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치욕적 오역 논란... 한강 작품 아닌 리라이팅?
채식주의자 치욕적 오역 논란... 한강 작품 아닌 리라이팅?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1.2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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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2016년 ‘맨 부커 국제상’을 수상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영역본을 둘러싼 오역 논란이 다시 커지고 있다.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는 지난 20일 서울대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국제인문포럼에 참석해 “내가 번역한 『채식주의자』가 한국어 원작과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고 말하는 건 어떤 측면에선 전적으로 옳다”며 지난해부터 이어지던 『채식주의자』 오역 논란을 재점화 했다.

데버러 스미스는 발표문 ‘우리가 번역에 관해 얘기할 때 말하는 것들’에서 “그 어떤 두 언어에서도 문법이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는 없으며, 단어 역시 각기 다르고, 심지어 구두점조차 서로 다른 무게를 지닌다”며 “문자 그대로 옮긴 번역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창조적이지 않은 번역이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 번역에 유난히 오역이 많았다는 평균치를 어떻게 측정했는지 모르지만, 독자들에게 읽히고 폭넓게 사랑 받는 것에는 나쁜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채식주의자』 속의 오역들

지금까지 국내 영문학자와 번역가, 문학비평가들 사이에서 『채식주의자』의 오역 100여 개가 지적됐다.

일단 영역본은 단어의 의미를 임의로 해석했다. “그날 서울은 때 이른 무더위를 기록해 큰 건물이나 점포들은 일제히 에어컨을 가동했다”는 문장에서 데버러 스미스는 ‘무더위’를 단지 ‘Humidity'라고 번역했다. 무더위는 습도와 온도가 둘 다 높다는 의미인데 온도는 빼고 습도만 주목해서 번역한 것이다.

또 “딱 부러지게 차려놓은 점심상”에서 ‘딱 부러지게’를 ‘swifty'라고 번역하여 원작의 ‘상을 그럴듯하고 거하게 차렸다’는 의미를 ’재빨리 차렸다‘는 의미로 바꿨다.

소설의 전체적인 상황과 우리나라의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번역한 부분도 있다. “나는 비실비실 웃음을 흘리며 그녀가 따라 웃기를 기다렸다”에서 ‘비실비실’은 원작에서 ‘눈치를 보며 비굴하게 행동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데버러 스미스는 ‘비실비실’을 ‘힘없이 자꾸 비틀대다’는 의미의 ‘falteringly'로 바꿨다.

주술관계를 달리 해석한 번역도 있다. 원작에서 주인공의 아버지가 딸 부부를 향해 “이제 너희 걱정은 다 잊어버렸다”고 말한 것이 영역본에서는 “이제 너희들은 걱정거리를 다 잊게 됐구나”로 번역됐다. ‘걱정’의 주체가 바뀐 것이다.

아예 새롭게 바뀐 문장들도 있다. “달리다 죽은 개가 더 부드럽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대”란 문장을 영역본에서는 “달리다 죽는 것이 덜 고통스러운 형벌로 여겨진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라고 번역했다.

소설가가 쓰지 않은 문장을 끼워 넣은 것도 보인다. 원작에서 “종일 사무실에서 에어컨을 쐰 나는 냉기에 지쳐서 (집에) 돌아왔다”는 문장에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돌아왔다”는 문장을 추가했다.

또 남편이 주인공의 외모에서 평범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원문에는 없는 두 문장 ‘told me all I needed to know’, ‘I couldn’t help but notice her shoes’를 차례로 집어넣었다.

 

잘못이다 vs 아니다

지난해 오역을 지적했던 일부 전문가들은 데버라 스미스가 국제인문포럼에서 한 말을 두고 ‘번역을 잘못 했든 아니든, 인기를 얻으면 된다는 주장이다’라고 비판했다.

『채식주의자』 영역본과 불역본을 비교해 오역 사례를 꼬집은 조재룡 고려대 불문과 교수는 “한마디로 서툰 번역을 변명하는 것”이라며 데버러 스미스의 ‘창조적 번역론’을 반박했다.

그는 “스미스의 번역은 한국어 특성인 주어 생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자주 오역을 했거나, 원작의 인물과 텍스트의 특성을 바꿔버렸다. 변역가가 윤문할 수는 있지만, 틀리게 번역하면 안 된다”며 “데버러 스미스의 어깨에 한국 문학 세계화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식으로 찬양하기만 해서는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영역본이 거의 작품을 다시 쓰는 리라이팅 수준이라면서 데버러 스미스의 영어 문장 자체는 뛰어나며 그렇기 때문에 상을 받은 것이어서, 맨부커 수상은 한글 원본 『채식주의자』의 승리가 아니라 영어판 『Vegetarian』의 승리라고 했다.

