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는 작가 뒤에서 돕는 조력자… 두려움 없이 작품에 뛰어 든다”
“번역가는 작가 뒤에서 돕는 조력자… 두려움 없이 작품에 뛰어 든다”
  • 정연심 기자
  • 승인 2017.10.3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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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옥 일본문학 번역가

[독서신문] 최근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한국문학을 세계화하기 위해 전문 번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시에 해외작품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가에 대한 수준 높은 역량이 요구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1Q84』, 부산영화제에서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힌 스미노 요루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히가시노 게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오쿠다 히데오 『남쪽으로 튀어!』 등 굵직굵직한 작품을 한국어로 옮기며, 지난 20여년 동안 국내에 일본문학을 알려온 양윤옥 번역가와 서면 인터뷰를 실시했다. 

작품 고를 때 ‘대중과 제대로 소통했는가’ 중시

Q. 무라카미 하루키 『1Q84』,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오쿠다 히데오 『남쪽으로 튀어!』, 스미노 요루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등 인기작가부터 신인작가까지, 정통문학부터 인터넷소설에 이르기까지 번역의 폭이 다양합니다. 작가와 작품을 선정할 때 특별히 중시하는 부분은요.

A. 제가 꽤 다양한 장르를 번역해왔네요. 감회가 새롭네요. 요즘에는 전문 출판에이전시가 원서 출간 예정 단계부터 국내 출판사에 미리 소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번역자가 직접 작품을 선정하는 일은 줄었죠. 한국 출판사에서 번역 여부를 결정하고, 작품에 따라 번역자와 상의하기도 해요. 가장 먼저 관심이 쏠리는 것은 역시 유명작가의 신간입니다. 다만 완성도에 차이가 나기도 하고, 한국 현실과 괴리가 있는 경우도 있어요. 요즘 제가 작품 선정 기준으로 삼는 것은 ‘대중을 위한 구축 방식’입니다. 소설은 당대의 인간과 사회를 담아내는 것이지만, 묵직한 근엄함을 벗고 ‘대중과 제대로 소통 했는가’ 하는 점에 주목합니다. 한국 문단에 새로운 경향을 불어넣는 것도 중요하죠.     

Q. 지난 2005년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 번역으로 일본 고단샤에서 수여하는 ‘노마문예번역상’을 받으셨네요.

A. 노마문예번역상은 일본의 대표적 출판사 고단샤가 자국의 문학을 가장 우수하게 번역해낸 이에게 주는 상이에요. 저는 15회 수상자였죠. 주로 미국, 유럽 쪽에 집중되다가 아시아권에서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 차례가 돌아왔어요. 『일식』을 처음 읽었을 때  신선한 두근거림이 아직도 생각나요. 중세유럽의 수도사 이야기라는 소재도 새로웠고, 특히 일본에서도 ‘어렵다’고 할 만큼 한자의 장중한 아름다움을 되살린 의고체(擬古體) 문장이었어요. 전 제가 두려움 없이 이런 작품에 뛰어든 용감함이랄까 열정이랄까, 그런 것을 항상 가슴속에 품고 있는 번역가였으면 해요. 2015년에 노마문예번역상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권영주 님을 제20회 수상자로 선정했어요. 지난 10년간의 번역물을 총망라하는 작업이라서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죠.

Q. 최근 번역한 스미노 요루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영화로 개봉했네요. 일본콘텐츠가 지닌 어떤 매력이 한국인을 사로잡는 것일까요.

A. 실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원서를 처음 받았을 때 ‘이 제목만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라고 분개했을 정도에요. 그만큼 이 소설을 다 읽고 ‘흉악한 것이 아름다운 것으로 바뀌는 매직’에서 얻는 감동이 컸어요. 신인작가 스미노 요루의 재치와 그 뒤에 숨은 절박함이 대단했죠. 이번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혔다는 뉴스에 혼자 흐뭇해하는 중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경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이어 『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이브』도 영화 제작에 들어갔어요. 문학과 영상은 서로 협업하기 좋은 성질을 갖고 있죠. 눈부시게 발달하는 기술을 채워줄 콘텐츠로서 문학은 큰 역할을 해요.  사회의 키워드를 포착하고 그것을 대중의 시선에 맞게 풀어내는 데 있어서 일본문학은 좀 더 유연한 자세를 가진 게 아닌가 해요. 작가는 자신의 작품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그 빈 공간에 독자를 초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소설 번역은 ‘균형 잡기’… 번역자 역량 길러야
어휘력 부족, 게으름, 생각 끼워 넣기 ‘금기’

Q. 국내 번역문학계에서는 의역이 옳은가, 의역은 오역인가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A. 오역 논란에 대해서는 저 또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항상 등 뒤가 오싹하게 무서운 느낌입니다. 다만 주어진 시간 안에 최선을 다해 성실히 임했다, 라는 실감만은 놓치지 않으려고해요. 번역보다 번역의 오류를 찾아내는 것은 더욱더 수고가 드는 일입니다. 올바른 지적은 최대한 받아들여 수정해나가야죠. 다만 오역 논란은 매번 어중간한 선에서 끝나는듯해 아쉬워요. 그만큼 번역을 둘러싼 주변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소설 한 권은 대략 200자 원고지로 1천매 내외인데, 비용 대비 주어진 시간이 놀랄 만큼 짧습니다. 시간문제가 아닌 경우도 많다는 것은 역시 비난받을 일이지만, 그래도 많은 번역자들이 선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Q. 유독 한국에서만 번역의 정확성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의견도 나오는데요.

