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출간, 혼자면 충분하다
책 출간, 혼자면 충분하다
  • 권보견 기자
  • 승인 2018.01.18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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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의 미래가 된 ‘1인 출판’, ‘베스트셀러 점령’

[독서신문 권보견 기자] 출판 당시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던 『언어의 온도』와 『자존감 수업』이 지난해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했다. 출판계에서는 ‘역주행’보다 『언어의 온도』와 『자존감 수업』을 펴낸 출판사가 ‘1인 출판사’라는 데 더욱 주목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1인 출판사는 직원 4명 이하 규모로 대개 출판사 대표가 직접 기획, 필자 섭외, 원고 청탁, 편집, 디자인, 제본, 배본 및 유통과 홍보 등 출판의 전 과정을 담당하는 출판사를 뜻하며, 2000년대 이후 독서율 감소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출판계가 불황기에 접어들자 출판계 ‘스타트업’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출판업계에서 떠오르는 키워드는 ‘작음’이다. 책 자체가 작고 얇아진 것뿐만 아니라 전달하는 메시지도 소수 독자의 특화된 관심사를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1인 출판사는 기존의 소규모 영세 출판사와 달리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기초로 해 한발 앞선 기획과 감각적인 편집, 독자들과의 직접 소통 등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입지를 다졌다. 2016년 상반기에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상위를 휩쓴 초판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을 펴낸 소외다린 출판사도 대표적인 1인 출판사 중 하나다.

힌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KPIPA)의 ‘2017 출판산업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4만 4,148개였던 출판사 수는 2016년 5만 3,574개로 증가했다. 이중 연간 1~5종의 책을 발행하는 소규모 출판사는 3,730개에서 4,938개로 늘어났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출판 선진화를 이룬 일본에서도 1인 출판사의 숫자는 증가하는 추세다. 일본 출판업계에 따르면 약 3,500개 출판사 가운데 사원이 10명 이하인 출판사가 2,000개이며, 전체 출판사 규모에서 90% 정도를 차지한다.

늘어나는 1인 출판사, 어디서부터 왔나?

출판계는 소규모 출판사의 증가 원인에 대해 “대부분 기존 출판 시스템에 종사하던 이들”이다. 불황이 심해지면서 조직에서 설 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나와서 출판사를 차린다”며 “대부분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 편집자·마케터들로, 최근 출판계에 부는 ‘1인 출판사 열풍’의 주축들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유유출판사 대표 조성웅과 마티출판사 편집장 박정현은 “대한민국 출판업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1인 출판사의 증가에 대한 또 다른 원인”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작은 출판사들로 인해 독특한 책이 많아지는 건 좋은 일이지만 출판사가 이렇게 기형적으로 늘어난다는 건 출판계의 구조적 문제”며 “소신을 가지고 조직을 나오는 사람도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채 밀려나 ‘울며 겨자 먹기’로 출판사를 차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의견을 밝혔다.

박 대표는 “더 이상 대형 출판사에서 나이든 편집자가 자리 잡을 수 없다는 반증”이라며 “50· 60대 편집자가 자리를 지키려면 출판사 규모가 커져야 하는데 계속 제자리걸음이니 연차가 높은 순부터 정리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2014년 말부터 시행된 도서정가제도 1인 출판사 증가에 영향을 줬다.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에 따르면 구간 할인으로 만들어온 매출이 사라지면서 2015년 전체 출판사의 매출이 떨어졌고, 이는 곧 내부 인원 감축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대형 출판사가 출판시장을 휩쓰는 현상이 약해지면서 출판 관계자는 독자 개개인의 요구나 취향을 맞추는 소규모 출판사들이 개성을 강점으로 주목받는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한편 다양한 SNS가 생겨나면서 책을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진 것과 더불어 독자들이 특정 분야나 특정 출판사의 책을 선택해서 읽는 소비 트렌드도 소규모 출판사의 증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이 지난해 인문·사회 분야 출간 트렌드로 ‘1인 출판’을 꼽은 것처럼, 출판업계에서는 당분간 1인 출판사가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며 기존의 제작·유통 관행에서 벗어나 출판 트렌드를 새롭게 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인 출판사, ‘전문성·유연성·빠른 의사결정’ 갖춰

