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찾사] 함민복이 탄복한 시그림책 『흔들린다』
[시찾사] 함민복이 탄복한 시그림책 『흔들린다』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11.22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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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두껍고 딱딱한 표지에 실린 그림에 눈이 갔다. 심하게 흔들리는 나무, 이파리는 굳건해 보였다. 책 제목이 그때야 『흔들린다』임을 알았다.

제목 아래 깨알같은 글씨로 함민복 시 한성옥 그림이라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표지 바탕색은 푸른 하늘에 새털구름인 듯 희끗희끗한 무늬가 박혀 있다. ‘시 그림책’이다. 아니 ‘그림책 시’인가?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천둥 번개가 섞어치던 그날 밤, 산은 웅크린 채 검은 형체만 보여주고 있다. 멀리 먹장구름은 여전히 무겁지만 나무는 흔들리지 않고 평온하다. 산도 비로소 뿌옇게 원근이 구별되는 모습이다.

또 다시 일진광풍, 그리고는 뽀드득 씻은 듯 하늘은 맑고 산은 높아지고 나무는 한 뼘은 자란 것 같다. 그리고 클로즈업되는 잎이 무성한 아름드리 나무, 넉넉한 그늘로 집 하나를 품고 있다.

시가 등장한다. 함민복이 특유의 산문투로 조곤조곤 이야기해준다.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었다는 이유로 익선이 형이 아주 베어버리려고 그 큰 참죽나무에 올라 가지를 베면서 내려온다. 가지를 칠 때는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나무 균형을 잘 잡아야 베는 사람도 균형을 잃지 않는다.

나무가 흔들리며 이파리를 떨어뜨린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그림에는 드디어 가지 하나 툭 떨어진다. 한성옥 작가는 떨어지는 나뭇가지는 채색을 하지 않아 무생물처럼 보이게 했다.

여전히 나무는 흔들린다.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여기서 한 작가는 호흡을 멈춘 듯 여백만 보여준다. 환상처럼 하늘에 하늘하늘 떠가는 이파리인 듯, 아니 지상으로 낙하하는 구름의 조각인 듯 두 페이지에 걸친 무언의 반투명 넋들이 아릿하다.

그러면서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어느덧 떨어지는 이파리들은 새 생명을 얻은 듯 붉게 물들었다.

이 책을 낸 출판사 작가정신 윤소라 팀장에 질문을 넣었다. 친절한 답변이 돌아오는 데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이메일 일문일답이다.

『흔들린다』
함민복 시 한성옥 그림 │ 작가정신 펴냄 52쪽 11,000원 (168×240㎜)

- 『흔들린다』는 작가정신 시그림책 1호다. 시그림책 어떤 책인가, 새로운 도전인가. 기획의도는…

그간 아동 출판 시장에서는 시그림책이 심심찮게 출간되었습니다. 하지만 문학 분야에서는 상당히 낯설게 느끼는 듯합니다. 시그림책을 출간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시 한 편으로 그림책을 만든다고?”라는 물음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작가정신 시그림책’은 새로운 분야로 파고드는 도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림책이 어린이들만 보는 책이라는 편견은 깨진 지 오래입니다. 그림책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향유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은 장르입니다.

그래서 그림책을 0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읽는 책이라고도 하지요. 시그림책이라면 시를 세대 구분 없이, 경계 없이, 편안하게 향유하며 소통할 수 있는 장을 열어 줄 수도 있지요. 그렇다고 장대한 기획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그림 가운데 시가 있고, 시 가운데 그림이 있는 시그림책으로 잠깐 일상에서 비껴나 느긋하게 딴 생각하고 마음 넉넉해지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 표지 디자인만 봐서는 시그림책인지 아이들 그림책인지 잘 모르겠다. 함민복 시 글자도 매우 작다.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의도적인 것 같다. 설명을 좀…

"『흔들린다』도 ‘작가정신 시그림책’ 시리즈도 ‘아이들’만을 위한 그림책이 아닙니다. 작품 표지부터 앞쪽 면지, 속표지, 본문, 뒤쪽 면지까지 모두 계산된 이야기 흐름과 호흡, 긴장을 유지해 가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까 작품의 시작은 본문이 아니라 표지부터입니다. 독자의 시선이 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서 벗어나지 않게 했습니다. 시의 메시지를 표지에서 직접적으로 설명해 주지 않아 불친절해 보일 수는 있지만, 그래야 오롯이 시그림책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함민복 시인이 1번 타자다. 함 시인의 시가 좀 편해서 그런가, 아니면 시를 읽으면 그림이 떠올리기 편해서 그런가

"『흔들린다』는 읽기 수월한 시입니다. 그렇다고 그림을 떠올리기 편한 시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마 그런 이야기를 하면 한성옥 그림책 작가가 분개할 겁니다. 시를 곱씹으며 아무리 떠올려 봐도 시의 1연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 떠오르는 시각적 요소는 흔들리는 나무뿐이니까요.

그럼에도 『흔들린다』를 가장 먼저 내놓은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흔들리지 말라고 말하기는커녕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는 삶을 다독여 주니, 마음도 편해지지요"

- 함 시인은 이런 책 내는 데 뭐라 반응했나

"호쾌한 반응이셨습니다. 멋진 책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고 하셨지요. 작업본은 흥미롭게 보셨고요.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만, 그림책이 품고 있는 무궁무진한 세계를 좋아하시는 듯합니다"

- 한성옥 그림이 살아있다. 적절한 작가 선정 같은데, 왜 한성옥을 골랐나

"출판사에서 그림 작가를 선정했다기보다 시와 그림이 결합된 작품 자체가 출판사에 걸어 들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6년 인청광역시도서관발전진흥원이 주관한 ‘제2회 책, 피어라 콘서트’에서 한 작가가 함 시인의 시집 다섯 권 가운데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에 수록된 시 「흔들린다」에 주목하여 그림 영상을 제작하고 낭독을 더해 선보이면서 『흔들린다』는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영상과 지금의 시그림책은 맥락 자체는 같지만, 형태와 기법 면에서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림 작가의 마음에 와 닿아 작업한 만큼 살아 있다고 느껴지는 듯합니다. 현 그림책협회장이기도 한 한 작가는 아트디렉터로도 활동하고 있어 시를 넘치지 않고 균형감 있게 표현해낸 듯합니다"

- 책값이 1만1천원이다. 비싸다. 주변 평은 어떤가. 출판사 생각은 어떤가

"시집 가격을 생각한다면 『흔들린다』의 책값이 비싸다고 느끼실 수 있겠습니다만, 고급스러운 장정으로 출간했습니다. 적정 가격이라 생각합니다. 일반 그림책 가격과 비교한다면 사실 큰 차이도 나지 않고요. 주위에서는 ‘시’그림책으로 생각하느냐, 시‘그림책’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평이 나뉘는 듯합니다"

- 이 시리즈 다음 시인은 누구인가
아직 확정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한 가지, ‘시인’보다는 ‘시’에 더 중점을 두어 다음 시그림책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흔들린다

      함민복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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