A. 소설 번역은 전체적인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역’이란, 말을 바꾸자면 ‘번역자의 역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벗어나서도, 지나치게 벗어나지 못해서도 안 된다고 할까요. 그런 자의성의 폭에 대한 감각이 요구되는 작업이에요. 자의적 감각이란 일정한 기준으로 그 양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논란거리가 되죠. 어학력 부족과 번거로운 확인의 수고를 덜기 위해 대충대충 지어내는 불성실의 방편이 되기도 하고요. 저는 ‘번역자는 구로고(黑子)’라고 자주 말하곤 해요. 구로고는 일본 가부키에서 ‘검은 옷으로 몸을 가리고 눈에 띄지 않게 배우 뒤에서 그 연기를 돕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작가의 창작물에 번역가의 생각이 끼어드는 것은 금기에요. 번역에 대한 논의는 일회성으로 그칠 뿐이라서 좀 더 진지하고 활발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봐요.

 

판매부수별 번역저작권 실행해야 할 때

Q. 지난해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로 영국 맨부커 국제상을 받았을 때,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도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국내에서는 번역문학가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이 미미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A. 하나의 텍스트에 대해 번역자마다 비슷한듯하면서도 매우 다른 번역이 나온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지요. 좋은 번역에 대한 독자의 관심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어요. 창작과 번역은 애초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에 작가에 대한 대우와는 현저한 차이가 나게 마련입니다. 다만 출판계의 번역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판매부수와 연동하는 번역 저작권이 최대한 보장되고 실행되기를 바랍니다.

Q. 문학적 관점에서 ‘좋은 번역’ ‘잘된 번역’이란 어떤 것일까요.

A. 우선 책상 위에 펼쳐진 소설의 한 문장을 예로 들어볼까요. ‘女性 スノ??ボ?ダ?が彼のほうを向いた.’라는 문장입니다. 직역하면 ‘여성 스노보더가 그 쪽을 향했다’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꽤 오래 고민하게 됩니다. ‘여성’이라는 단어가 우선 거슬리지요. 그리고 ‘그(彼)’는 일본한자로는 ‘남자를 가리키는 삼인칭 대명사’지만 우리말로는 ‘삼인칭 대명사’, ‘지시 대명사’, ‘관형사’로 다양하게 쓰입니다. 직역하면 이상한 결과가 나올 우려가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전후의 상황과 인물 설정에 맞게 얼마나 잘 조정해내느냐에 따라 번역의 질이 결정됩니다. 소설은 하나하나의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의 힘으로 스토리를 짜내려가는 것입니다. 매력적인 단어, 문장의 맥락과 리듬, 스토리의 포인트 등을 정확히 포착하는 것이 문학 번역의 요점입니다. 

 

기적과 감동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아껴
번역에 가장 애먹은 『은수저』… 도쿄대 합격자 배출 명작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세 권 번역 중

Q. 가장 마음에 드는 번역작품과 특별히 좋아하는 일본작가는요?

A. 많은 독자가 찾아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에요. 띠지에 적힌 ‘기적과 감동을 추리한다!’라는 카피가 번역하면서 저절로 떠오를 만큼 좋은 소설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재미와 이슈를 동시에 잡는 데 성공한 작가죠. 무라카미 하루키의 숨어있는 명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소설이나 소설가를 뛰어넘어 인생의 지침이 될 만한 역작이고요.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를 비롯한 일련의 작품에 담긴 명랑성에는 빠져들지 않을 수 없어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스미노 요루,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수첩』의 오카자키 다쿠마는 새로운 경향을 지닌 젊은 작가라 주목하고 있죠. 나카 간스케의 『은수저』도 기념할 만한 소설이에요. 일본의 한 사립고에서 3년 동안 국어 교과서 대신 이 책으로 공부했는데, 도쿄대학 합격자를 다수 배출해 화제가 됐어요. 번역에 가장 애를 먹은 소설이기도 하죠. 

Q. 번역 중인 작품과 계획을 들려주세요.

A. 최근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세 권을 번역하고 있어요. 이 작가는 장편이 주류인데 정말 오랜만에 매력적인 단편집을 출간해요. 제목은 아직 미정이지만 『그대 눈동자에 건배』라는 게 유력해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단편 버전이라고 할까, 번역하면서 크게 감동한 작품이라 많은 분께 추천하고 싶어요. 다른 두 권은 겨울 스키장을 무대로 하는 박진감 넘치는 미스터리 시리즈에요. 원제는 『눈보라 체이스』와 『사랑의 곤돌라』죠.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재미있고 유익한 읽을거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제가 번역한 소설이 아마도 250권은 넘은 것 같은데 아직도 원서를 만날 때마다 여전히 새로운 감동을 느껴요. 사람과의 관계마저 소원해진 채, 컴퓨터 앞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죠. 
 
Q. 마지막으로 번역문학 발전을 위한 제언을 해주신다면요. 또 번역문학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A. 번역자는 모국어와 외국어, 두 가지를 전문가 수준으로 마스터해야 하는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문학 번역은 소설가의 문장력에 뒤지지 않을 정도가 되는 것이 바람직해요. 외국어 이전에 우리말로 소설 습작을 거듭하기를 권합니다. 저작권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번역가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정연심 기자

* 이 기사는 격주간 독서신문 1634호(2017년 10월 31일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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