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은행 채용 비리, 청년들 “미치겠다”
공공기관·은행 채용 비리, 청년들 “미치겠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2.0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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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B하나은행 13건, KB국민은행, 대구은행 3건, 부산은행 2건, 광주은행 1건
노력해 봐야 아무 소용 없어... 각박한 취업 현실
<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지난달 31일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은행권 채용비리 검사 잠정결과 및 향후 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2월과 올 1월 두 차례 검사에서 은행 채용 비리 혐의 22건을 적발했으며 채용비리가 드러난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대구은행, 부산은행, 광주은행 등 5곳을 검찰에 고발했다.

적발된 혐의 22건 가운데 KEB하나은행이 13건으로 최다였고 대구, KB국민은행이 3건, 부산은행이 2건, 광주은행이 1건 순이었다.

KEB하나은행(은행장 함영주)은 2016년 사외이사의 지인인 지원자가 1차 면접에서 최하위권이었지만 전형 공고에 없는 ‘글로벌 우대 전형’을 만들어 합격시켰다. 또한 계열 카드사 사장의 지인 자녀도 임원면접 점수가 불합격권 점수였지만 임의로 점수를 높여 입사시켰다.

우리은행에서는 2015년에서 2017년 사이 이광구 전 행장이 신입사원 공개채용과정에서 국가정보원, 금융감독원, 은행 전·현직 인사 등의 자녀나 친·인척인 일부 지원자들을 특혜 채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KB국민은행(은행장 허인)에서는 2015년 KB금융지주 윤종규 회장의 친·인척이 서류 전형을 치른 840명 중 813등을 했고 1차 면접자 300명 중 273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2차 면접에서 채용 담당 부행장 등이 해당 지원자에게 최고 등급을 주면서 120명 중 4등으로 최종 합격시켰다.

대구은행(은행장 박인규)은 은행 임직원과 관계있는 지원자 3명이 합격기준에 미치지 못했으나 면접에서 최고점수를 줘 합격시켰고 부산은행(은행장 빈대인)은 여성 합격인원을 늘려 전직 국회의원 딸을 합격시켰으며 광주은행(은행장 송종욱)은 인사담당 부행장보가 자녀의 2차 면접위원으로 참여했다.

 

은행만이 아니야, 공공기관 80%가 채용비리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2월 29일 17개 관계부처와 공동으로 채용 비리 사례와 연루기관 명단을 특별 조사해 채용 비리를 저지른 공공기관 946개 사를 공개했다. 전체 공공기관이 1,190개라는 것을 감안하면 대략 80%의 공공기관이 채용비리에 연루된 것이다.

해당 조사에서는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1,190개 전체 공공기관의 채용 비리를 특별 점검했고, 946개사에서 4,788건의 채용 비리가 적발됐다. 현직 근로자 중 비리 연루자는 197명이며 이 중 42명이 수사 의뢰됐고 나머지는 내부징계 대상으로 분리됐다. 수사 의뢰 대상인 42명 중 8명이 기관장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은행장 은성수)은 채용 후보자 추천 배수를 임의로 늘려 특정인을 선발했고 국가수리과학연구소(소장 정순영)는 고위 인사의 지시를 통해 채용 전에 특정인을 내정하고 채용 절차는 형식적으로 진행했다. 서울대병원(원장 서창석)은 1차 전형에서 합격 배수를 늘려 점수가 낮은 특정인을 합격시킨 후 면접에서 점수를 올려 채용했다.

 

공공기관, 은행까지 비리 성행... 청년들 현실에 울분

공공기관과 은행의 채용비리를 확인한 청년들은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생각하며 울분을 토했다.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 이모씨(29)는 “지금까지 사기업만 그러는 줄 알았다. 공정해야 할 공공기관까지 그러다니. 어디 빽 없는 사람은 살겠나”라고 한탄했다. 그는 지금까지 공공기관 포함 100곳 넘는 회사에 자기소개서를 냈으나 최종합격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일반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최모씨(30)는 “우리나라도 점점 귀족사회가 돼가는 것 같다. 질 좋은 직장은 몇 없고 연줄 있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으면 그게 부가 세습되는 귀족사회지 뭐냐. 부의 추월차선은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인다. 절망감을 느끼고 살 힘이 없다”라고 말했다.

공무원을 준비하는 왕모씨(29)는 “공무원 준비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을 보면 이 나이를 먹고도 취업을 못한다. 사기업은 당연히 빽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공기업이나 은행까지 이럴 줄은 몰랐다. 공기업이나 은행도 공무원 시험이나 수능 보듯이 뽑으면 비리가 조금 덜할까”라고 했다.

 

우리는 알바도 구하기 힘든데, ‘알바권리금’

아르바이트조차 쉽게 구할 수 없는 청년들은 공기업·은행 채용비리에 울분을 토로했다.

취업준비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강모씨(27)는 “중소기업 취업해봤자 알바보다 돈 조금 받고 일 많이 한다. 질 좋은 직장 취직하려고 알바 뛰고 있는데 좋은 알바마저도 구하기 힘들다”며 “알바도 권리금이 있다”는 말을 했다.

‘알바권리금’은 가게를 넘길 때 권리금을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받는 것처럼 아르바이트를 양도할 때 주고받는 돈이며 최근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청년들 사이에서 성행하고 있다. 권리금이 있는 직종은 과외·학원·편의점·카페·술집 등이다.

주말 PC방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임자에게 7만원에 구매한 남모씨(28)는 “누구는 알바하려고 돈까지 내는데 누구는 스팩이 안 좋아도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공공기관이나 돈 많이 버는 은행에 들어간다. 미치겠다”고 말했다.

 

수치로 보는 청년 현실

청년들의 비참한 현실은 수치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높은 수치만큼 채용비리를 보는 청년들의 느끼는 분노도 크다.

청년층 실업률은 작년에 9.9%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업자 외에 사실상 실업자인 취업 준비생을 포함한 ‘체감 실업률’ 역시 작년 22.7%로 사상 최고였다.

정부 공식 통계가 아닌 일부 전문가들의 조사에 따르면 실제 청년 체감 실업률은 30%를 넘어 5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6년 청년 체감 실업률이 34.2%에 이른다고 발표한 바 있다.

청년이 대학 졸업 후 취업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2개월. 재학 기간으로 모자라 졸업 후 1년간 취업준비를 하는 것이다. 막상 취업하더라도 일자리의 질이 좋지 않다. 취업에 성공한 청년의 83.8%가 첫 월급이 200만원을 밑돌았다. 이 때문에 취업해도 금방 그만두는 경우가 전체 취업자 수의 61.5%다.

"났네 났어, 난리가 났어. 에이 참, 잘 되었지. 그냥 이대로 지내서야 백성이 한 사람이나 어디 남아 있겠나." 조선후기였던 1893년 봉기를 준비하던 전라도 고부의 농민이 만든 사발통문의 일부이다. 이 한 해 동안 전국에서 60여 차례 민란이 일어났다. 원인은 뇌물을 받는 것을 일삼던 관리들의 부정부패(不正腐敗)와 지방관 자리를 돈 주고 사고파는 매관매직(賣官賣職). 지금 청년들의 현실은 민란을 준비하던 농민들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시급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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