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페이스북, “좋아요” 누르지 마세요
인스타그램·페이스북, “좋아요” 누르지 마세요
  • 권보견 기자
  • 승인 2018.02.08 17:4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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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권보견 기자] SNS에서 ‘좋아요’를 많이 받아 ‘핫 플레이스’가 되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을 거부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가게 이름을 알리는 것도 싫고, 손님이 몰려들어 몇 시간씩 웨이팅 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혐핫(嫌HOT) 신드롬’이라고 하는데, 블로그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서 ‘핫’해지는 것 자체를 혐오하는 것을 뜻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이런 현상이 시작됐고, 최근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손님, 사진 촬영은 안 됩니다”

영국 BBC 뉴스가 지난해 12월 29일 손님들이 음식 사진 촬영하는 것을 반대하는 식당에 대해 보도하면서, 잉글랜드 중부 지방의 레밍턴 온천 지역에 위치한 한 일식당을 예로 들었다.

이 음식점의 주인인 다렌은 “최근 한 가지 방침을 정했는데, 식당에서 손님들이 휴대전화나 태블릿 PC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라며 “손님들이 식당에서 사진을 찍느라 제대로 된 맛을 놓치기 쉽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또 그는 “식사할 때는 SNS가 아니라 상대방과 대화하며 함께 음식을 즐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영국 버크셔 유명 레스토랑 ‘워터사이드 인’도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데 동참했는데, 이 식당의 셰프 미셀 루는 일간지 데일리메일과의 인터뷰에서 “다들 사진부터 찍느라 제때 먹지도 않는다. 몇몇은 음식 사진 찍겠다고 의자에 올라서기도 하는데, 그렇게 찍은 사진들로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다. 내 음식 맛을 기대하는 진짜 손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프랑스 칼레의 한 레스토랑도 메뉴판에 촬영 금지 표시를 넣었으며, 이 음식점의 요리사는 “어떤 손님들은 식당에 와서 음식을 먹기보다는 사진 찍는 데 더 관심이 많다. 그사이 정성스레 준비된 음식은 식어버린다”며 촬영 금지 이유를 설명했다. 미국 뉴욕의 레스토랑 ‘모모푸쿠 코(Momofuku Ko)’ 또한 음식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 서울 동교동에 위치한 음식점 ‘노사이드'가 ‘노 포토 노 모바일 폰(No photo, No mobile phone)’라고 적힌 표지판을 입구에 붙여 놨다. 이 가게의 주인은 “여기는 내게 집 같은 곳이다. ‘핫 플레이스’가 되는 것을 사양한다”고 이야기했다.

사진을 금지하는 이유로 ‘음식에 집중하지 않는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쉐프의 음식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음식 촬영을 금지하는 곳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유럽과 미국에서 ‘사진 촬영 금지’를 내건 고급 레스토랑이 늘고 있으며, 일부 유명 쉐프들은 음식 사진을 ‘음식 포르노’라고 표현할 정도로 비난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음식 사진을 찍는 것은 일종의 저작권 침해이며, 요리사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것이 그 이유다.

레스토랑 가이드북 『블루리본 서베』 편집장 김은조는 음식 촬영에 대해 “이미 블로그 같은데 사진이 퍼져있다. 이러한 흐름이 계속되면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줄어든다고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며 “요리 역시 창작물인데, 다른 사람이 따라 할 수 있어 저작권이 침해된다는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사진 찍는 것은 물론 가게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조차 꺼리는 곳도 많아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위치한 김치찌개 집과 익선동에 자리한 양식 가게 그리고 신설동에 있는 순댓국집 등 몇몇 식당은 간판이 없지만, 단골손님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제주도에 위치한 한 일식집 주인은 “SNS에서 ‘좋아요’를 많이 받으면 사람들이 금세 몰리는 한편 단골들의 발길은 끊긴다”면서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은 금세 사라지더라. 그래서 단골들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핫 플레이스? 안 갈래요”

혐핫 신드롬은 ‘유명해지는 것이 싫다’는 가게 주인들의 움직임에서 ‘유명한 곳은 가기 싫다’는 소비자 입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요즘 2030세대를 보면, 핫 플레이스 대신 노포(老鋪)를 찾아다니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직장인 신씨(35)는 한동안 익선동 카페나 연남동 빵집 등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곳을 찾아다녔지만, 최근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 그는 “조금만 유명하면 기본 1~2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다. 쉬어야 할 주말에 외출했다가 오히려 많은 인파속에서 피곤함만 얻는다”며 “인테리어가 멋있지 않아도 동네 카페나 빵집에 가는 게 마음 편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혐핫 신드롬의 흐름은 SNS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안알랴줌’, ‘#비밀이야’와 같은 태그의 게시물 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는데, 지난 7일 기준 ‘#안알라쥼’ 게시물의 수는 1,557개, ‘#비밀이야’ 게시물 수는 9,712개이다. ‘#어딘지는비밀’ 게시물과 ‘#어딘지는알알랴줌’등의 게시물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자기만의 단골가게를 핫 플레이스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 현상에 대해 이인수 정신분석의는 “남 좋다는 걸 따라 해야 맘 편한 문화, 남의 인정에 늘 목마른 우리 특유의 성정 때문에 핫한 것을 따라다니는 현상이 생겼고, 그것이 지나쳐 끝내 핫한 것을 싫어하는 트렌드까지 생긴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혐핫 신드롬의 배경은 ‘성찰’

혐핫 신드롬은 지금까지의 추세와 정반대여서 더 목을 끈다. 지금껏 가게는 더 유명해지는 것에, 소비자는 더 뜨는 곳을 가는 데 혈안이 돼 있었는데 핫한 것을 혐오한다니. 그 배경은 무엇일까.

『분노의 사회』저자 정지우는 지난 6일 ‘YTN 라디오 FM 94.5’에서 그 배경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최근 핫 플레이스라고 해서 핫한 것에 대한 소비가 많이 있었는데요. 그런 것들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좋아했는가 생각을 하면 특색 있고 독특한 것에 대한 열망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독특한 핫 플레이스, 기존과 다른 곳에 가면서 내가 고유성을 얻고 개성을 얻는다는 느낌이 있었던 건데요. ‘그런 곳들에 간다고 해서 열심히 핫 플레이스를 다녔지만 진정한 개성을 얻는다든지 고유성을 얻는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간다’, ‘그런 것들이 휘발성이 너무 강한, 지나가는 것들이어서 나의 고유성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는 식으로 반성적인 성찰이 조금씩 생겨난다는 생각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요즘 ‘욜로’, ‘탕진잼’ 같은 말이 유행하고 있고, 그 바로 전에 2030세대 사이에서 각박한 현실 탓에 취업과 결혼 등을 포기하는 것을 지칭하는 ‘N포 세대’가 많이 이야기됐다. ‘욜로’와 ‘N포세대’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삶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을 기대할 수 없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 청년들이 즉각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것이다. 현재를 즐기는 태도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태도다. 그러나 소비로만 채워지는 삶, 휘발성 높은 문화가 이어지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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