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7주년 특별 인터뷰] ‘연탄재’ 시인 안도현 “사람의 안을 보자, 세상의 바닥을 보자”
[창간 47주년 특별 인터뷰] ‘연탄재’ 시인 안도현 “사람의 안을 보자, 세상의 바닥을 보자”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11.09 17: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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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어둠을 털어내는 전등을 밝힌 집에 백설기 같은 김이 허옇게 서린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갈탄 난로가 뜨거운 집, 거기에는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

그래서 해 뜨는 아침에는 맑은 사람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고 했다. 사랑이란 또 다른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지 않고 그리고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이라 했나. 지치고 상처입고 구멍 난 삶을 데리고 그대에게 가고 싶다. 이윽고 그는 낙엽이 지는 날,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었다.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라 했다. 그대여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 지를.

그리고 마을 쪽에 쥐똥 같은 불빛 멀리 가물거리거든 사랑이여, 이 밤에도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내 마음인 줄 알아 달라 했다. 내 마지막 편지가 쓸쓸하게 그대 손에 닿거든 사랑이여 부디 울지 말라. 그는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을 찾아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귓속에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다. 부치지 못한 편지, 오지 않는 편지,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삶이 때로 까닭 없이 서러워지면서 편지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했다.

한 여자보다 한 여자와의 연애를 그리워하였고 맑고 차가운 술을 그리워하였고 그래도 외로울 때는 파도 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 넣거나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도현 시인

여인에 대한 사랑 연민 쓸쓸함 그리고 기다림이 천천히 세월을 더듬듯 흘러간다. 기자가 시인 안도현인 척 해봤다. 그의 시를 여럿 늘어놓아 딴에는 한 편의 시 같은 글, 글 같은 시를 두름처럼 엮었다.

안도현처럼 「청진 여자」를 만나 한반도 허리를 꼭 껴안듯이 품고 싶었고, 그래서 「그대에게 가고 싶다」를 내내 읊었고,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알고 싶어 「가을 엽서」를 써서 그 게 마치 「마지막 편지」라 해도 그대 손에 닿기를 바라며, 「바닷가 우체국」을 오래 오래 바라보면서 긴 편지를 쓰는 소년이 되고 싶었던 게다.

안도현이 이 시 5편을 쓸 때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상상한다. 그 때 안도현은 지금보다 20년은 더 젊었을 때다.

그 안도현을 만났다. 가을 분위기 나는 공원 벤치는 아니고 안암동, 학생들이 자주 드나드는 카페였다. 오후의 가을볕이 비스듬하게 꺾여 마룻바닥을 훑고 여학생의 맨살 복숭아뼈를 투명하게 비추는 2층이었다.

안도현 시인은 몇 해 전 이탈리아 여행길의 한 젊은 여자를 떠올렸다. 길가 벤치에 앉아 양말을 벗어 두 발을 모은 채 책을 펼쳐 든 여인, 가을볕은 바람에 실려 머리카락을 헤집고 가을바람은 발가락 사이로 무심히 흘렀다. 그 맨발의 여자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가을, 하면 생각나는 게 뭐 있냐고 물었더니, 싱거운 얘기라며 들려줬다.

「청진 여자」 「그대에게 가고 싶다」 「가을 엽서」 「마지막 편지」 「바닷가 우체국」 등은 그러고 보니 모두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청진 여자」에는 ‘동해 같은 자궁을 열어주는’ ‘신천지 속으로 힘차게 나을 밀어 넣으면’ 등 표현이 있다.

언제쯤 썼기에 농익은 냄새가 날까. “20대 후반에 쓴 거예요” 아무 감정도 없는 즉답이다. 조금 더 시(詩)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러면 안 시인이 동해 같은 자궁아닌 가슴을 열어주지 않을까. 그래서 과감히 신천지 속으로 기자는 스스로를 밀어 넣었다.

시를 쓴다는 게 상상력의 결과물임에는 틀림없는데, 감정을 몰아넣으며 감상에 빠지는 건지, 감정이 확 올라오면 그 때 시를 쓰는 건지 궁금했다.

