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도 제친 '인스타그램'
‘노벨문학상’도 제친 '인스타그램'
  • 권보견 기자
  • 승인 2018.01.09 11: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 대통령 페이스북 한마디, 판매량 100배 증가

[독서신문 권보견 기자] 교보문고와 예스24의 1월 2주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지난해 노벨 문학상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이 하위권으로 내려갔지만,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는 여전히 상위권을 고수하고 있다.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는 교보문고에서 2위, 예스24에서 3위를 유지했고,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은 각각 60위, 44위로 내려갔다.

한편 더욱 주목할 점은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가 교보문고와 예스24의 지난해 10월 3주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재탈환한 것인데, 이는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상을 수상하고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지 불과 3주 만이다.

힘 빠진 ‘노벨문학상’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는 것은 매년 10월이면 되풀이되는 풍경이다. 이 때문에 노벨문학상 특수를 잡기 위해 주요 서점과 출판사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최근 5년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2011·스웨덴·시인), 모옌(2012·중국·소설가), 앨리스 먼로(2013·캐나다·소설가), 파트리크 모디아노(2014·프랑스·소설가) 등의 작품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노벨문학상 수상과 판매량이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11년 수상자인 트란스트뢰메르는 수상 후 판매신장률이 269배, 2012년 모옌은 55배, 2013년 먼로는 1262배, 2014년 모디아노는 66배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파크도서에 따르면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노벨상 발표 이전 한 달에 평균 4권이 팔렸지만, 발표 이후 한 달간 무려 2879권이 팔렸다. 예스24에 따르면 먼로의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발표 전후로 일주일간 판매량이 3권에서 1665권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요즘 출판시장의 불황으로 노벨문학상 특수가 ‘반짝인기’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이 베스트셀러 보증수표라는 건 옛날 옛적의 이야기다. 1982년 수상작인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이나 1983년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 같이 민음사의 세계문학 전집에 수록되는 등 장기간 열기를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요즘 노벨문학상 특수가 쉽지 않다”면서 “청년실업, 고용불안 등으로 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식었고 소설도 읽지 않는다. 삶에 대한 여유가 있어야 책도 읽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국내 최고권위의 문학상을 받아도 몇만 부를 팔기 힘든 시대다. 노벨문학상에 대한 주목도는 높지만, 책을 구매하는 것은 별개의 행위”라고 의견을 밝혔다.

출판시장을 움직이는 ‘SNS의 힘’

SNS가 출판 시장을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출판 시장의 키워드가 ‘역주행’으로 꼽힌 것처럼 출간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책들이 SNS에서 입소문을 타며 순위 역주행에 성공했다.

지난 4일 교보문고가 발표한 ‘2017 연간 베스트셀러 및 결산’에 따르면 올 한 해 가장 많이 팔린 도서 1~3위를 차지한 『언어의 온도』, 『82년생 김지영』, 『자존감 수업』 은 모두 역주행에 성공한 책들이다. 특히 『언어의 온도』는 출간 6개월 후부터 SNS에서 입소문을 타며 뒤늦게 빛을 발해 줄곧 상위권을 유지했다.

SNS의 힘으로 베스트셀러 순위가 뒤집힌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5위를 차지한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7위를 차지한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등 감성 에세이는 SNS 게시물에 자주 노출되며 판매량 증가로 이어진 대표적인 예이다. 또 에세이 분야 8위에 오른 『너의 안부를 묻는 밤』은 손으로 쓴 문장을 SNS에 연재하던 지민석·유귀선 작가의 인기 게시물을 취합한 책으로 출간과 동시에 인기를 끌었다.

더불어 지난해 『나에게 고맙다』를 출간한 전승환 작가처럼 SNS에서 다수의 팔로워를 가진 ‘SNS 스타’의 책 출간이 잇따르고 있다. 더불어 SNS가 신규 독자 유입을 위한 주요 마케팅 방법으로 떠오르면서 최근에는 유튜브, 페이스북 등에서 활동하는 북튜버나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활용한 도서 마케팅도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나에게 고맙다』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다양한 SNS에서 ‘책 읽어주는 남자’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전승환 작가가 5년간 매주 100만 명의 구독자들에게 전했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SNS로 많은 팔로워를 확보한 작가의 힘은 대단했다. 출간 1년 만에 100쇄를 돌파했고, 교보문고의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오르내리며 꾸준한 인기를 얻었다.

지난해 8월 출간된 지 1년도 넘은 『명견만리』 시리즈의 판매량이 급증했고, 단번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휴가를 떠난 문재인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누구에게나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라고 게시물을 올린 것이 시발점이 됐다. 교보문고에서는 “평소 판매량이 하루 70여 권에 불과했던 이 책은 하루 만에 100배 이상 판매량이 증가했고, 지난해 종합베스트셀러 29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교보문고는 “에세이 분야 도서들은 SNS에서 언급된 횟수와 판매량이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며 “『언어의 온도』는 해시태그 게시 건수가 5만6,000건 이상이었고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등 주요 도서들은 1만 건 이상이었다”고 설명했다. 일명 '북스타그램'으로 검색되는 화제 도서들이 SNS 및 블로그 등의 영향으로 관심을 많이 받았고, 높은 판매량으로 이어진 것이다.

북스타그램이란 책을 사진으로 찍어 자신의 SNS에 공유하는 게시물을 말하며, 현재 해시태그에 '#북스타그램'으로 검색되는 게시물만 약 110만개에 이른다. 이에 따라 각 대형서점이나 동네서점 그리고 출판사에서도 SNS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실용서 판매가 주를 이루면서 독자 수가 급격하게 줄었던 에세이·시 분야가 최근 들어 열풍하고 있는 배경으로 SNS가 꼽힌다. 감성을 자극하는 짧은 문장이나 시구를 SNS로 공유하는 이들이 늘면서 시와 감성 에세이를 찾는 독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심보선, 정호승 등 스타 시인들의 시집이 출간, SNS에 공유, 새로운 독자 유입의 선순환 구조가 시 분야의 성장세를 이끈 것이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시·에세이 분야의 판매액이 16% 성장했다.

이처럼 SNS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많은 팔로워를 확보한 ‘SNS 스타’를 저자로 이끌어 들이거나 저자들의 SNS 활동을 독려하는 것이 일반화됐다. 또 신간을 출간할 때 주요 마케팅 전략으로 ‘열정에 기름붓기’ ‘책읽찌라’ ‘겨울서점’ 등 콘텐츠 크리에이터나 북튜버를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출판사 ‘문학동네’와 ‘창비’ 등과 동네서점 ‘사적인 서점’ ‘동반북스’ ‘땡스북스’ 등이 SNS를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책을 서점의 매대나 온라인 사이트에서 발견했다면, 지금은 SNS, 텔레비전 프로그램, 영화 그리고 친구의 입소문까지 전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특히 SNS 파워 유저나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활용해 책을 소개하는 전략은 이미 모든 출판사들이 활용할 정도로 일반화됐다”고 설명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