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스튜핏? 그뤠잇?] 『번역을 위한 변명』 쓴 그레고리 라바사 “그래, 문제는 늘 제목이야”
[번역, 스튜핏? 그뤠잇?] 『번역을 위한 변명』 쓴 그레고리 라바사 “그래, 문제는 늘 제목이야”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10.3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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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그레고리 라바사(1922~2016)는 번역가들의 대부, 번역가의 번역가로 불린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영어로 옮기는 번역가 중 최고로 통한다.

『백년 동안의 고독』을 펴낸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라바사를 소개받고 3년을 기다린 끝에 1970년 영역본을 냈다. 마르케스는 “나는 『백년 동안의 고독』 영역본을 내가 쓴 스페인어 원본보다 더 좋아한다”라고 라바사를 극찬했다.

미국 뉴욕주 출신인 그는 2005년 『번역을 위한 변명』을 펴냈다. 다음은 『번역을 위한 변명』 책의 일부를 옮긴다. 번역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스페인어 관련 내용이 많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보편적인 내용을 골랐다.

“이름은 번역자들이 무서워하는 것이고 번역이 왜 불가능한지 예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모든 기독교 이름과 구약성서의 이름들은 성서가 널리 존중되는 곳에서는 현지식 이름을 갖고 있다.

그레고리 라바사 <사진=뉴욕 타임스>

가령 찰스(Charles)는 카를로스(Carlos)가 되고, 존(John)은 후안시토(Juancito)나 조니(Johnny) 등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런 이름들은 오래된 성서적 혹은 고대적 함의를 갖고 있을뿐만 아니라, 그 후 세월이 경과하면서 새로운 의미들을 획득했다.

이름들, 특히 별명들은 거의 언제나 문화적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난봉꾼 찰리, 늦게 오는 조니, 자기만 아는 페드로 등. 용변을 볼 경우 영어에서는 ‘존에게 간다(we go to john)라고 말하지만, 포르투갈어에서는 ’미겔과 말하러 간다’ 또는 ‘미겔에게 간다’라고 한다“ <30쪽>

“나는 언어의 소리는 문화적 표현과 사람들의 진화에서 온다고 주장한다. 오로지 프랑스 사람만이 베를렌의 시구를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방식으로 읊조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런 암송은 그의 모국어가 저장되어 있던 뇌의 어떤 부분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뇌중풍을 맞아 언어 능력을 잃어버린 환자가 외국어로는 여전히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 외국어는 두뇌의 다른 부분에 저장되어 있는 까닭이다(이것은 외국어를 배워야 할 그럴듯한 또 다른 이유가 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가능성에 직면한다.

즉 우리는 외국어를 말할 때 두뇌의 다른 부분에 의존하는 평소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번역자는 두 언어 사이를 왕복하는 일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자아 사이를 원활하게 넘나들어야 제대로 된 번역자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두 개의 자아를 다루는 데서 올지도 모르는 정신분열증의 위기는 온전히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 <38, 39쪽>

“늘 그렇듯이 번역자의 첫 번째 문제는 책 제목이다. 그것은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스페인어 단어 olvido와 관련 있다. 이 원어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해당하는 영단어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단어는 olvidar(잊어버리다)에서 왔는데, 당연히 영어로는 forgetfulness가 대응어이다. 하지만 어울리지 않는다. 이 영단어는 유명한 건망증 심한 교수에게나 어울린다. olvido에는 남들에 의해 잊혀진 상태라는 뉘앙스가 있는데, 거기에 대응하는 영단어를 찾아낼 수 없다.

여기에 가까운 것이 조어인 forgottenness일 것이다. 바로 이것이 제목이 의미하는 바다. 언어심리학자들은 스페인어에서는 평범하고 합리적인 개념이 영어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표현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연구해 봐야 한다.

그래서 불완전한 채로 나온 해결안이 망각(oblivion)이다. 내가 보기에, 여기서 문제점은 망각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누군가를 잊어버렸다는 개인적 뉘앙스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39쪽> / 엄정권 기자

『번역을 위한 변명』  
그레고리 라바사 지음 | 이종인 옮김  | 세종서적 펴냄 | 292쪽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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