“제가 지금 시를 가르치잖아요(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다). 자기감정을 시에 털어놓으려고 하면 백프로 실패한다고 학생들에게 말해줍니다. 시는 그런 장소도 아닙니다. 감정을 여과해서 보여줘야 합니다.” 기자에게 좀 더 쉽게 설명해준다. “내가 굉장히 슬프다고 말하는 게 시가 아니예요. 내가 그립다고 하는 게 아니고 슬프고 그리운 감정을 묘사하고 비유해서 독자에게 보여줘야죠. 의사가 환자를 수술하는데 이 환자 얼마나 아플까 생각하고 수술하지는 않잖아요”

안도현 시인이 독서신문 창간 47주년을 축하하는 글을 시집에 적어 보여주고 있다.

시인이 되는 게 치열한 시대정신과 빛나는 감수성을 가져야 반드시 가능한 것은 아닐 터, 안 시인도 역시 문학소년이었지만 고교 1학년 때 시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공부 대신 원고지에 매달려 고교 3년동안 백일장을 휩쓸었다. 상장이 하나 늘 때마다 문학소년 안도현은 자신감이 붙었고 급기야 교만이 하늘을 찔렀다. 대학 1학년 때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한다. 사실 꿈은 화가였지만 중학교 때 교지에 삽화 그리라는 선생님에게 혼난 뒤 그림을 포기했다.

시인은 타고납니까, 만들어집니까. 초딩같은 질문을 했다. 짐짓 원초적 물음이라도 되는 양. “선천적으로 태어나는 시인은 백년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합니다. 시인은 만들어집니다. 그것도 스스로 생각하고 노력하고 열정도 가진 다음이죠”

다음 말이 와 닿았다. “남의 시집이 서가에 얼마나 많이 꽂혀 있느냐가 시인의 실력을 가늠합니다. (남의 시집) 10권 가진 사람과 100권 가진 사람의 시는 다릅니다. 글 쓰는 힘은 독서량과 절대 비례합니다”

그가 낸 시집은 10권, 실린 시가 600편 정도. 고교 때 쓴 시가 100여 편, 대학 때 100여 편, 그리고 동시집도 3권 냈다. 대충 지금까지 쓴 시가 1천편을 헤아린다. 그의 독서량도 짐작해본다.

이쯤해서 ‘연탄재’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천하에 안도현 이름 석자 알린 안도현에겐 그야말로 뜨거운 시라고 할만하다. 제목은 「너에게 묻는다」 이다.  1연 3행 30자에 불과하지만 연탄불처럼 화력(火力)도 좋지만 화력(話力)은 엄청났다. 길가에 흔하게 놓인 연탄재를 걷어차면서 분풀이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한번쯤 그 희생(뜨거움)이었느냐고 묻고 있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제가 썼지만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닙니다. 작품 속 너는 저 자신이예요” 해직교사 시절인 1990년대 초반에 썼고 2004년 펴낸 시집에 실렸다. 시인 마음에 들든 말든 그 시는 놀라울 정도로 인구에 회자됐다.

자신을 돌아보기를 설득하는 말이 이처럼 진솔한 적이 있었나. 요즘 말로 돌직구 화법이다. “어투가 명령형으로 강렬하죠. 너는~ 이러면서, 그래서 일반인들이 잘 기억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연탄이라는 생활 밀착 소재로 시를 만들었다는 데 놀라고 또 친근하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아무도 연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어가는 모습을 쓰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안 시인은 ‘죽어가는 연탄’을 살렸다.

불씨 살려 활활 아직까지 타오르고 있으니 안 시인은 누구에게나 뜨거운 사람이라 할 만하다. 안 시인은 뜨거운 가슴으로 길바닥을 보고 형형한 눈으로 세상의 바닥을 봤다. 그 길바닥에서 불씨를 하나 살렸고 세상의 바닥에서 아름다움을 건져 올렸다. 그게 서정(抒情)이다.

서정 얘기는 그런데 기자가 함부로 할 게 아니었다. 안 시인이 말하는 서정을 들어보자. “누군가 ‘안도현은 서정이라는 국자로 현실로부터 시를 퍼올린다’고 하더라”라는 말로 질문을 대신했다.

