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나이 들어서 책과 사귀는 방법 『100세까지의 독서술』 
[책 속 명문장] 나이 들어서 책과 사귀는 방법 『100세까지의 독서술』 
  • 윤효규 기자
  • 승인 2017.12.14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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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여든 살까지는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백살까지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여자는 어떤지 몰라도, 남자는 아흔살만 돼도 거의 글렀다고 봐도 좋다. 여기까지 오면 이미 도망갈 곳이 없다. 마치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두둥실 공증에 떠 있는 듯 의지할 데 없었던 내 인생의 깊은 곳에 생각지도 못하게 단단한 암반이 출연했다. '아, 나이가 든다는 건 이런 것일까' 하고 놀랐다.

젊을 때의 독서에는 무한한 미래가 있었다. 그런 착각은 60대 중반 정도까지 그런대로 이어졌지만, 일흔을 넘기면서 깨져버렸다. 나에게도 죽음이 곧 닥칠 것이다. 내게 남은 그 한정된 시간 내에 과연 몇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이런 종류의 자문(自問)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인생의 최종 단계에 발을 내디딜 때면 으레 거치는 형식적인 절차 같은 것으로, 결국은 지금까지의 독서 습관을 그대로 유지한다. <12~13쪽>

책을 소장하는 데 집착하지 않는다. 다 읽은 책,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은 책을 팔거나 버리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책은 내 방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단지 통과해가는 존재일 뿐이라고 마음먹고 처음부터 그런 생각으로 책을 대한다. <71쪽>

마쓰다 미치오의 글에는 '나는 지금에는 흥미가 없다'는 식의 말이 자주 등장한다. 영화를 본다면 옛날 영화가 좋다. 장 가뱅과 험프리 보가트, 시무라 다카시가 좋다. 요즘 영화는 시시하다고 거리낌없이 말한다.

노인들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심정은 나도 모르는 바 아니다. 이를테면 나 역시 젊은이 사이에서 평판이 높은 소설을 읽어도 그다지 재미를 못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쪽은 '요즘 세상의 연약한 노인'이지 않는가. 옛날 선배들처럼 '요즘 소설은 시시하다. 나와 제군 사이에는 언어조차 소용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정말이지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소설이 내게는 별반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일개 퇴직 노인이 된 내가 그렇다는 것이지 요즘 소설의 질이 옛날보다 떨어졌다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 <194~195쪽>

『100세까지의 독서술』 
쓰노가이타로 지음|송경원 옮김|북바이북 펴냄|272쪽|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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