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열린연단] "『홍루몽』은 인생과 사랑 노래한 중국 최고 유산이며 대표 문화 키워드로 세계적 고전 반열"…최용철 교수 '『홍루몽』과 변혁의 중국' 강연 요약
[네이버 열린연단] "『홍루몽』은 인생과 사랑 노래한 중국 최고 유산이며 대표 문화 키워드로 세계적 고전 반열"…최용철 교수 '『홍루몽』과 변혁의 중국' 강연 요약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10.3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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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네이버문화재단이 후원하는 문화과학 강연 프로젝트 ‘열린연단 : 문화의 안과 밖’의 10월 21일 순서는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 강연 4섹션 '문학'의 두 번째 강연으로 최용철 고려대 교수의 <홍루몽>과 변혁의 중국을 주제로 진행했다. (한남동 블루스퀘어 3층 북파크 카오스홀)
 
최용철 고려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고려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대만대 중국문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소설연구회 회장, 중국어문연구회 회장, 동아시아비교문화국제회의 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고려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홍루몽의 전파와 번역』 등이 있으며 『붉은 누각의 꿈 :홍루몽 바로보기』 등을 공저했다. 그밖에 조설근, 고악의 『홍루몽 전6권 세트』 등을 공역했다.

최용철 교수는 이날 강연을 통해 "『홍루몽』은 18세기 후반 조설근이라는 실존 인물의 자서전적인 소설로서 주인공이 부귀영화의 가문에서 태어나 호의호식하다가  가문의 몰락과 함께 빈궁한 처지에 빠지면서 사랑의 허망함과 꿈같은 인생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홍루몽』에서는 여성을 거칠고 험악한 남성 사회에서 핍박받는 희생자로 묘사했고 연민과 동정의 눈길로 아름답고 재주있는 여성을 노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홍루몽』은 중국의 고전이며 중국 문화의 백과사전으로서 중국인의 자존심이고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라고 평가했다. 모택동과 시진핑이 극찬하면서 중국 문화의 키워드로 떠오르며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품이 됐다고 말했다. 다음은 강연 요약.

최용철 교수

* 저의 주제는 『홍루몽』, 홍루는 영어로 레드 챔버, 붉은 누각이 라고 하지요. 그림으로 그려보면 이미지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푸른색 사각형 광장에 높이 쌓아올린 붉은색의 아름다운 누각, 그게 바로 오늘 우리가 만들어가는 또 하나의 사연 많은 이야기의 높은 누각이 될 것입니다. 그 높이 솟아오른 누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일까요.

소설의 제목 끝에 꿈 몽(夢) 자가 덧붙어 있는 바람에 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아름다운 귀부인과 대갓집 소녀들이 살아가는 환상적 세계는 그대로 허망한 꿈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제부터 『홍루몽』의 꿈결같이 아름다운 사랑의 세계로 여러분을 안내하여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중국 문학사에서 문학의 대대적인 혁신 과정은 예로부터 여러 차례 진행되었다. 근세 이후만 보더라도 16세기 말 통속문예의 성행과 더불어 나타난 『금병매』와 18세기 말 중국 역사상 최고 극성기에 나타난 『홍루몽』의 등장, 그리고 20세기 초 신문학 시기의 문체혁명을 시작으로 촉발된 문학과 문화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변혁 운동이었던 5·4(五四) 운동을 들 수 있다.

5·4 운동은 반군벌, 반제국주의의 항일 운동으로 시작하여 민족의식을 일깨우며 중국 사회 전반을 대대적으로 혁신하여 현대 중국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여정이 되었다.

5·4 운동은 일본 제국주의에 굴복한 북양 정부의 나약한 대일 협상에 대한 북경 대학생들의 강력한 항의와 시위에서 시작한 것이지만 실질적이고 결정적인 자극을 받은 것은 한국에서 일어난 전 민족의 대대적인 항일 운동이었던 3·1 운동이었다. 불과 두 달 후에 일어난 5·4 운동은 북경대학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그 기저에는 잡지 《신청년》에서 꾸준히 일으킨 신문학 운동과 전 국민 계몽 운동에 따른 자각이 있었다.

