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발 비용’·‘탕진잼’ 가고 ‘미니멀 라이프’가 왔다
‘시발 비용’·‘탕진잼’ 가고 ‘미니멀 라이프’가 왔다
  • 권보견 기자
  • 승인 2018.02.02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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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권보견 기자] “인생은 본시 단순한 것이다.” 공자의 말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진리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실천하기 어렵기도 하다. 연초부터 ‘단순하게 살기’, ‘미니멀 라이프’를 다짐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아주 단순한 것으로 누리는 삶의 가치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값 비싼 원목 테이블에서 먹는 스테이크보다 값싼 집 테이블에서 즐기는 차 한 잔이 주는 행복이 더 클 수 있다.

세계적으로 부는 ‘미니멀 라이프’

일본에서는 ‘단샤리(だんしゃり)’ 열풍이 불고 있다. 이는 물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심플함을 추구하는 운동이다. 정신적인 것을 강조하고, 쓸데없는 물건을 버리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와 유사하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후에 크게 유행하게 됐으며, 지진으로 많은 것들이 없어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소유에 대한 일본인들의 개념이 재정립됐다.

미국의 ‘킨포크(Kinfolk)’와 덴마크의 '휘게(Hygge)‘ 또한 미니멀 라이프와 일맥상통하다. 킨포크 라이프는 ‘심플, 스몰, 디테일’에 중점을 두며 자연 친화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삶을 즐기는 것을 뜻하며, 휘게 라이프는 먹고 입는 것을 단순화 해 안락함과 아늑함을 즐기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이는 물질적으로 채우며 많이 소비하기보다는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게 사는 것을 중시하는 것이다. 휘게 라이프 문화가 보편화된 덴마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사한 2016년 ‘더 나은 삶의 질 지수(HLI)’에서 38개국 중 3위를 차지했다.

한국에서는 최근 KBS2 <김생민의 영수증>이 미니멀 라이프를 다시금 유행시키고 있다. 지난 7일, 개그맨 강유미가 출현해 “<김생민의 영수증>으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모든 물건들을 무료로 나눠주는 생활을 공개했다. 이어 29일 배우 윤세아도 한 인터뷰에서 “최근 KBS2 <김생민의 영수증>을 보고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미니멀리즘이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휴가, 화장품, 그리고 가전까지 발을 넓히고 있으며, 미니멀리즘 관련 도서 판매도 증가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미니멀리즘 관련 판매 동향’에 따르면 2016년에 전년 대비 480.6%로 대폭 신장했으며, 지난해도 전년 대비 51.2% 증가했다. 지난해 구매는 30대 여성이 34.1%로 가장 높았으며, 그 뒤를 이어 40대 여성이 22.1%를 차지했다.

인테리어, ‘제대로 버리는 방법’

요즘 사람들이 간결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언제부터 이 주제가 대두됐는지 되짚어보면, 녹록지 않은 우리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사회에서 노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싶지만, 잡다한 물건이 가득한 집은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꾸밈’이란 일반적으로 무언가 채워 놓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집을 보기 좋게 하기 위해 꾸미기 시작했다. 이렇게 꾸민 집은 더 복잡해져만 갔고, 그때서야 사람들은 집을 비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번 달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헤리티지 뮤인>이 진행한 인터뷰에서 리빙 스타일리스트 선헤림과 심플라이프 대표 탁진현이 ‘미니멀 인테리어의 팁’과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줬다.

선혜림은 “집 안의 분위기를 가장 쉽게 바꾸는 방법은 패브릭이에요. 가격도 저렴하고, 교체도 쉬워요. 커튼이나 침구류 등을 솔리드 패턴으로 바꾸면 집이 금방 깨끗해질 거예요. 물건을 버리는 일은 그 이후에 조금씩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또한 “빈 공간의 가치는 물건의 가치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해요. 빈 공간은 중요한 물건을 돋보이게 하고, 마음도 여유롭게 해요”라고 덧붙였다.

탁진현은 물건을 줄이는 일이 미니멀라이프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물건을 구매하는 금액이 줄면 자연스럽게 음식이나 여가 생활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지출하게 돼요.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고요”, “저는 최근에는 옷 짓는 일을 배우기 위해서 미싱을 구매했어요. 물건을 줄이는 일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지출한 거죠”라고 이야기하면서 ‘소유와 무소유의 좋은 순환 구조’의 중요성 또한 강조했다.

삶의 쉼표, ‘제주도 한 달 살기’

지난해 JTBC <효리네 민박1>이 큰 호응을 얻어 <효리네 민박2>가 2월 4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이효리와 이상순 부부가 제주도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것으로, 화려했던 연예계를 뒤로하고 제주도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전원생활을 보여줬다.

