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교육 평가혁명⑦] “수학 수업에서도 사회생활 적응하는 지혜 교육”
[일본교육 평가혁명⑦] “수학 수업에서도 사회생활 적응하는 지혜 교육”
  • 신향식 객원기자
  • 승인 2018.01.06 19: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잃어버린 20년은 공교육의 경쟁력 상실에서 시작됐다. ’일본이 ‘교육평가혁명’을 시도하고 있다. 부실한 공교육이 국가발전의 걸림돌이라는 값비싼 교훈을 얻은 결과다. 한국 교육계가 대입수학능력시험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문제를 놓고 갈등하는 가운데 일본은 대학입시와 중고교 교육현장에서 ‘평가혁명’에 착수했다. 객관식 문제를 줄이거나 폐지하고 서술·논술형으로 바꾸는가 하면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 교육과정을 공교육에 도입하는 혁명적인 변화다. 서울대, 고려대, 서울교대 등이 대입전형에서 논술고사를 전면폐지하고 다른 대학들도 논술전형을 축소하는 한국과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독서신문은 신향식 객원기자를 일본에 급파, 일본 교육의 평가혁명 현주소를 살펴봤다. <편집자 주(註)>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의 수학 수업 장면

[독서신문] 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시립 삿포로(札幌) 가이세이(開成) 중등교육학교는 삿포로시에서 운영하는 6년제 중․고등학교다. ‘금수저’들이 다니는 국제학교(인터내셔널 스쿨)가 아니라 일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반 공립학교다.

이 학교에서는 삿포로 시의회를 설득해 시 예산으로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 논술형 교육과정을 도입해 4년째 모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본 교육 관계자들은 한국 공교육이 IB 교육과정을 도입한다면 이 학교를 본보기로 삼아보라고 추천한다.

지난해 12월 11일 오전 8시 40분,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를 방문했다. 아이자와(相沢) 코쿠메이(克明) 교장에게 학교 현황을 소개 받고 교사 두 명을 인터뷰한 뒤 중3 교실로 안내 받았다. IB의 중학 단계인 MYP(Middle Year Program) 과정으로 진행하는 수학 수업이었다. 교실엔 교사 두 명이 있었고, 부(副)교사인 영국인 토마스 베르쇼 씨가 수업을 이끌고 있었다. 정교사인 여교사는 수업을 지원했다.

 

◆ 교사의 일방적 문제풀이 대신 조별로 풀이방법 열띤 토론

IB의 중학생 단계인 MYP 수학 시간에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의 학생들이 푼 문제지

"5:30, 5:29, 5:28, 5:27…"

칠판 왼쪽의 텔레비전 수상기 대형 화면엔 초 단위로 숫자가 줄어들고 있었다. 3~4명씩 6~7조로 배치된 학생들이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책걸상은 칠판을 향해서 나란히 놓기도 하고, 위치를 바꿔 조별로 배치하기도 했다. 문제지에는 '삼각형과 비(三角刑と比) 문제'가 적혀 있고 '메넬라오스의 정리'도 소개돼 있었다.

"오늘은 삼각형 중심내각을 공부합니다. 이 이론으로 팽이를 만들어 봅시다. 어느 부분을 중심으로 해서 못을 박으면 팽이가 잘 돌 것인지 생각해 보면 됩니다."

토마스 베르쇼 교사는 이날 수업 도입부에 삼각형 중심내각 이론을 응용해 팽이를 만들어 보자고 했다. 문제 풀이 시간으로 20분을 주었다. 그는 해법을 찾으려면 어떤 공식을 어떻게 응용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었다.

학생들은 답안지에 문제풀이를 적느라 바빴다. 객관식 선택형 문항이 아니라 사실상 ‘수리논술’ 형식이었다. 서로 토론도 하면서 해법을 찾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생각을 교환하면서 문제에 접근한 것이다. 공학 계산기를 활용해 해법을 찾아보는 학생도 있었다.