5·4 운동이 일어나기 2년 전, 신문학 운동의 실질적인 촉발점은 호적(胡適)의 『문학개량추의(文學改良芻議)』와 노신(魯迅)의 『광인일기(狂人日記)』였다. 각각 《신청년》에 1917년과 1918년에 발표되었다. 하나는 혁신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론으로서, 하나는 혁신의 실질을 보여주는 실천으로서 의식 있는 중국의 젊은이를 깨우치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혁명의 신호탄이었다.

호적은 일반 평민들이 누구나 알기 쉽고 쓰기 쉬운 백화의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제는 문학이 혁명을 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하였다. 그는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의 대표적인 문학이 있게 마련이므로 전통적인 고문을 중심으로 문학의 역사를 보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새롭게 써야 하는 백화문은 결코 허공에서 새로 창조하라는 것이 아니라 고전소설에서 그 모범적인 문체를 찾아내야 한다고 하였다. 『수호전』과 『서유기』, 『홍루몽』과 『유림외사』 등의 명청 장편소설 작품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호적은 이처럼 20세기의 중국 국민들이 언문일치를 실행하면서 새로운 문체로 언어생활을 하도록 계몽하면서 고전 백화문학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수호전』과 『홍루몽』과 같은 작품을 문체의 모델로 제시하였다.

사실 이에 앞서 『홍루몽』은 청 말 이래로 민간 문인들의 폭넓은 관심사로 떠올라 있었다. 작자 조설근(曹雪芹)의 사후 근 30년이 지난 1791년 정위원(程偉元)의 120회 간행본이 처음 나오자 전국의 민간 독자층은 ‘사대기서’에 비견될 만한 명작이 나왔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심지어 그들을 뛰어넘을 만한 새로운 장편소설의 출현에 크게 들떠 있었다. 중국 소설의 발전 단계에서 보면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영웅의 활약을 그려내는 이야기꾼들의 입담 좋은 공연의 결과로 만들어진 강사화본은 원나라를 거치면서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으로 재정리되었고 또 수정 보완을 거쳐 완전한 장편소설이 되어 나타났고 명 대 중기를 지나면서 『서유기』도 완성된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오랜 구전의 시기를 지나 문인의 손을 거쳐 명작으로 탄생한 것이다. 이처럼 축적된 이야기들이 변형되어 만들어진 작품을 강사형 소설이라고 불렀다.

기본적으로 역사 이야기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한 작가의 개인 창작물로서 한 집안의 젊은 남자 와 처첩 간의 이야기, 작은 지방 도시의 파렴치한 장사꾼 서문경을 주인공으로 하는 『금병매』가 홀연 나타났다. 소설사에서는 하나의 기적이었다. 당시 유명한 문인들이 앞다투어 이 책의 출현에 대해 신기한 눈길을 보냈다.

소설적 기교에 대한 감탄과 더불어 노골적인 묘사에 대한 우려도 함께 드러냈다. 곧바로 『수호전』과 『금병매』는 함께 뛰어난 명작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앞선 소설과 달리 세간의 인정 세태를 여실하게 그려냈다고 하여 ‘세정소설’이나 ‘인정 소설’이라고 불렸다. 그 기법과 구상의 일부를 이어받아 수많은 재자가인 소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다. 재주 있는 멋진 남자와 아리따운 여자들의 만남을 그린 것들이었다.

우아하게 그리려고 했지만 구성은 대부분 천편일률적이었다. 작가들은 경험과 창작 기법이 모두 부족하였다. 또 다른 유형으로는 노골적인 음란 소설로 만들어져 독자들의 저속한 취미를 자극하였다. 명 말 이래로 방사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풍조가 문학(소설)과 미술(판화)에서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로 널리 퍼져 있었다. 의식 있는 평론가들은 그 저속함에 고개를 돌렸다.

18세기 후반 건륭 연간에 마침내 『홍루몽』이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으로 등장하였다. 역시 인정 세태를 그렸고 역시 한 가문을 무대로 삼았으며 역시 한 남자를 중심으로 그렸지만 최고의 귀족을 대상으로 삼았고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는 표면적 행위로 넘치는 처첩의 문제를 벗어나 여린 감성을 간직한 소녀들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바꾸었다.