정과리 연세대 국문과 교수 또한 일찍이 『채식주의자』의 영역본을 제2의 창작이라고 하며 “한국어에 대한 기본 지식을 토대로 해야 창조를 운위할 자격이 있고, 번역가 스스로 ‘완벽한 번역은 없다’고 말하는 건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또 “한국어 원전을 영국 번역가와 편집자가 마음대로 바꿔버리고 상을 주는 것은 시혜의 표정으로 자행하는 야만”이라고 말했다.

반대의견도 있다. 영미 번역가이자 작가인 대니얼 한은 데버러 스미스의 오역 논란에 대해 “원전과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 번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지만, 모든 단어들이 다르다는 것을 간과하는 발언이며, 아무리 원본을 살리려 번역을 하더라도 언어적 차이에 의해 음절, 글자수, 소리, 글자를 발음할 때의 느낌, 이미지가 전부 바뀌게 되며,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번역은 불가능하고,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지킬지 선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데버러 스미스는 자신이 소설에서 한국문화를 지워버린 것에 대해 “영국의 번역가들은 문화적 요소를 필요 이상으로 바꾸는 것을 지양하며, 나 또한 한국 작가가 한국어로 쓴, 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는 것을 지워버리고 싶지 않았다. 지워버리는 대신 번역 속에 뭔가를 숨겨놓을 가능성을 점친다”고 말했다. 그는 번역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작가에게 요구되는 것과 동일하며 번역가들은 궁극적으로 원전을 너무 배신하지 않으며 동시에 독자가 즐겨 읽을 수 있는 번역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자 역할이라고 했다. 자신의 번역이 한국 문화를 완전히 지운 것은 아니며 지웠다면 독자가 즐겨 읽을 수 있는 번역을 하기 위해서라는 말이다.

그는 그가 번역한 『소년이 온다』의 예를 들었다. 『소년이 온다』에서 등장인물 중 하나가 감자를 호호 불어 먹는 장면이 있는데 그는 원전과 달리 ‘뜨거운 감자를 입 속에서 굴린다’고 번역했다. 이에 대해 “감자를 불어먹는 것은 한국에서는 군고구마를 길거리에서 불며 먹는 것 같은 장면을 연상하게 하지만, 영국에는 이런 상황이 없다”며 “등가적이자 육체적인 행위가 있다면, 그것은 감자 조각을 입에 넣었다가 너무 뜨거워 입안에서 굴리며 먹는 것이다. 작가가 원작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한국 사람들은 감자를 손에 후후 불어 먹는다’가 아니라 ‘기다리지 못하고 먹어버리는 어린아이의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번역, 왜 제대로 안 되나?

데버러 스미스의 입장이 맞는지 아니면 비평가들의 주장이 맞는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우리나라는 번역의 불모지라고 할 만큼 오역 논란이 심하다.

일각에서는 번역가들이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번역가들이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끔 지원을 하지 않는 환경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국에 귀화해 37년을 살며 고은 시인을 비롯해 서정주, 정호승, 도종환, 천상병, 김광규 등 수많은 한국 시인들의 작품을 영문으로 번역해 온 안선재 교수는 한국 책뿐만 아니라 한국에는 외국소설도 번역이 잘못된 책이 많다면서 “다빈치 코드가 처음 한국어로 번역돼 나왔을 때 몇몇이 읽어보고 제대로 번역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번역을 제대로 하려면 그 문화와 역사를 이해해야 하는데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는 번역가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번역하는 문제를 환경 탓이라고 주장했다. 즉 제대로 된 ‘투자’의 부족이 문제이며, 번역가에게 적절한 보상이 지급되지 않고 출판사에서 번역에 그리 신경 쓰지 않으면 번역가는 그만큼 번역을 대충하고 번역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는 “한국출판계 번역 환경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번역을 굉장히 무시한다. 누구나 번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번역 역시 살아있는 문학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러나 제대로 번역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만한 대우를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에서는 좋은 책이 나올 수 없다”고 비판했다. 조재룡 교수 또한 “오류 없는 번역을 위해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해외 학자들에 대한 지원 확대가 시급하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문화가 외국인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이영준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한 나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문화적 면역력이 강해지면 그 나라의 문학 번역은 원전을 그대로 살리는 방향으로 간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문화가 외국인에게 낯설기에 번역이 원전과 다르게 간다는 의미다.

소설가 이문열은 언어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세계는 기본적으로 인도와 유러피언 언어를 중심으로 편성돼 있다. 거기에 간신히 끼는 것이 일본어, 아랍어, 중국어 정도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도구의 불리함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K-POP이 외국에서 유명세를 얻기까지 수많은 연예 기획사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한국문학번역원 김성권 원장의 말처럼 한 나라의 문학은 번역을 통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 우리 문학이 세계에 알려지고, 누군가 노벨 문학상을 거머쥐기 위해서는 번역에 대한 문제를 끊임없이 공론화 시키고 우리 문학을 해외에 전파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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