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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주수자 “문학 개념 넓어져 ‘댓글’도 문학, 스마트소설은 혼밥시대 새 장르”

[독서신문] 한 순간, 책을 읽던 독자가 소설 안으로 손을 쑤욱 넣고 주인공에게 말을 건다. “잠깐만요!” 그녀는 깜짝 놀라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대체 왜 자신을 막느냐는 듯이. 다름 아닌 대문호 셰익스피어에 의해 탄생한 인물, 줄리엣이다. 사랑하는 로미오가 자신 때문에 죽은 것을 알고 가슴에 단검을 꽂으려는 순간 독자가 개입한 것이다. 

독자는 줄리엣을 향해 외친다. “사랑 때문에 죽으면 어떡해요?” 그러자 줄리엣은 “그게 무슨 말”이냐며 “진실한 인간이라면 사랑을 위해 죽는 게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본다. 독자는 고백한다. “전 그저 독자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름다운 여자가 그런 방식으로 죽는 걸 도저히 볼 수 없어 참견하게 된 겁니다. 책읽기에서 독자란 그냥 방관자로 있는 것만은 아니니까요” 두 사람의 대화는 조금 더 이어지다 끝이 난다. 

단 5페이지 분량의 소설 『부담 주는 줄리엣』의 줄거리다. 원고지 7매 정도 되는 짧은 글이다. 또 다른 소설 『빗소리 몽환도』를 보자. 27페이지에 걸친 이야기로 이 소설집에 실린 것 중에는 가장 길다. 소설의 주인공은 옥탑방에 사는 공상호다. 독서가 유일한 취미이자 위안인 그는 방금 책 한 권을 읽고 마지막 장을 덮었다. 마른 손가락으로 책 커버를 쓰다듬던 중, 누군가 옥탑방 문을 ‘똑똑’ 두드린다. 

문을 열자 조금 전 책에 등장했던 여자가 그의 눈앞에 서 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눈은 와이셔츠 단추처럼 작고 반짝이고, 조그마한 입은 고집스럽게 일자로 다물고 있다. 난데없이 나타난 그녀는 그의 방을 사기로 집주인과 얘기를 끝냈다며 무작정 방 안으로 들어온다. 겉모습은 너무나도 닮았지만 성격은 책에 묘사된 것과 사뭇 다르다. ‘캐릭터의 변질’이다. 공상호는 그녀와 어쩔 수 없이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그녀의 남자친구가 공상호를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또한 독자와 책 속 주인공의 만남을 다룬 소설이다. 

소설집 『빗소리 몽환도』를 최근 출간한 소설가 주수자 씨를 만나 두 이야기에 무슨 의도를 담았는지 물었다. “진짜 독서란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주로 책은 작가의 정수를 담고 있어요. 저자가 가진 최고의 지성이자 지혜의 산물인 거죠. 독서는 그런 정수와 만나는 것이에요.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변해요. 주인공이 상상과는 다르듯, 주인공이 독자의 삶에 개입하면서 독자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2001년 『한국소설』로 등단한 주수자 씨는 작가로서의 삶을 꽤 늦게 시작했다. 그는 서울대학교 미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뒤 1976년부터 프랑스, 스위스, 미국에서 살다 1998년 영구 귀국한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다. 저서로는 소설집 『버펄로 폭설』, 『붉은 의자』, 『안개동산』, 시집 『나비의 등에 업혀』 등이 있고, 제1회 스마트소설박인성문학상을 수상한 만큼 ‘스마트소설’에 관해서도 들려줄 이야기가 많다. 