감성은 진솔하였고 묘사는 정밀하였다. 작자는 이 소설이 순전히 스스로의 경험과 삶의 통찰에서 우러나왔으며 오로지 진실에 바탕을 두었음을 거듭 강조하면서 최고의 소설 기법을 구사하였다. 『금병매』가 없었다면 『홍루몽』이 나타날 수 없을 것이라고 평가하지만, 역시 ‘청출어람청어람’이란 말처럼 홀연히 나타난 『홍루몽』은 곧바로 ‘사대기서’ 혹은 ‘사대명저’의 대열에 당당히 진입하였다.

호적은 『홍루몽』의 작가와 창작 의도와 텍스트의 유래와 특징 따위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막막한 상태였다. 그는 마침내 고증에 착수고 작품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조설근이란 인물이 역사상 실존 인물이었음을 증명하는 원매(袁枚)의 『수원시화(隨園詩話)』기록에 이어 그의 만년에 시를 주고 받았던 종실 시인 돈민(敦敏)과 돈성(敦誠)의 시집을 찾아내게 되었던 것이다.

호적은 얼마 뒤에 『지연재중평석두기』로 이름 된 초기 필사본 『갑술본』을 찾아냄으로써 더욱더 정교하게 작가와 작품의 창작 과정을 고찰하였고 마침내 『홍루몽』은 작자 조설근의 자서전적 소설이라고 결론내렸다. 

조설근이 부귀영화의 가문에서 태어나 호의호식하다가  가문의 몰락과 함께 빈궁한 처지에 빠지면서 사랑의 허망함과 꿈같은 인생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면 『홍루몽』은 과연 어떤 책인가. 무엇을 노래하고 어떤 사람을 그려낸 책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여성을 그리고 노래하는 책이다. 그들의 사랑과 꿈을 노래하였다. 젊은 여성, 중국어로는 여아(女兒)라고 표현했다. 아직 혼인하지 않은 순수한 영혼의 소녀를 의미한다. 여성의 아름다운 영혼과 뛰어난 재주를 함께 보여주려고 하였다.

『홍루몽』보다 앞서 나온 『수호전』이나 『금병매』에서는 여성을 비하하고 또한 결말을 더욱 비참하게 묘사했다. 등장하는 여성들은 하나같이 남성을 유혹하여 대사를 그르치도록 하고 남성의 앞길을 막는 음란하고 악독한 여자로만 그려내고 있다. 반금련이 무송을 살인자로 만들고, 염파석이 송강을 살인자로 만들어 결국 양산박으로 입산하게 하는 동기를 제공했다.

서문경의 포악한 행동이나 재물을 후리는 모리배적인 성격도 물론 문제이지만 반금련과 이병아와 춘매는 모두 음란한 악녀의 대표들이었다.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처럼 전통 사상의 좁은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다.

역사상 등장하는 수많은 여자 중에는 나라를 망치고 남자를 패망에 이르게 한 인물이 많다. 달기와 포사는 은나라와 서주를 망하게 하였고 우희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초패왕을 허망하게 무너지게 하였다고 기록했다. 나라가 망하고 영웅이 패한 것을 한 여성에게 책임을 물은 것이다.

그러나 『홍루몽』에서의 여성관은 달랐다. 여성은 거칠고 험악한 남성 사회에서 핍박받는 희생자라는 것이다. 미인은 박명이라는 입장에서 무한한 연민과 동정의 눈길로 아름답고 재주있는 여성을 노래하고 있다.

『홍루몽』의 기본 색깔은 붉은색이다. 책 이름에서도 그렇거니와 등장인물에서도 그들의 별명이나 전생의 초목이나 살고 있는 집이나 방에 붙인 현판에서도 붉은색을 다양하게 배치하여 놓고 있다. 이 책의 여주인공 임대옥은 전생에서 강주선초(絳珠仙草)였다. 서방 영하의 강가 삼생석의 옆에 자라는 신령스러운 선초의 이름이 강주선초였다. 글자대로 해석하면 붉은 구슬이 달려 있는 신선의 풀이다. 최초의 삽화본 정위원 간본에서는 대황산 아래 석두 옆에 작은 풀을 그려 넣었는데 수선화를 닮았다.

