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교육 평가혁명⑨] “토론 논술형 수업에 만족… 학교 가면 행복합니다”
[일본교육 평가혁명⑨] “토론 논술형 수업에 만족… 학교 가면 행복합니다”
  • 신향식 객원기자
  • 승인 2018.01.3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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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20년은 공교육의 경쟁력 상실에서 시작됐다. 일본이 ‘교육평가혁명’을 시도하고 있다. 부실한 공교육이 국가발전의 걸림돌이라는 값비싼 교훈을 얻은 결과다. 한국 교육계가 대입수학능력시험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문제를 놓고 갈등하는 가운데 일본은 대학입시와 중고교 교육현장에서 ‘평가혁명’에 착수했다. 객관식 문제를 줄이거나 폐지하고 서술·논술형으로 바꾸는가 하면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 교육과정을 공교육에 도입하는 혁명적인 변화다. 서울대, 고려대, 서울교대 등이 대입전형에서 논술고사를 전면폐지하고 다른 대학들도 논술전형을 축소하는 한국과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독서신문은 신향식 객원기자를 일본에 급파, 일본 교육의 평가혁명 현주소를 살펴봤다. <편집자 주(註)>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의 한 학생이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를 발표하는 모습

[독서신문]  “집단 따돌림이 하나도 없다고 장담은 못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서로 친하게 지냅니다. 조별 학습을 하면서 예방 효과를 본 겁니다. 학교를 집처럼 편하게 느낍니다.”

‘집어넣는 수업’ 대신 ‘꺼내는 수업’을 하는 국제 바칼로레(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 교육과정에서는 학생들이 얼마나 행복해 할까. 일본 삿포로 시립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의 아이자와(相沢) 코쿠메이(克明) 교장이 한 발언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지난해 12월 13일 오후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1층 회의실. 중학생 8명에게 IB 교육과정으로 공부하는 소감을 들어봤다. 20분밖에 시간이 없어 이들을 각각 인터뷰하기는 힘들었다. 시간 절약을 위해 공통질문을 주고 각자 종이에 답변을 적어내게 했다.

첫 질문은 “학교 생활이 행복합니까?”로 했다.‘한국 학생들이 세상에서 가장 경쟁적이면서 고통스럽게 지낸다’는 프랑스 ‘르몽드’지의 2010년 교육특집 기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은 산업화 시대에 만든 어긋난 교육 제도를 고수한다”며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나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한다”고까지 충고한 적이 있다.

 

◆ “세상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 주는 IB형 교육에 만족”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학생들이 IB형으로 수업 받는 소감을 적고 있는 모습

“행복합니다”, “즐겁습니다”, “재미있습니다”, “만족합니다”.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학생들에게서는 거의 같은 답변이 나왔다. 이들은 IB형 교육에 한결같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8명이 전체 학생을 대표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토론논술과 과제연구에 재미를 붙였다고 했다. 피곤에 지친 표정은 전혀 없었다. 단 한 명도 지루하다거나 어렵다고 답변하지 않았다. 3일간 수업을 참관하면서 만나본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점수 경쟁에 내몰려 학업에 지친 일부 한국 학생들의 표정과는 달랐다.

키타야마 유우지(北山勇次, 1학년) 군은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이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이토 하루키(斉藤陽己, 1학년) 군은 “수업 시간에 교사에게 얼마든지 질문할 수 있다”면서 “어떤 질문을 해도 문제되지 않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외국인들과도 교류할 수 있고 여러 가지 분야를 폭넓게 살펴볼 수 있어 IB형 교육에 만족합니다. 특히 토론해 문제를 푸는 활동이 즐겁습니다. 배경지식을 쌓고 관심 분야를 탐구할 수 있습니다.”(야마모토 쇼고 군. 山本匠悟, 1학년)

“세상 사는 데 필요한 지혜와 경험을 얻을 수 있어서 기쁩니다. 토론하고 소통하는 능력은, 다른 교육과정으로 공부하는 학교의 학생들보다 더 우수할 겁니다.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데에도 유리하다고 봅니다.”(타키모토 네네 양, 滝本寧々, 3학년)

이토 슌타(伊藤駿太, 1학년) 군은 “(친구들과 협력해 활동하는 일이 많다보니 서로 친해져서)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없다”면서 “아무 걱정 없이 즐겁게 학교에 다닌다”고 말했다. 쿠보 슌스케(久保俊介, 3학년) 군은 “친구들과 마음껏 소통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면서 “사회에 나가서도 이것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아이패드 검색하며 관심 분야 탐구하는 과제연구 재미있어”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의 과학 수업이 진행되는 모습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에서는 과제탐구학습을 위해 수업 시간에 아이패드(iPad)를 사용하게 한다. 정보들을 재조직해 생각을 구성하는 데 활용하라는 취지다.