1인 출판사인 ‘말글터’를 통해 『언어의 온도』를 펴낸 이기주 작가는 1인 출판사의 성공 비결을 ‘전문성’과 ‘유연성’으로 꼽았다. “출판의 모든 프로세스를 일괄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대형출판사에 비해 1인 출판사는 여러모로 제약과 한계가 많은 반면에 한 분야에 집중할 수 있고 출판 진행 과정에서 홍보 등의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존감 수업』은 1인 출판사 ‘심플라이프’에서 출간했으며, 별다른 마케팅 없이 온전히 콘텐츠의 힘으로 지난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했다.

1인 출판은 저자 입장에서도 좋다. 음식 관련 서적을 전문으로 하는 1인 출판사 ‘따비’를 통해 『대한민국 치킨전』을 낸 농촌사회학자 정은정은 “1인 출판사는 동시에 여러 책을 진행하지 않기 때문에 편집자나 출판사가 저자를 위해 온전히 집중해주는 분위기”며 “땡땡책협동조합처럼 1인 출판사 간의 연대가 끈끈해 상호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치킨전』은 별다른 홍보 없이 약 1만부 이상 팔리며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랐다.

또한 1인 출판사는 의사결정 구조가 간결하기 때문에 트렌드를 포착한 후 SNS 홍보에 적용하는 과정이 빠르며, 독자들과의 직접적인 소통과 필자에 대한 집중도가 높은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1인 출판사로 독립한 상당수가 경력자들이다 보니 뛰어난 기획력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든 사례도 있다. 2016년 유유출판사에서 출간한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홍보 없이 4만부 넘게 팔렸다. 이 책은 20년 간 교정·교열사로 일한 김정선의 문장 다듬는 법을 다뤘다.

독립서점, 독립출판 등 1인 출판사들의 콘텐츠를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더욱 특화된 출판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1인 출판사, “넘어야 할 산 있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약 9,000곳의 출판사가 새로 문을 열었고, 그 중 소규모 출판사가 약 1,200곳이다. 1인 출판사의 수가 늘어나면서 출판계의 미래를 이끌 것이라는 전망 아래, 몇 가지 제약과 한계도 안고 있다.

일본에서는 1인 출판사를 위한 제도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일본의 소규모 출판사들을 취재한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은 최근 일본 작은 출판사가 ‘트랜스뷰’라는 직거래 방식을 정착시켰으며, 지난해 8월 일본에서는 출판사 65개와 서점 1,500곳이 트랜스뷰를 통해 거래한다고 밝혔다.

대형 유통업체가 신간을 자동 배본하는 방식과 달리 트랜스뷰는 어느 서점이 단 한 권의 책을 주문하더라도 주문 즉시 바로 배송하는 직거래를 말한다. 일반 유통사를 통한 반품률이 40%인 반면 트랜스뷰의 평균 반품률은 10%에 그친다.

1인 출판사가 출판계의 미래를 이끌기 위해서는 제도뿐만 아니라 책 판매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의 저자 니시야마 마사코는 “한국도 마찬가지일 텐데, 책은 이익이 적은 상품이거든요. 많이 팔지 못한다면, 적은 이익을 커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편집자가 단순히 콘텐츠만 편집하는 시대는 끝났어요. 어떻게 책을 팔 건지, 서점 진열대의 문맥까지 생각해야 하는 시대입니다”라고 말했다.

쓰타야 서점을 성공시킨 『지적 자본론』의 저자 마스다 무네아키는 책이 아닌 제안을 판다는 점, 디자인이 덤이 아닌 본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일본의 국민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1931년생인 다니카와 씨는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에 실린 인터뷰에서 “시대와 함께하는 일을 무시하고 이상을 추구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책이 ‘오브제’가 된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다.

출판의 미래가 1인 출판사에 달렸다. 콘텐츠의 질만큼이나 책에 독자가 ‘자신의 일’로 여길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느냐가 앞으로 더 중요해졌다. 출판업계의 불황 가운데 자신의 방식으로 혼자서라도 헤쳐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그들이 걷는 길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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