붉은색은 여성을 대표하는 색깔이기도 하지만 또한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쁨과 환희의 색깔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기쁜 일에 모두 붉은색을 쓴다. 설날에는 붉은 봉투에 세뱃돈을 주고 붉은 종이에 새해맞이 대련을 써서 붙이고 대보름날에는 붉은 등을 달고 달맞이를 한다.

전통적인 결혼식에서는 온통 붉은색의 옷으로 차려입고 붉은색종이로 쌍희(囍) 자를 오려서 붙여놓고 붉은 보자기를 머리에 쓴 신부는 붉은 비단으로 만든 커다란 꽃다발의 한끝을 잡고 신랑과 마주서서 부부의 맞절을 한다. 하객들은 붉은 봉투에 축의금을 담아서 건넨다.
중국 민속의 애호 관습은 결국 『홍루몽』을 좋아하는 보편적인 심리와 맞아 떨어져서 『홍루몽』의 표지는 종종 붉은색으로 치장하곤 하였다.

모택동(毛澤東)은 고전문학을 좋아하였다. 그중에서도 『홍루몽』에 대해서는 몇 차례나 글을 써서 연구의 방향을 제시한 바도 있었다.

1954년 유평백의 『홍루몽연구』에 대한 대대적인 비판 운동이 전 학계에 진행된 것도 그의 지대한 관심과 방향 제시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하겠다. 문화대혁명 기간 중에 권력을 잡은 강청(江靑)도 이 책을 좋아하였다. 배우 출신이었으니 문예 작품에 호감을 느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역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연구 방향을 주문하였다.

『홍루몽』은 새로운 의미에서 정치 소설이 되었다. 문혁 기간 중에는 붉은색 표지를 한 『모택동어록』과 함께 고전 중에서는 유일하게 『홍루몽』의 휴대와 열람이 허용되어 수많은 지식인들이 시골 농장으로 하방되었을 때 이 책을 가져가 읽게 되었다고 한다.

개혁개방 이후 홍학 전문가가 다른 문학에 비하여 월등하게 많이 쏟아져 나온 것도 이때 내공을 쌓은 학자들이 많았기 때문일 수 있다. 『홍루몽』은 그 자체의 독특한 사연을 지닌 창작 과정과 또 뛰어난 문학성과 예술성뿐만 아니라 현대사의 전파 과정에서도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전 중국인들이 사랑하는 고전으로 자리매김되었던 것이다. 중국에서 인기 있다는 말에 홍(紅) 자를 쓴다. 인기가 치솟으면 주홍(走紅), 인기 절정이면 홍득발자(紅得發紫)라고 한다. 그래저래 『홍루몽』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근대 시기 이후 중국에서는 다들 『홍루몽』에 열광을 했다. 민중에서 시작된 홍학의 열기가 급기야 지식인 계층으로 옮아갔고 사회 지도층 인사들도 『홍루몽』을 언급하지 않는 이가 드물게 되었다. 황중헌(黃遵憲)은 청 말 주일대사관의 참사로서 조선통사로 파견된 김홍집(金弘集)에게 우리나라의 외교정책에 조언하는 『조선책략(朝鮮策略)』을 써준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일본 문인들과 필담을 통한 대화에서 중일 양국 간의 문학을 비교하다가 중국 최고의 작품으로 『홍루몽』을 내세웠다. 일본인은 당연히 자기네 최고(最古)의 장편소설인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를 강조하였다. 11세기 나온 것이니까 18세기의 『홍루몽』으로서도 꼼짝 못할 나이를 갖고 있었지만 황준헌은 개의치 않고 『홍루몽』의 장점을 내세우며 “천지개벽 이
래 고금을 통해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칭찬하였다. 외국인과의 문화 대결이라는 점에서 자국의 작품을 내세우는 과장된 점도 있었겠지만 시문을 위주로 쓰고 있던 정통 문인의 입에서 당시에 소설을 이만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드문 일이었다.

