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넌 어느 ★에서 왔니?”
“걱정, 넌 어느 ★에서 왔니?”
  • 정연심 기자
  • 승인 2017.10.26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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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술자리에서 동료들에게 취중에 내뱉은 말이 후회돼. 자정 넘어 집으로 가는 택시 안, 내일 출근은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네. 아침을 알리는 알람소리가 들려. 이렇게 계속 알람을 꺼대다간 또 지각이겠지, 하는 걱정에 화들짝 놀라 눈을 뜨네. 버스가 저번처럼 막히면 어떻게 하지? 오늘 늦으면 이번 달 세 번째 지각인데, 이러다가 회사 잘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네. 버스에서 내린 뒤 혹시 넘어질까 걱정하며 달리고 달려 회사에 출근했지만 날 반기는 것은 숙취와 밀린 일들. 오늘 일은 제대로 다 처리할 수 있을까, 점심은 누구랑 먹을까 또 걱정이네….’

어제 일을 걱정하고, 오늘 일을 걱정하고, 다가올 내일 일을 또 걱정하는 인간들.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낳고, 마침내 눈덩이처럼 불어나 인간을 그 속에서 허덕이게 만든다.

이뿐인가. 우리는 10년 후, 20년 후를 미리 염려하고, 노년의 삶을 걱정한다. 누군가는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나, 개로 태어나려나… 저 인간을 다음 세상에서 또 만나면 어쩌지…’ 사후세계까지 폭넓게 걱정한다.

우환에 살고, 안락에 죽는 것이 인생이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티베트 속담도 걱정병 환자를 치료하지는 못한다. ‘시대의 질병’인 걱정, 우리의 친구인가, 괴물인가.

이 책은 ‘질병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신경 쓰이고 불편을 초래하는’ 걱정에 대해 다룬다. 걱정의 홍수 속에 사는 현대인을 위해 걱정이란 것이 대체 무엇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방법을 알려준다.

원시인도 걱정을 했다. 맹수가 언제 덮칠지, 먹이를 구할 수 있을지 불안했다. 그러나 원시인의 걱정은 현대인의 일상적이고 정신적인 의미와는 다르다. 책에서는 ‘걱정하다(to worry)’라는 동사가 빅토리아시대 뒤부터 쓰였다고 설명한다. 그 이전까지 걱정이란 단어는 사람이나 동물을 질식사시키거나 목을 조른다는 뜻이었으며, 나중에 가서는 괴롭힌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19세기 중반 들어서야 걱정은 ‘초조해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20세기 탄생한 대도시는 ‘걱정꾼’을 기계처럼 양산했다. 북적이고 빠른, 나날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초조해질 기회가 많았다.

전쟁은 걱정을 만성화했다. 1, 2차 세계대전은 현대인의 불안을 키웠고, 마침내 걱정을 가정으로 들여놨다. ‘전쟁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불확실, 부정확, 통신의 어려움, 위험, 파괴… 전쟁터에는 역병처럼 걱정이 창궐했으며, 모든 것이 걱정으로 귀결됐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유행한 군가 ‘근심은 싸 넣어라’는 ‘근심은 싸 넣어라, 낡은 배낭에, 웃어라, 웃어둬라, 활짝 웃어라, 악마가 담뱃불에 불붙여줘도, 웃어라, 병사들아, 그게 답이다. 걱정은 해보았자 무엇에 쓰나? 그러할 가치일랑 결코 없으니, 근심은 싸 넣어라, 낡은 배낭에, 웃어라, 웃어둬라, 활짝 웃어라’고 부추긴다. 

작가들은 걱정과 불안의 시대를 내밀하게 포착했다.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는 초조한 내면의 삶을 지닌 현대판 걱정꾼을 그렸다.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스』에서 걱정하는 남자를 그리며 독자를 걱정의 세계로 초대했다.

걱정은 의사에게도, 자기계발서 작가들에게도 환영받는 질병이었다. 걱정은 현대인의 정신질환 중 하나로 등극했고, 대처할 방법이 연구됐다. 자기계발서 작가들은 걱정을 진단하고 해결하는 법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제안했다.

이 책은 걱정이 불안이나 우울 같은 실제 질환과 다르므로, 정신의학이나 자기계발서가 소개하는 치료법으로 절대 고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걱정은 질병이 아닌, 심리상태이기 때문에 치료법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걱정은 개인 차원의 문제여서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반면 현대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선택의 기회가 동시에 증가해 걱정이 더욱 번성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에 그는 걱정을 치료대상으로 여기기보다 친구처럼 대해보는 건 어떨까 제안한다. 걱정은 인간의 약점일 수 있지만,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는 것. 나아가 걱정을 제거하려 애쓰기보다 예술 같은 보조수단을 활용해 적절히 관리하면, 걱정의 원인인 부정적 사고와 비판정신을 가치 있는 자산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고 전한다. 걱정꾼의 정신 분석력이 살아가는 데 유리하게 쓰일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크고 작은 걱정거리를 안고 사는 현대인에게 한 가닥 희망의 빛을 제시하고 있다.
 

『걱정에 대하여』
프랜시스 오고먼 지음 | 박중서 옮김 | 문예출판사 펴냄 | 308쪽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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