“많은 사람들이 서정과 현실적인 문제(또는 역사)를 별개라고 생각해요. 서정적인 것은 자연, 개인감정으로 역사적인 현실이 개입되지 않은 것이라고요. 그러나 이런 인식 때문에 50년대 사회 참여운동이라는 개념이 생겼고 시인들이 현실에 관심을 가지면 참여시라면서 양분했죠” 안 시인의 설명이 길어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직장만 다니고 정치에는 관심 없는 게 가능한가요? 밥을 먹으면서 TV를 보게 되면 정치도 알게 되는 것이고, 친구과 술 먹다보면 정치 얘기를 할 수도 있고, 이런 것들이 섞여 있는 것이거든요”

안 시인은 이런 예를 들었다. 젊은 농민이 장가를 못 가서 고민하고 있다면 그 것 또한 서정이요, 정치인이 촛불들고 집회에 나가는 것도 서정이라고. 그래서 안 시인은 사람의 안을 본다는 말을 듣는 것 같다. 젊은 농민의 마음, 정치인의 마음, 서정의 품으로 안으면 그게 현실이 되고 그 현실의 안을 들여다보면 서정이 흐른다. 이게 시인이다. 다시 말해 서정이다.

햇볕은 어느덧 창가로 물러났고 카페는 그늘에 젖어들며 목소리들도 숨을 죽였다. 중간고사 즈음이라고 동행한 여기자가 말한다.

안 시인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얘기가 블랙리스트이고 절필 스토리다. “당분간 쓰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 게 2012년 선거 끝나고였죠. 2013년 3월 말, 검찰에서 전화가 왔어요. 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하고 박근혜 당시 후보를 비방했다고 일베 회원으로부터 진정이 들어왔다는겁니다.

얼마 뒤 담당 검사가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 검사가 4월에 잘렸어요. 5월 되니 다른 검사가 전화를 해서는 오늘부터 피의자라고 했고 그래서 재판이 시작되고 기소됐죠. (말없음) 덕분에 잘 쉬었죠” 박근혜 대통령 임기동안 쓰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쓰지 않았다. 쓰지 않은 시간과 쓰지 않는 행위도 박근혜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이 확보되면 어디서든 글을 쓴다. 단, 혈중 알콜 농도 0.01에 가까울 때. 1차로 소주 두어병 마신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소설가 이병천과 잘 어울린다.

시풍이 있다면 그것도 나이 먹으면 변한다. “젊었을 때는 뜨겁고, 말하고 싶은 게 많았고 해결해야 할 것들(반독재 투쟁, 민주화, 통일 등)이 많고 관심도 높았죠. 그러나 요즘은 그런 것들이 달성 또는 소멸, 상실됐다고 해야 할까요. 어쨌든 지금은 작고 하찮은 것, 낮고 뒤쪽에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는 고백이다.

독서신문을 보여주었다. 타블로이드판에서 올해 1월부터 단행본 크기로 격주발행하고 있다. “1634호라니, 놀랍습니다. 독서신문이 창간 47주년을 맞았다니 정말 축하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더욱 공격적인 신문이 되십시오” 안 시인은 중학 때 독서신문을 보았고 문학소년의 꿈을 키웠다.

애착이 가는 시로 「간격」을 꼽았다. 나무가 모여 숲이 되는 게 아니라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이 모여 숲이 된다는 시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간격이 있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간격이 있고 사람과 시대 사이에도 간격이 있다.

간격이 모인다는 말은 서로 한발씩 가까이 가는 것 아닐까. 사람에 한 발 더 가까이, 세상에 한 발 더 가까이. 그래서 당신과의 간격이 모이고 세상과의 간격이 모이고, 그러면 시인은 사람 안으로 더 들어가고 세상 바닥으로 더 내려간다. 그는 오늘 밤, 한 편의 시를 쓸 것이다. / 엄정권·이정윤 기자, 사진=이태구 기자

간  격

                             안도현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鬱鬱蒼蒼)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보고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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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화 2017-12-17 23:45:26
안도현시인님의 시집을 읽으며 시공부할 때가 있었습니다. 친근하면서 따뜻한 시를 읽고 감동하고 그랬습니다. 다음에 시인님처럼 좋은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세월은 막을 수 없나봅니다. 눈발같은 머리카락이 보이고 잔주름이 생긴 걸 보면 그러나 여전히 난로같은 온기가 느껴지는 모습에서 예전 강연 오셨을 때 회원님들과 마신 동동주,희고맑고 정갈한 갈매나무를 생각나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