5·4 운동은 전통적인 고전 문화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 운동이었지만 보수적 권위를 말살하고 새로운 세대의 자유주의를 적극 옹호하는 문화 운동이었다. 호적과 노신이 바로 그 기수였다. 그중에서 호적은 미국의 정치 체제와 민주 제도를 신봉하면서 중국의 학술과 문화의 새로운 혁신에 30여 년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제 모택동은 사회주의 신중국의 건설에 있어서 호적의 사상을 가장 큰 장애물로 여겼다. 그는 청년 학자의 연구 논문을 이용하여 호적의 학술사항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는 유평백을 비판하게 하였으며 이어서 본격적으로 호적의 사상과 문화의 흔적을 지우려는 목표를 실천에 옮기고자 하였다. 『홍루몽』은 바로 가장 상징적인 고전문학 작품이었다.

1966년 문화대혁명을 발동한 중국은 대대적인 고전 비판 운동을 시작하였다. 예를 들면 사대명저에 대해 각각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여 『삼국지연의』에 나타나는 권모술수와 사기성 농후한 전술에 대한 비판, 『수호전』에 나타나는 불법과 부정을 자행하는 인물들에 대한 비판, 투항주의에 대한 비판, 『서유기』의 불교나 도교의 황당한 신들에 대한 비판, 『홍루몽』에서
나오는 가족 간의 불륜과 음행에 대한 비판 등을 들 수 있다. 본래 사대기서의 하나인 『금병매』는 제외되고 『홍루몽』을 넣어 사대명저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말하면 당시 대부분의 고전 명저들이 금서가 되어 있는 마당에 모택동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홍루몽』만은 액운을 면하고 널리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되었다.

그가 말한 다음의 구절은 사회주의 이념에 투철한 모택동의 문학관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가 된다.

“나는 『홍루몽』을 적어도 다섯 번을 보았다. …… 나는 이 책을 역사로 본다. 보기 시작할 때는 이야기책(소설)으로 보다가 뒤에는 실제 역사로 알고 읽게 된다. 『홍루몽』 제4회에 대해서는 대부분 별다른 주목을 하지 않지만 나는 그 부분을 이 책의 강령이라고 본다. 또 냉자흥이 영국부를 소개하는 대목이나 도사의 ‘호료가’ 및 진사은의 ‘호료가주’도 주목해야 한다. 제4회 호로묘의 중이 판결하는 사건에서 호관부가 나오는데 네 귀족 가문을 말하고 있다. …… 『홍루몽』의 사대 가문의 계급투쟁은 격렬하여 수십 명의 인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르주아의 지배자는 20여 명인데 (혹자는 33명이라고도 하지만) 나머지 노비들은 300여 명이나 된다. 역사를 말하면서 계급투쟁의 관점으로 보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 (1964년 8월 18일, 북대하(北戴河)에서 철학 연구자들과의 대화)

중국은 최근 세계의 양대 최강국으로 자리잡으면서 자국의 문화를 세계에 전파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공자아카데미를 세계 각지의 대학에 만들어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적극 홍보하는 것은 물론 『홍루몽』을 중국 문화의 아이콘으로 삼아 세계로 진출하고 있다.

중국의 전 총리 원자바오(溫家寶)는 2010년 한국 방문 때 주한중국 문화원에서 한국의 중국어 학습자 및 『홍루몽』 애호가들과 만남을 가졌다. 그의 방문 활동에 ‘홍루몽과 중국 문화’를 제목으로 한중 간의 민간 토론을 주도한 것은 역시 『홍루몽』을 중국 문화의 대표 작품으로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그 자리에서 한국의 『홍루몽』애호가 대표들은 나남출판사의 『홍루몽』완역본(최용철ㆍ고민희 공역)을 증정하고 한국에서의 『홍루몽』전래와 번역에 관하여 토론했다.