프로그램 방영 후 이효리 부부와 같은 킨포크 라이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제주에서 한 달 살기’ 열풍이 불고 있으며 최근 방영된 tvN <강식당>에서 그 열기를 확인할 수 있다.

<강식당>에서 홀 서빙을 맡은 개그맨 이수근은 식당을 방문한 손님들에게 “여행 왔냐”, “제주에 살고 있냐”라고 질문을 했고, 그중 눈길을 끈 답변은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고 있다는 손님들이었다. 프로그램에는 미혼 남녀부터 출산을 앞둔 예비 부모, 은퇴한 노년 부부까지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있는 손님들이 꽤 많이 등장했다.

‘제주도 한 달 살기’ 문화는 며칠 동안 제주도에서 먹고 관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과 자연 속에서 한 달 이상 머물며 힐링을 추구하는 여행이다. ‘제주도 한 달 살기’ 캠페인을 제공하는 숙박플랫폼 미스터멘션 대표 정성준은 “월평균 3만명 이상의 게스트가 숙소를 확인하고 예약하며 중장기 여행 문화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주 고객층은 아이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가족, 이직 전 삶의 변화를 원하는 20~30대, 노후를 준비하는 부부, 육체적·정신적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고 덧붙였다.

신체 아닌 화장품도 ‘다이어트’

최근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 변화로 곳곳에 불고 있는 미니멀리즘 열풍이 화장품 업계까지 확산됐다. 여러 개의 화장품을 사놓고 제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바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화장품 성분 가운데 같이 사용하면 효과가 낮아지거나 여드름, 뾰루지 등의 트러블을 유발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른바 ‘화장품 다이어트’가 유행하고 있다.

화장품 관련 업계에서는 다양한 원료를 담는 대신 꼭 필요한 핵심성분만을 사용한 미니멀리즘 화장품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미니멀리즘 화장품은 제품 포장이나 케이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효능과 효과'에 초점을 둔 것으로, DHC에서는 CAAE인증 스페인산 100% 천연 오일인 '올리브 버진 오일'을. 네오팜에서는 100% 콜라겐이 함유된 '더마트로지 콜라겐 100파우더'를 선보였다.

또한 기존 고가의 백화점 브랜드 못지않은 이니스프리, 미샤, 네이처리퍼블릭 등 저렴한 로드샵 제품들이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면서 “화장품 업계의 판도는 로드샵이 좌우한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기능·공간활용·디자인 삼박자 갖춘 ‘소형가전’

미니멀리즘의 호황기를 함께 맞는 또 하나의 분야는 ‘가전업계’다. 간결한 기능에 심플한 디자인을 더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한 가전 업계 관계자는 “미니멀 라이프 소비자를 타깃으로 하는 소형 가전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특히 냉장고가 대형화, 복수화하는 추세와 반대로 꼭 필요한 기능과 용량으로 최소화해 작지만 실속 있는 제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늘어나는 1인 가구가 미니멀리즘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최근 통계청에 의하면 2015년 전체 가구 수에서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27%로, 1995년에 비해 약 14% 이상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또한 소비자 분석 전문기관인 트렌드모니터가 조사한 소형 가전 가구 이용 관련 조사에 따르면 2016년 소형 가전·가구의 보유율은 61.8%로, 2014년보다 약 15% 증가했다. 이에 1인 가구만을 위한 ‘1인용 가전제품’이 경쟁하듯 등장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주목받고 있는 미니멀 라이프의 영향을 받아 단순한 디자인의 ‘미니멀리즘 가전제품’이 1인 가구의 인기를 얻고 있다. 다인 가족에 비해 비교적 적은 평수에서 생활하는 1인 가족은 그에 맞는 콤팩트한 크기와 힘 뺀 디자인의 제품을 찾고 있다.

미니멀리즘, ‘버림의 미학’

미니멀리즘의 시작은 버리는 것으로, 수년째 쓰지 않는 물건과 걸려 있기만 한 옷 등 사용하지 않은 물건을 버리는 것은 생활을 좀 더 여유롭게 만들어준다. 소비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기업들의 ‘선택과 집중’ 전략도 사실상 버릴 것을 찾는 작업이다. 스티브 잡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것이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버리지 못하는 것은 들끓는 탐심 때문이다. 가진 사람은 더 가지려고 애쓰고, 가진 것은 절대 내놓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탐심을 내려놓고, ‘Less is better’가 생활 속 지침이 되면 숨 가쁜 세상에서 여유 한 조각쯤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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