로시(大西 洋) 수학 교사는 “일본을 기술과학 강국으로 오르게 하는 데 슈퍼 사이언스 하이스쿨(SSH)의 목표가 있다”고 했다.

“일주일에 두 시간씩 12주에 걸쳐 조별로 연구를 한 뒤 그 결과를 포스터로 제작해 발표합니다.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되고,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을 기르고, 다른 학년의 학생들과도 교류할 수 있게 됩니다.”

연구 주제는 다양했다. △식품을 썩지 않게 보존하는 방법 △정전기 쇼크 방지 방법 △나팔꽃을 좋아하는 색깔로 피우는 방법 △적외선에 의한 복사열과 그 차단 물질 △식품 폐기물을 사용한 지우개 제작 연구와 제언 △곰팡이가 생기지 않게 하는 방법 △생선 뼈를 입 안에 닿지 않게 먹는 방법 등 호기심과 상상력이 돋보였다.

과제연구는 다음 순서로 진행된다. ①코스모사이언스Ⅰ 수업에서 탐구 주제를 정해 연구에 착수하고 ②논문 요약본으로 포스터를 작성한 뒤 ③청중에게 발표를 하고 질의에 응답한다. ④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연구를 이어나가고 ⑤일본어로 논문을 작성한 뒤 ⑥영어로 논문을 번역해 ⑦영어 논문으로 최종 발표를 한다. 이날 행사는 ③에 해당했다.

이 행사를 참관하면서 일본이 과학기술강국이 된 원동력 중의 하나가 청소년 탐구활동에 있음을 실감했다. 이날 발표한 연구결과 중 눈길을 끈 세 편을 소개한다.

 

◆ 차단물질이 복사열 막는 정도 비교 실험

슈퍼&#160;사이언스&#160;하이스쿨(SSH) 소논문 발표회장 안내문

[#논문1=‘적외선에 의한 복사열과 그 차단물질’]

“과학 시간에 복사열을 배웠습니다. 더 깊이 알아보고 싶어 셋이서 실험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차단물질이 실제로 복사열을 어느 정도까지 막는지 비교하고 싶었습니다. 가설은 ‘투명 물질의 밀도가 클수록 적외선을 잘 반사한다’로 했습니다.”

타카하시 타쿠야(高橋拓矢) 군, 하시모토 쇼고(橋本将吾) 군, 와타나베 마사키(渡邉雅紀) 군은 ‘적외선에 의한 복사열과 그 차단물질’을 주제로 연구하여 발표를 했다. 세 명이 번갈아 가면서 연구주제와 연구목적, 연구방법, 연구결과 순으로 설명했다. 지도교사와 학생들은 발표를 들으면서 공책에 메모를 하고 질문을 했다.

연구자들은 “비닐하우스를 관찰하여 투명물질이 적외선의 일부를 차단한다는 사실에서 연구주제를 착안했다”고 밝혔다. “비닐 외에 페트병, 랩, 유리 등 다양한 차단물질로 직접 비교 실험했다”면서 “실험 결과 자외선이 온도를 올리는 효과가 작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덧붙였다.

“물이 들어있는 비커를 각종 투명물질로 감싸고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결론은 투명물질의 밀도와 적외선으로 인한 온도 변화 사이의 관련성이 적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맞는지 재확인하기 위해 자외선으로 다시 한 번 실험을 하여 한번더 검증했습니다.”

지도교사에게서 격려와 칭찬이 나왔다.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직접 실험을 하여 확인했기 때문이다.

“복사열과 온도의 관계는 실험해서 확인하지 않아도 교과서에서 배우는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연구자들은 실험을 해 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서 실험 결과를 단숨에 믿지 않고, 한번 더 비슷한 실험을 하여 동일한 결과를 얻어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과학적 명제가 실험을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점을 실천한 겁니다. 대견스러운 학생들이지요.”