시진핑(習近平)은 중국공산당의 당서기와 국가주석으로 취임하면서 중국몽(中國夢)을 국가발전의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대대적인 국민 계몽 운동을 펼쳐나갔다. 당과 국가의 창립을 기념하는 두 개의 백 년을 향후 발전의 목표 지점으로 정하고 부국강병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시진핑의 중국몽은 『홍루몽』에 아이디어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86년 하북(河北)성 석가장(石家莊)시 정정(正定)현의 당서기로 있으면서 『홍루몽』의 무대인 영국부(榮國府)를 청나라 당시의 고전 건축으로 재현하여 CCTV의 「홍루몽」 연속극 촬영세트로 활용한 뒤에 일반에 공개하여 이 작은 지방 도시를 관광 명소로 발전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시진핑은 이후 기회 있을 때 마다 『홍루몽』을 언급하였고 또 『홍루몽』과의 인연을 이어 나갔다. 2014년 프랑스를 방문할 때는 『홍루몽』의 프랑스어 번역자인 당시 이미 99세에 이른 이치화(李治華)를 직접 만나 치하하였고, 2015년 미국을 방문할 때는 『홍루몽』을 가져가 링컨고등학교에 직접 기증하며 중국 문화의 전파에 신경을 쓰기도 하였다.

『홍루몽』은 한마디로 부귀영화를 초개로 여기며 순수하고 아름다운 젊은이의 감성과 정신을 최고로 추구하는 소설이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에서는 중국 문화의 재현 붐에 힘입어 『홍루몽』을 이용한 다양한 돈벌이가 한창이다. 우리가 생각하면 너무나 놀라울 만큼의 아이디어를 총동원하여 문화의 이름 아래 돈을 향한 현대인들의 저속한 집념이 뜻있는 많은 사람들을 질리게 한다.

북경시 서북쪽 식물원에는 조설근이 만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인(旗人) 마을의 한 고택에 ‘조설근기념관’을 조성하여 일찍부터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근년에는 ‘북경조설근학회’가 창립되어 활발한 활동을 하고 또한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서 매년 가을 ‘북경조설근문화예술제’를 개최하여 상업적 문화 행사로 정착되고 있다. 북경시 서남쪽 남채원에 조성된 ‘대관원’은 1987년판 「홍루몽」 연속극을 촬영하기 위해 건립했다가 관광 명소가 된 곳이지만 이에 뒤질세라 상해에서도 자신들만의 ‘상해대관원’을 청포(靑浦)구에 훨씬 크고 넓은 정원을 마련하여 관광지로 홍보하고 있다.

남경은 조설근의 탄생지이고 또한 『홍루몽』 탄생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1992년 오룡담(烏龍潭)에 조설근 석상을 만들어놓고 작은 기념관도 조성하더니 2014년에는 ‘강녕직조(江寧織造)박물관’을 개관하여 남경의 자존심을 지키려 하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홍루몽』은 『홍루몽』이다. 『홍루몽』에 무슨 타이틀을 붙이고 어떤 재해석을 한다고 해도 변함없이 『홍루몽』의 진정과 순수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홍루몽』에 달콤한 수식의 말과 거대한 칭송의 말도 붙이지 말아야 한다. 더 이상 그로 인한 미궁에 빠지지도 말아야 한다.

단순하게 『홍루몽』의 원전으로부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끼고 스스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내어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어야 한다. 『홍루몽』에는 세상의 다양한 사람 이야기, 사랑과 혼인, 가족과 연인, 입세와 출세, 부귀공명과 출가은둔의 다양한 문제가 모두 들어 있다. 깨끗하고 영롱한 영혼의 목소리가 들어 있다.

『홍루몽』은 장편소설이지만 아주 시적인 감성 소설이다. 그것은 중국의 고전이며 중국 문화의 백과사전이다. 중국인의 자존심이고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며 지금도 살아있는 중국 문화의 키워드다. 『홍루몽』은 세계문학에서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세상 어디에서든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의 진솔한 감정에 관한, 인간의 진정한 사랑에 관한 작품이다. 마땅히 우리도 이를 받아들여 우리의 『홍루몽』으로, 나의 『홍루몽』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 엄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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