누군가는 “70년대 남들은 외국 여행도 못 하는 시절에 프랑스며, 스위스며, 미국이며 호강했다”며 그를 오해한다. 집은 평창동. 테라스에 서면 서울이 다 보이고 북악산, 인왕산, 날이 좋으면 관악산까지도 보인다. “북한산과 교류하며 살고 있다” 하니 오해할 만도 하다. 하지만 그는 “갑작스런 유배처럼, 난데없는 실향민처럼 떠돌았고, 아주 젊은 20대부터 40살까지 안락했지만 죽어있었다”고 한다. 친구나 친척도 없었다. 그저 그때의 고독한 경험이 자신의 문학이 머무는 지점이고, 뿌리내리지 않고 유랑한 과거가 결국은 자신의 문학적 뿌리였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 스마트소설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는 소설 앞에 어떤 형용사를 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봐요. 소설은 소설일 뿐, 추리소설·역사소설·SF소설 등의 구분은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나눈 것이거든요. 소설은 인간이 인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일 뿐이죠. 그러나 구조적으로 보면 소설에서 길이의 차이는 중요한 요소에요. 길이에 따라 대하소설, 장편소설, 중편소설, 단편소설로 구분돼요. 스마트소설은 빠르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 걸맞게 짧은 분량으로 축약된 새로운 장르라고 할 수 있어요. 단편소설이 원고지 70매라면, 스마트소설은 원고지 7매·15매·30매 등 짧아요” 

- 시대의 변화가 만들어 낸 새로운 장르로 봐야겠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는 장편소설을 읽을 시간도 없거니와, 인생에 대한 통찰을 표현하는 데는 반드시 긴 책이 요구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작가 보르헤스는 짧은 소설을 이렇게 표현했어요. ‘단 몇 분 안에 말로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생각을 500여 페이지에 길게 늘어뜨리는 짓은 쓸데없이 힘만 낭비하는 정신 나간 행위’라고요. 지금은 다매체 시대에요. 어느 매체에서 영혼의 밥을 먹을 것인지는 열려 있어요. 스마트소설은 그러한 시대의 요구에 맞게 생성된 문학 장르겠죠. ‘1인분 밥’과 같아요. ‘혼밥’을 시켜놓고 읽을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장르에요” 

- 주로 소외된 계층을 주인공으로 다뤘어요 

“문학은 ‘달’에 쓰는 거예요. 권력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약자, 비틀어진 사람들에 주목하려 해요. 어둠에다 쓰는 게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 16편의 소설 중 가장 각별한 것을 고른다면요

“『놀이공원 무유위유(無有爲有)』요. (‘무유위유’란 장자의 제물론에 나온 말로 ‘있지 않는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설에는 놀이공원을 찾은 두 소녀가 나온다. 그중 한 소녀는 놀면서도 놀이공원의 이상한 점을 하나씩 발견한다. 정문에서 티켓을 팔던 남자가 조금 가다보니 바위에 구두약을 칠하고 있고, 자신이 받아든 아이스크림에서는 초콜릿 맛이 느껴지지 않고 그저 고무로 만들어진 모조품 같다. 친구에게 이 놀이공원은 진짜가 아닌 것 같다 말하지만, 친구는 ‘재미없다’며 동의하지 않는다.) 롯데월드를 떠올리면서 쓴 소설인데요. 놀이공원에 전기가 없다면 그 공간은 가짜인 게 드러나잖아요. 아이들이 ‘진짜’라고 믿으며 행복하게 뛰어다니는 그곳이 사실은 가짜라면요? 우리가 사는 현대의 삶과 비슷하다고 봤어요. 우리는 실제 삶이 어떤지 모르고 그저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는 건 아닐까요?”

- 점차 책을 읽지 않는 세태를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시공간에 갇혀 있는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이 ‘독서’라고 생각해요. 책을 읽으면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과 인간을 이해하는 힘을 소유하게 돼요.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보물을 지니는 거죠. 그야말로 진짜 부자가 되는 거예요. 한 개인의 작은 울타리를 확장할 수 있는 방식 중 최고는 독서일 겁니다. 청소년들이 책을 읽지 않는 문제는 그들의 탓이 아니에요. 사회구조 때문이에요. ‘독서’와 ‘문학’의 개념을 확대해야 해요. 우리 시대에는 ‘댓글’도 문학이에요. 그리고 좋은 문학이 양산된다면 청소년들도 마치 개미가 단 것을 쫓아다니듯이 독서를 하려 들 거예요. 문학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그 문학의 형태는 다양해질 것이고, 시대에 맞는 문학도 생겨나야 합니다” / 이정윤 기자, 사진=이태구 기자

『빗소리 몽환도』       
주수자 지음 | 문학나무 펴냄 | 176쪽 | 11,000원

이정윤 기자  jylee9395@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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