교사 두 명은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조별로 문제풀이 상황을 점검했다. 방향을 잡지 못하면 교사들이 조언해 주었다. 이들은 학생들이 뭐라고 토론하는지 귀기울여 들었다.

 

◆ 문제풀이 고전하면 '이렇게 시도해 보면 어떨까' 교사가 조언

수업 수업이 끝나자 학생들이 교사에게 달려가 질문하는 모습

교사의 개입이 일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 조에서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 상황이 포착됐다. 교사가 작은 목소리로 도움말을 들려줬다. 토론이 너무 빗나가면 교사가 개입해 '이렇게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유도했다.

"지금 시도한 방법도 참 좋아. 그런데 반대로 접근해 보면 어떨까? 그러면 문제가 좀 더 쉽게 풀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교사는 거기에서 그쳤다. 어디까지나 조력자일 뿐이었다. 정답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6, 5. 4, 3, 2, 1, 0(초)"

드디어 문제 풀이 시간이 다 지나갔다. 중간 단계까지는 어느 정도 풀었지만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학생들도 있었다.

"문제를 다 푼 학생들은 손을 들어보셔요."

교사의 말에 일부가 손을 번쩍 들었다. 호명을 받은 한 학생이 칠판 앞에서 어떻게 문제를 풀었는지 설명했다. 문제를 다 해결하지 못한 학생들은 그의 풀이 방법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교사도 판서해 가면서 보충 설명을 해 주었다. 학생들은 그 해법을 이해하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수업이 끝났다. 학생 5~6명이 공책을 들고 교사에게 달려갔다.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교사는 칠판에 문제 풀이 방법을 적어 가면서 설명을 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한 학생은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지 계속 질문을 했다. 교사는 학생들을 이해시키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 ‘정답’보다는 ‘풀이과정’ 중시…글로 조리있게 전달하는 방법 교육

삿포로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의 토마스 베르쇼 수학 교사

이 수업에서는 문제의 정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각자 답을 내기까지 거친 과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어떻게 글로 전달할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교육했다.

"학생들을 몇 개 조로 편성해 스스로 협력해 가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합니다. 단순히 교사가 설명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학생들끼리 문제를 다루게 하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됩니다."

토마스 베르쇼 교사는 "조별 수업 방식은 한편으로는 모험"이라면서 "그러나 학생들이 여러 실패를 겪으며, 서로서로 계속 새로운 풀이방법을 제시하다 보면, 결국 어느 순간 다 함께 '아 이런 것이구나!'하고 깨닫는 순간이 온다"고 말했다. 그는 "배움에서 이와 같은 순간은 아주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수학에서는 이것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답까지 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걸 중시합니다. 사회생활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고력 갖게 해 주는 게 IB 수학 교육의 장점입니다."

 

◆ "입시 위주의 수학교육은 국제화 시대에 맞지 않아"

수학 문제 풀이방법을 토론하는 학생들의 모습

토마스 베르쇼 교사는 "입시 위주의 수학 공부는 국제화 시대에 맞지 않다"면서 "그래서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방법과 지혜를 전해 주는 일이 진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IB 교육과정을 도입한다면 이것이 학생 중심의 교육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겁니다. 교사와 입시와 교재가 중심이 되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이 중심이 되는 미래 지향적 교육입니다."

토마스 베르쇼 교사는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IB 논술형 교육을 해야 한다"면서 "그 이유는 세계가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 입시 중심의 교과서는 변화가 없습니다. 기존의 시험 방법은 좋지 않습니다. 고등부 교육과정인 IBDP는 수업 방법이 게속 변화 발전합니다. 변화가 없으면 안 됩니다. 국제화에 걸맞는 교육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토마스 베르쇼 교사는 1, 2학년까지는 일본어로 수업을 한다. 3학년부터는 영어와 일본어 수업 중 학생들이 선택한다. 다음은 토마스 베르쇼 교사와 나눈 일문일답 인터뷰.