 

◆ ‘미우라 접기’ 이론 활용…종이 접어 의자 실험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학생들이 소논문 과제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논문2=‘종이 접기의 가능성-종이 접기로 의자를 만들기’]

“종이를 접어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가키야마 사쿠라(柿山さくら) 양과 카노우치 하즈키(鹿野内葉月) 양, 사와자키 료우나(澤崎涼菜) 양은 ‘종이 접기의 가능성-종이 접기로 의자 만들기’를 탐구 주제로 정했다. 이를 위해 찾아낸 종이 접기 방식은 ‘미우라 접기’다. 일본의 항공우주공학자 미우라 코료(三公亮)가 고안한 종이 접기다. 종이를 아주 작은 평행사변형 모양으로 접는 방식이다. 일본에서는 우주 위성에 달린 태양전지판도 발사 이전에는 이 방식으로 접었을 정도로 유명하다.

“의자에 가해지는 압력과 한 장의 종이가 견뎌낼 수 있는 압력을 직접 조사했습니다. 그 다음 ‘A4 용지가 7장 있으면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만들 수 있다’고 가설을 설정했습니다.”

연구자들은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미우라 접기’ 방식으로 A4 용지 7장을 접어서 사람이 앉게 해 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종이는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실험이 실패했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들은 연구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찾아보았다.

“어디에 허점이 있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우선, ‘미우라 접기’ 방식 자체가 상당히 많이 정밀도를 요구하는 작업인데 저희는 그 수준으로 종이를 접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중요한 문제를 놓쳤습니다. 종이가 단순히 7장 있다고 해서 견딜 수 있는 압력이 7배가 증가하는 건 아닙니다. 바로 이 점을 생각하지 못한 겁니다.”

실험은 여기서 그쳤다. 하지만 실험의 어느 단계에 문제가 있어서 실패를 했는지 세밀하게 고찰했다는 점에서 학생들이 배우고 느낀 점은 무척 소중하다.

 

◆ 나팔꽃 색깔 변화 원리 등 수업시간 배운 내용 실험으로 확인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학생들이 발효 후 부착물을 정리하는 모습

[#논문3=‘나팔꽃 색깔 변화 연구’]

“혹시 어렸을 때 파란색 장미는 없을까 하고 생각한 적 있나요? 좋아하는 색깔의 나팔꽃을 만들 수 있을까요?”

기노시타 준이치(木下潤一) 군, 다케무라 후쿠오(竹村風力) 군, 다무라 류세이(田村隆晟) 군은 나팔꽃 색깔을 탐구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연구를 시작한 게 아니었다. 이들은 꽃 색깔을 탐구한 동기를 이렇게 발표했다.

“나팔꽃은 인공 조작 없이도 자색, 붉은색 등 여러 가지 색으로 꽃을 피웁니다. 그런데 나팔꽃 색깔이 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마침 학교에서 접한 과학 지식을 활용해서 액포(성숙한 식물 세포의 원형질 안에 있는 커다란 거품 구조) 안에 존재하는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의 농도에 따라 나팔꽃 색깔이 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업 시간에 배운 지식이 사실인지 실험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연구자들은 나팔꽃의 꽃잎에 산성 용액과 알칼리성 용액을 떨어트려 색의 변화를 비교해 보았다. 산성 용액이 닿으면 적색은 옅은 적색이 되고, 알칼리 용액이 닿으면 보라색은 청색이 되는 현상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아쉽게도 몇 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이들의 논문은 여기서 더 나아가지는 못했다.

“나팔꽃을 신선하게 유지하는 일이 어려워 대부분 말라 죽어버렸습니다. 이에 따라 나팔꽃 표본 자체가 부족해서 실험의 신뢰성에 스스로 의문을 품게 됐습니다.”

비록 연구 목적은 완수하지 못했지만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실험으로 확인해 보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식물로 실험할 때는 보존에 주의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된 것도 수확이었다.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경험이었다. / 통역=임문택 삿포로무지개한국어학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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