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면 ‘종북’?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면 ‘종북’?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2.06 18: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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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픽사베이>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2020년부터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를 그냥 ‘민주주의’로 대체해야 하는 ‘집필 기준’이 제시돼 논란이다. 논란의 중심은 ‘자유’라는 단어의 해석에 있다.

작년 8월부터 교육부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통해 마련한 새 검정 역사 교과서의 ‘집필 기준’은 출판사들이 지키지 않을 시 발행이 제한된다.

집필 기준의 시안에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없다. 중학교 역사 교과서 시안에서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을 이해한다’고 적혀있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시안에서는 ‘6월 민주 항쟁 이후 (중략)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 대해 파악 한다’고 쓰여있다. 현행 교과서 집필 기준은 ‘1960년대 이후 자유민주주의 발전과 경제성장 과정을 이해하고’로 돼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에서 ‘자유’를 빼는 문제는 지난 1일에도 논란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헌법 4조(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에 규정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민주적 기본 질서’로 바꾸는 개헌안을 발표한 것이다.

 

‘자유’ 빼는 게 좌편향?

민주주의 앞에 ‘자유’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자유’를 빼는 것이 ‘좌편향’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들이 사용하는 ‘좌편향’이라는 단어는 시장경제체제에서 ‘정부의 개입을 늘리는 경제체제’라는 의미가 아닌 북한을 추종한다는 ‘종북’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자유민주주의’ 앞의 ‘자유’를 빼면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처럼 ‘자유롭지 않은’ 민주주의가 된다는 것이다. ‘자유’라는 단어를 말 그대로 ‘Freedom'으로 해석한 결과다.

박인현 대구교대 교수는 “대한민국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바탕 위에 세워졌다. 헌법에 명시된 ‘자유’를 빼면 마치 사회민주주의나 북한의 인민민주주의 등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전국 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도 항의하며 “정부에서 좌편향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을 만든다”고 말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도 “우리 헌법이 규정한 민주주의는 인민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라며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는 것은 이 둘을 구분하지 않으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김철홍 장신대 교수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논쟁적 주제를 특정 입장만 포함한 채 소개하는 것은 문제”라며 “자라나는 세대를 특정 이념에 경도된 방향으로 끌고 가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며 ‘자유’라는 단어를 뺀 것을 ‘북한’과 엮어 말했다.

 

‘자유’는 ‘시장의 자유’

반면,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자고 주장하는 측은 ‘자유’라는 단어를 ‘시장의 자유’로 해석한다. ‘시장의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생기는 ‘빈부 격차’, ‘실업률’같은 사회문제를 의식한 것이다.

베스트셀러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저자 채사장은 “자유민주주의에서의 ‘자유’는 신자유주의에서의 ‘자유’와 마찬가지 의미로 ‘시장에서의 자유’다. 자유민주주의는 인간의 자유를 추구해서 자유민주주의이고, 북한은 인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체제명에 ‘자유’를 붙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자유라고 할 때 그것은 거의 언제나 자본의 자유, 시장의 자유를 의미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일단 기본적으로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동시에 정치적 의사결정 방식이 다수가 참여하는 민주주의 체제인 것을 말한다”고 했다. 즉, ‘자유’는 ‘극단적인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것이고,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겠다는 측의 주장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극단적인 자본주의’를 막겠다는 것이다.

채사장은 우리가 왜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지에 대해 “한국전쟁 이후 가려지고 은폐돼 자본주의 이외의 (경제)체제를 경험해보지 못한 한국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사회다. 우리는 (경제)체제가 선악의 문제인 것처럼 교육받아왔다. 자본주의는 선이고 (정부의 시장 개입이 많은 경제체제인)공산주의는 악이라고 말이다”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단순히 정부의 시장 개입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경제 체제’라고 말했다. 그는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로 대표되는 (공산주의를 경제체제로 선택하기도 하는)사회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체제에 대한 선악 개념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선택과 조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교과서 집필 기준을 마련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신향수 평가위원은 “헌법의 기본 원리가 자유민주주의인지에 대해서는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 민주주의를 포괄적으로 표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신향수 평가위원 입장에서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는 것은 ‘자유롭지 않은’ 민주주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장경제체제’에서 정부의 개입을 늘리자는 것이다.

이렇듯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자는 측과 넣자는 측의 갈등은 본질적으로 ‘자유’라는 단어의 해석의 차이에서 생긴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러한 해석의 차이를 알고도 경제체제 선택일 뿐인 ‘좌편향’이라는 단어를 ‘북한’과 연결시키고 ‘자유’라는 단어의 삭제를 ‘인민민주주의’와 연결시킨다. 갈등의 원인에 대한 근원적인 접근 없이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는 행태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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