 

◆ "세계가 급변…한국에서도 IB 논술형 교육과정 도입 필요"

- 수학 원리를 응용해 팽이를 만드는 수업이 인상적입니다. 비슷한 사례를 들어줄 수 있나요?

"삼각형을 종이에 그린 뒤, 접든지 어떻게 하든지 아무튼 가위로 한번에 잘라서 삼각형을 만들어 보게 했습니다. 어제도 이런 수업을 했습니다. 빈 종이에 삼각형을 그리고 접은 뒤 한번에 자르는 방식으로 삼각형을 만들어 보는 겁니다."

- 학생들이 잘 하던가요?

"30명 중에 1~2명이 정답을 찾았습니다. 20분에 거의 다 풀긴 합니다. 빨리 찾는 학생은 1~2명입니다. 다음 문제는 더 어려운 걸 줍니다. 답을 찾는 방법을 친구의 풀이를 보고 따라하는 사례도 있는데 모방도 공부가 됩니다."

 

◆ "세상 살면서 만나는 문제를 해결할 지혜를 수학 공부에서 찾아"

- 오늘 수업에서 지도한 내용을 조금 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예를 들어, 오늘 수업에서는 삼각형의 오심을 배웠습니다. 외심, 내심, 무게 중심 같은 것이죠. 특히 오늘은 어떻게 컴퍼스를 사용하면 좋을까 하는 부분을 고민해 보았습니다. 어느 점에 컴퍼스의 중심을 찍어서 원을 그려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주로 다뤘지요."

- 그 다음에 어떻게 했나요?

"4인 1조로 편성된 학생들에게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게 해 보았습니다. 처음부터 학생들이 정확한 지점을 찾아서 올바르게 원을 그리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식으로 토론 분위기가 올라갔습니다. 다들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고력과 창의력이 향상되겠지요."

 

◆ "문제풀이방법 토론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

- 수업에서 유난히 뛰어난 학생들도 있나요?

“한 반에 25~30명 정도의 학생이 있는데, 실제로 1~2명은 문제를 내자마자 정답을 알 정도로 뛰어납니다. 이 학생들에게는 비슷한 개념을 사용하지만, 한 단계 더 수준 높은 문제를 제시해 좀 더 생각할 기회를 줍니다.”

- IB 교육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IB 수학에서는 정답을 맞추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와 씨름하는 과정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자신이 찾은 정답이 맞는지 틀렸는지가 중심이 아니라, 수학 지식을 도구로 사용해 문제와 씨름하는 데에 몰두하도록 합니다. 이를 조금 더 확장한다면, 인생에 적용 가능한 능력을 기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실제로 많은 문제를 겪으며 하루하루 그런 문제들과 씨름하기 때문입니다.”

- 일본 교육의 단점은 무엇인가요?

“일본에서는 대학입시가 중요하기 때문에, 교사가 모든 내용을 설명하는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이 방식이 실제로 학생들이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또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학생들은 국제적인 환경 혹은 업계에서 살아나가야 합니다. 학업을 마친 뒤의 삶은 대학입시와는 전혀 다릅니다. 교사는 바로 이 부분을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단순히 학생이 입시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 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할 것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곧 성인이 될 학생들의 삶, 다시 말해 한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나가게 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일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 "사회 진출 뒤에도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역량 기르도록 지원"

- 학생들에게 단순하게 지식을 주입하려는 게 아니군요.

“학업을 마치고 나면 더 이상 선생님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 일을 가르쳐 주는 회사 상사는 있어도 공부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은 더 이상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더 이상 공부를 할 필요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 그러면 학생들에게 어떤 능력을 길러주십니까?

“취직을 한 이후에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점점 도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없기 때문에 결국 사회인은 어느 정도 스스로 공부를 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능력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연습해 몸에 익히는 것입니다. 저는 학생들이 그런 능력을 기르도록 돕고 있습니다.” / 통역=임문택 삿포로무지개한국어학원 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