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가득 꽈배기처럼 맛있는 ‘B급 구라’
설탕 가득 꽈배기처럼 맛있는 ‘B급 구라’
  • 정연심 기자
  • 승인 2017.11.0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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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자, 여기 꽈배기가 있다. 구겨진 종이봉투에서 꺼낸 꽈배기는 기름기와 설탕이 적당히 배어들었다. 노릇노릇 말랑말랑한 꽈배기를 한입 물면 기분이 좋아진다. 개구쟁이 친구 같은 맛이라고 할까, 내안의 어린아이를 불러들이는 귀여운 맛이라고 해야 하나.

최민석은 『꽈배기의 맛』에서 이렇게 말한다. ‘꽈배기는 대단한 빵이 아니다. (...) 꽈배기의 맛이란 대체 무엇인가. 처음에는 설탕 맛과 겉은 바싹하고 속은 부드러운 맛으로 먹지만, 본질은 한번 맛보고 나면 다음부터는 ‘무슨 맛인지 모르고 계속 먹게 된다’는 것이다. (...) 그저 꽈배기가 눈에 띄면 ‘음. 꽈배기군’하며 자연스레 사먹게 되는 것이다.’

에세이를 쓰기 위해 소설가가 됐다는 저자는 비로소 생각했다. ‘그래, 꽈배기 같은 에세이를 써야겠어.’

1권 『꽈배기의 맛』은 2012년 펴낸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 개정판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인도에서 날아온 한 편지에서 “부디 억눌린 12억 인도인의 영혼을 위해 매주 한 편씩 희망이 담긴 글을 써주세요”라는 읍소에 가까운 산스크리트 어의 애원을 접한 후, 강한 책임감에 억눌려 매주 주한 인도 대사관의 번역 감수를 받아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니고, 시인 고은 선생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에세이를 쓰면 무병장수한다네!’라는 충고를 들어서 쓰는 것도 아니’며 일체의 청탁 없이 스스로 정한 마감을 지켜가며 에세이를 썼다고 밝힌다.

‘각 잡고’ 쓴 글과 달리 되는 대로 슬렁슬렁 쓴 것 같지만, 꽈배기를 무심코 하나 더 집어 들어 우물거리게 될 때와 같은 재미와 중독성이 있다. 달달하고 쫄깃한 꽈배기의 맛이다.

2권 『꽈배기의 멋』에서는 ‘유기농을 넘보지도, 장인 위치를 기웃거리지도 않는’ 꽈배기의 자세가 더 다부지다. ‘우울의 악귀가 당신의 삶에 막 진입하려는 순간, 내 글을 향한 호감이 영험한 부적이 되어 악귀를 몰아내줄 것’이라는 호언장담도 밉지 않다.

“지방에 가서 한다.” 누군가의 말을 빌려 홍상수의 영화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준 그는 ‘누가, 누구와, 어떻게, 하는가’를 두고 벌어지는 세상일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세계 에이즈의 날’을 이틀 앞두고 연 북 콘서트에서 참석자들에게 콘돔(책에서 이하 CD로 표현) 300개를 나눠줘야 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은 기우였다. ‘부부끼리 온 한 중년남성은 은밀한 목소리로 “최 작가님의 성원에 힘입어 오늘 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고, 한 여성 독자는 CD 케이스가 예쁘다며 내 책을 온통 CD로 뒤덮은 채, 제목만 빼꼼히 내놓은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공교롭게도 책 제목이 『능력자』였으니, 난감한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남은 CD는 200여개에 달했는데, 출판사의 건장한 새신랑 두 명이 “이거, 저희가 다 가져가도 됩니까?!”라는 열정적인 질문을 하는 게 아닌가.’ 이 글의 제목은 「CD는 문학행사의 사은품으로 합당한가?」다.

이제부터는 제주도의 한 민박집 주인 이야기. ‘섹스를 지나치게 싫어해서 요즘 투숙객들에게 ‘섹스 금지’라고 벽에 써 붙일 정도’가 된 숙박업소 사장의 사례다. 그는 투숙객이 남긴 사랑의 흔적에 몸서리치며, 민박예약 홈페이지에 ‘커플은 받지 않습니다!’라는 장문의 경고문을 올렸다. 저자는 노기와 흥분이 가득한 그 글을 보고 ‘대학시절 운동권 선배의 대자보를 본 이후로 그토록 진심어린 분노를 본 적이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그는 주인장이 자신의 집에서 섹스를 금한 이유가 방음처리가 안 된다, 작가들이 글을 쓰러 많이 오는데 죄송할 따름이다, 라고 한 것을 전한다. 저자는 누군지는 밝힐 수 없지만, 교성을 들으면 영감이 폭발하는 작가도 있다며, 관광지 숙박업소의 ‘성교 금지’에 대한 입장을 살짝 곁들인다.

최민석은 자칭 ‘거의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과 시집을 몇 권 펴낸 적이 있다. 그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는 ‘아무도 읽지 않을(혹은 읽지 못할) 굉장히 두꺼운, 그러나 최고의 소설을 쓰는 것이다. 그는 즐겁게 살기 위해, 꽈배기처럼 온전한 성격과 선명한 색깔이 담긴 글을 쓴다. 현재 지방 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의 보컬로도 활동하고 있다. / 정연심 기자

『꽈배기의 맛』
최민석 지음 | 북스톤 펴냄 | 272쪽 | 13,800원

『꽈배기의 멋』
최민석 지음 | 북스톤 펴냄 | 288쪽 | 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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