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김진국 “간질병 환자 도스또예프스키에게서 병든 오늘을 읽다”
[작가의 말] 김진국 “간질병 환자 도스또예프스키에게서 병든 오늘을 읽다”
  • 정연심 기자
  • 승인 2017.10.2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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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은 소설집 등 책의 맨 뒤 또는 맨 앞에 실리는 ‘작가의 말’ 또는 ‘책머리에’를 정리해 싣는다. ‘작가의 말’이나 ‘책머리에’는 작가가 글을 쓰게 된 동기나 배경 또는 소회를 담고 있어 독자들에겐 작품을 이해하거나 작가 내면에 다가가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에 독서신문은 ‘작가의 말’이나 ‘책머리에’를 본래 의미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발췌 또는 정리해 싣는다. 해외 작가의 경우 ‘옮긴이의 말’로 가름할 수도 있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그런데 요즘 정신병을 앓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도 나도,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정신병을 앓고 있고 또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잖아요?”

도스또예프스키의 미완성 유고작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화의 한 토막이다. 19세기 러시아의 사회 분위기가 아니라 21세기 한국 사회의 집단 병리 현상을 설명하는 말이라 해도 크게 어색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번쯤은 “온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라고 중얼거려 본 경험과 “미쳐도 더럽게 미친 놈”이란 욕설을 속으로 삼켜 본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엽기적인 사건·사고를 맞닥뜨리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도스또예프스키는 러시아 근대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근대의 행렬에서는 낙오자였고 이방인이었으며, 병자였다. 병 자체보다는, 쉽사리 곁을 내주지 않으려는 세상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이 더 아팠을 간질병 환자였다. 그래서 자기 시대에 절망했다. 절망했던 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혐오와 적의가 가득하다.

도스또예프스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는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인물을 찾기가 어렵다. 대부분 미쳤든지, 바보처럼 멍청하든지, 간질병 같은 중병이 들었든지, 그도 아니면 악마나 야수에 비길 정도의 잔혹한 범죄자들이다. 이런 인물의 병든 몸과 마음, 영혼을 지루할 정도로 장황하게, 속속들이 파헤쳐 놓은 것이 그의 소설이다.

그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정신병리학 교과서를 읽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나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는 광기와 악마나 야수, 바보 같은 분신들을 만나게 된다. 불편하고 짜증이 나고, 불쾌하기도 하지만 도스또예프스키를 통해 나 역시 병든 시대를 살아가는 병든 인간이며, 무력하고 죄 많은 인간임을 확인하게 된다.

어리석음이 끼어들 틈이 없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아름다움조차 시장에서 거래되는 시장만능 시대에 도스또예프스끼의 아름다움과 어리석음이 한량없이 초라하고 시시하고 무기력해보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병든 한 시대를 헤쳐나가게 하는 하나의 처방일 수 있다. / 정리=정연심 기자

『어리석음의 미학』
김진국 지음 │ 시간여행 펴냄 │ 312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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