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가벼움 『가벼움의 시대』
[책 속 명문장]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가벼움 『가벼움의 시대』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1.01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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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우리는 모더니티를 합리화나 기능에 따른 구분, 개인화, 탈종교화, 또는 세계의 상품화 같은 구조적 논리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감각적이고 암시적인(또는 상징적인) 도식을 사용하여 더 형이상학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삶을 가볍게 하기’라는 개념보다 현대사회의 역할, 즉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의 전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개념은 없다.

이 개념은 17세기와 18세기에 철학적 모험을 시작했고, 과학적·도덕적·정치적 이성이 그것을 지탱했다. 혁명적 행동뿐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실현하고 욕구와 속박 상태를 해결하며 불행과 고통의 짓누르는 듯한 중압을 없앨 수 있다고 여겨지는 기술과학의 발전에도 엄청나게 큰 희망이 담겨있다. 이것은 꿈으로만 남아 있지는 않았다. 18세기 말이 되자 기아와 흑사병으로 말미암은 엄청난 재난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대기근은 서서히 사라지고, 위생상태가 개선되었으며, 평균 노동시간이 줄어들었다. 인간들을 덜 짓누르는 물질적 조건들을 통해 삶을 가볍게 만드는 현대의 모험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현상은 얼마든지 있다, (...)

개발경제에서는 일상생활을 수월하게 할 뿐 아니라(위생적이고 안락한 주거, 가전제품, 자동차) 정보를 만들어내고 전달하며(텔레비전, 전화, 컴퓨터, 인터넷) 아름답게 만들고(기성복, 화장품, 장식품), 즐겁게 만드는(텔레비전, 오디오, 음악, 영화, 게임, 여행)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재화가 도처에 넘쳐난다. 소비의 세계가 삶을 가볍게 하기 운동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것은, 그것이 계속해서 더 많은 안락함을 제공하고 물질적인 충족의 여유와 편리함, 즐거움을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29~30쪽)

물론 무거운 것에 대한 가벼운 것의 싸움은 현대를 구성하는 요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전의 사회가 인간들의 삶을 가볍게 하고 싶은(최소한 일시적으로나마) 심리적 욕구를 충족해 달라는 요구를 무시한 것은 아니다. 인류학적·역사적 자료는 인간 사회가 온갖 종류의 고통을 완화하고, 삶의 불행을 떨쳐 버리고, ‘진지한 것’의 과중함을 잊도록 해주는 관행과 제도, 신앙을 갖추고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보여준다. (33쪽)

물론 이러한 추세가 역전되어 쾌락주의와 개성, 자유로운 개인 성향을 찬양하는 사회가 찾아올 것이라는 상상을 추상적인 방법으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틀에 박힌 가벼움의 독재 시대가 끝나면 자연적이고, 개인적이고, 다양한 아름다움이 지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완전히 유토피아적인 이 희망찬 기대에 찬물을 끼얹어야만 할 것 같다. 이런 종류의 시나리오가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 사회가 몸에 대해 작용하는 강력한 이상이나 규범을 찬양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알려진 모든 사회에서 몸은 수정되고, 변화되고, 매우 다양한 표지들로 표시된다. (119쪽)

■ 가벼움의 시대
질 리포베츠키 지음 |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펴냄 | 388 쪽 | 18,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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