학생들은 대부분 ‘과제탐구 보고서 수업’에도 만족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아이패드(iPad)를 활용해 자료 조사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고 말했다. 한국처럼 객관식 선택형 문제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보는 대신 보고서를 제출해야 해서 부담스럽다고는 했다. 하지만 새로운 사실을 탐구해 글로 정리하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미즈시마 타네키(水嶋胤喜, 1학년) 군은 “보고서를 써내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궁금한 분야를 마음껏 찾아가면서 공부할 수 있고 국제적인 시야도 넓힐 수 있어 유익하다”고 말했다. 또, “대학생이 돼서도 보고서를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타키모토 네네 양은 “정보 검색에 아이패드를 요긴하게 활용한다”면서 “아이패드로 자료를 조사하고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는 활동이 즐겁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소통하고 자료를 찾아볼 때 재미가 있습니다. 아직은 나이가 어리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수업이라고 생각합니다.”(타키모토 네네 양)

“글로 써내는 숙제가 많지만 집중해 작업하면 어느새 끝나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습니다. 문장력이 있어야 지식을 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보고서를 쓰는 일이 유익하다고 봅니다.”(이토 슌타 군)

 

◆ “친구들과 치열한 토론…학교생활 정말 즐거워”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과학 시간에 학생들이 책을 보며 이야기 나누는 모습

일부 학생들은 토론 수업이 즐겁다고 입을 모았다. 교사가 머리에 넣어주는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아니라 주제를 정해 놓고 급우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는 과정에서 학업의 재미를 맛본다고 했다.

니시야 후우카 양은 “역사나 체육, 동물 등 친구들마다 좋아하는 게 모두 다르다”면서 “이들과 이야기하면서 문제 해결 방법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찾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사이토 하루키 군은 “토론식 수업이고 친구들 성격도 좋아 대화하기가 수월하다”고 밝혔다.

키타야마 유우지 양은 “조별 토론은 물론 반 전체가 모여 치열하게 토론할 때 흥미진진합니다”라고 말했으며, 쿠보 슌스케 군은 “친구들 모두 재미있게 토론하고 선생님들도 도움을 주셔서 학교 생활이 즐겁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 “조별토론 협력학습은 집단 따돌림 예방 효과 발휘”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가정 시간에 학생들이 공동 작업을 하는 모습

학생들이 IB형 수업에 만족해 하는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의 아이자와 교장은 조별학습 등 학습자 중심 수업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지식 습득보다 지식 활용을 중시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협력하는 등 함께 사는 삶에 초점을 맞춘 교육과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별 토론은 학생들이 급우들을 이해하고 각자의 차이를 상대의 좋은 점으로 인식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집단 따돌림 현상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얼굴 표정이 밝지 않습니까? 학교 다니는 게 신나는 겁니다.”

아이자와 교장은 “학생들은 학습자 중심 수업에 참여하면서 배움의 즐거움을 실감한다”면서 “사회 진출 뒤에도 스스로 배울 수 있는 힘을 익힌다”고 말했다. 또 “시험 범위를 공부하고 버리는 게 아니라 평생 경쟁력을 키운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고 덧붙였다.

 

◆ 사교육 도움 받는 학생들보다 그 반대의 사례가 더 많아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의 아이자와 교장이 IB 교육과정을 설명하는 모습

예상대로 사교육 의존도는 높지 않았다. 인터뷰한 8명 중에서 3명만 사설 학원에 다닌다고 했다.

미즈시마 타네키 군은 “일주일에 네 번 학원에서 영어, 수학, 국어를 공부하고, 사회와 과학은 독학으로 해결한다”고 말했다. 이토 슌타 군은 “학교 공부만으로는 부족해 주 3~6회 학원 수업을 듣는다”면서 “특히 이과 과목에서 학원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밝혔다. 쿠보 슌스케 군도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려고 학원에서 일주일에 두 번 수학과 영어 수업을 듣는다”고 말했다.

사이토 하루키 군은 “학원에 다니지 않지만, 학원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한다”며 “그 이유는 학교 수업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더 높은 수준으로 똑똑해지고 싶은 마음에 일부 친구들이 학원에 다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니시야 후우카 양은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부족한 과목은 스스로 집에서 공부해 해결한다”면서 “그렇게 해도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타키모토 네네 양은 “학원과 학교의 공부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면서 “그런데 혼자 공부하다보니 영어 공부는 좀 어렵다”고 밝혔다. /  통역=임문택 삿포로무지개한국어학원 대표

[이 학교의 고교 과정 학생들은 아직 IB 교육과정에 들어가지 않아 중학생들만 인터뷰를 했다. 이들의 취미는 수학문제 풀이부터 야구, 서예, 가라테, 노래, 재즈, 다도,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장래희망은 수리연구원, 의사, 수학교수, 난민 구호가, 음악가, 농학(農学) 연구원 등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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