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박종철,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칼럼] 박종철,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독서신문
  • 승인 2018.01.2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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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재홍 발행인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경찰의 말은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쓰는 데 좋은 영감을 주었다. 경찰의 이 말은 거짓으로 포장된 폭압의 정권이 진실의 펜 앞에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하나의 신호탄이 되고 말았다.

1987년 새해 벽두를 흔들었던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얘기다. 영화 <1987>은 이 사건으로 촉발된 1987년을 조망한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1987년을 빼놓고 말할 수 없음은 바로 공권력 폭정의 은폐를 언론이 세상에 처음 드러내 놓았고 수많은 시민과 종교계 재야 등이 한마음으로 이 공권력에 저항해 민주화라는 값진 성과를 얻었기에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영화 <1987>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영화는 대성공이다. 그런데,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에게 1987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TV 등을 통해 전달되는 80년대는 서울올림픽, 홍콩영화 등 추억의 감성팔이가 아닌가싶다.

전투경찰의 군화 소리에 아침을 열고 최루탄 가스에 해가 저무는 ‘공포의 아스팔트’를 요즘 젊은이들에게 설명하는 건 요령부득이다. 하물며 박종철이라는 이름은 낯설다.

당시 민주화운동도 이젠 화석처럼 기억 저편에 묻혀 있는데 박종철이라니. 이한열이라니. 그래도 기억해야 한다. 영화 <1987>의 미덕이 여기 있다. 역사는 항상 과거를 찾아 오늘을 비추려 하는데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역주행은 빛이 난다.

최근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을 특종 보도한 당시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가 책 『특종 1987』을 냈다. 신성호는 1980년대를 경험하지 못한 청소년 청년들에게 군사독재, 광주민주화운동, 학생운동 탄압, 고문치사, 언론 통제 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라고 물으며 피 흘리며 쓰러져간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냥 옛 이야기로 남겨둘 수는 없다고 스스로 답한다.

당시의 얘기를 누군가가 올곧게 들려주어야 한다며, 박종철이라는 젊은이를 기억하자고 했다. 신성호가 말하는 ‘기억’은 ‘진실’, ‘정의’라는 말과 같으며 ‘저항’을 내포한다.

그러나 이 시를 보자.  ‘4·19 나던 해 세밑 / (…) / 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 /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 시인 김광규는 1982년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서 1960년대 ‘때묻지 않은’ 대학생을 이렇게 그리면서 그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고 했다.

시는 이어진다. 18년 만에 만난 ‘우리’는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 (…) 처자식들의 안부를 묻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 (…)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 (…)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그 때 바람은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속삭였다. 이들은 ‘우리’는 역사의 정주행인가, 신념의 역주행인가.

80년대 최루탄을 뚫고 때묻지 않은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들, 연신 구호를 외치던 넥타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문재인 정부 핵심들은 박종철 이한열과 거의 동시대를 호흡한 비슷한 연배다.

‘때묻지 않은 청춘’ 박종철과 이한열 등은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어 ‘땅 위의 별이 된 기성세대’인 요즘 실세들을 굽어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청와대에 있어도, UAE에 있어도. 또 적폐청산을 하는지, 새로운 적폐를 낳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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