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열린연단] "『겐지 모노가타리』는 살아있는 일본의 과거이자 동아시아 문화교류 텍스트"…이미숙 연구원 '겐지 모노가타리와 일본 문학의 원형' 강연 요약
[네이버 열린연단] "『겐지 모노가타리』는 살아있는 일본의 과거이자 동아시아 문화교류 텍스트"…이미숙 연구원 '겐지 모노가타리와 일본 문학의 원형' 강연 요약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10.23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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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네이버문화재단이 후원하는 문화과학 강연 프로젝트 ‘열린연단 : 문화의 안과 밖’의 10월 14일 순서는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 강연 4섹션 '문학'의 첫 번째 강연으로 이미숙 서울대 연구원의 <겐지 모노가타리>와 일본 문학의 원형을 주제로 강연했다. (한남동 블루스퀘어 3층 북파크 카오스홀)

이미숙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원은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일본어과 석사를, 일본 도호쿠 대학 문학연구과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대 대우교수와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원으로 있다. 저서로는 『나는 뭐란 말인가 : 가게로 일기의 세계』 등이 있으며 『가게로 일기 : 아지랑이 같은 내 인생』, 『겐지 모노가타리 1』,  『겐지 모노가타리 2』 등을 번역했다. 2011년 제5회 해석학회상(일본)을 수상했다.

이날 강연에서 이미숙 연구원은 우리나라에는 널리 소개되지 않은 『겐지 모노가타리』는 사실 해외에선 깊이 연구되고 있다며, 일본 문학의 원형이며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중요한 텍스트라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 『겐지 모노가타리』는 일본 고대의 문화생활과 남녀 관계를 통해 일본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는 텍스트이며 고대 일본인의 사상과 윤리를 살펴볼 수 있는 텍스트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강연 요약.
 
* ‘모노’(物)와 ‘가타리’(語り)의 합성어인 ‘모노가타리’(物語)라는 표현에 대해 일본어 사전에서는 그 첫째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 또는 그 내용. 잡담. 담화”, 둘째 의미를 “작자의 견문 또는 상상을 기초로 하여 인물ㆍ사건에 관하여 서술한 산문 문학작품. 협의로는 헤이안 시대로부터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까지의 작품을 이른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문학 양식으로서의 그 둘째 의미를 오늘날 한국에서는 흔히 ‘이야기’( 『겐지 이야기 』), 서양에서는‘Tale’(『The Tale of Genji』)로 번역하고 있지만 ‘모노가타리’를 일본 고유의 산문문학 양식으로 보아 발음 그대로 표기하도록 한다.

『겐지 모노가타리』는 성립 이래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다양하게 향유되어왔지만, 『사라시나 일기』(更級日記, 11세기 중엽)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성립 직후부터 여성들의 애독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라시나 일기』의 작자 스가와라 다카스에의 딸(菅原孝標女, 1008~?)은 『겐지 모노가타리』의 열렬한 독자였다. 지방관인 아버지를 따라 임지로 내려가 소녀 시절을 보낸 그녀는 “교토에 빨리 올라가게 해주셔서 그곳에 잔뜩 있다는 모노가타리를 전부 보여주십시오”라고 부처에게 절하며 빌 정도로 모노가타리에 열중해 있었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교토로 상경하여 『겐지 모노가타리』의 여주인공인 무라사키노우에(紫の上)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나서는 전권을 통독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비는 모습, 어렵게 구한 『겐지 모노가타리』를 방안의 칸막이 안에 틀어박혀 상자 안에서 첫째 권부터 꺼내 엎드린 채 읽어가는 기쁨을 “황후 자리도 부럽지 않다”고 표현하는 기술에서, 허구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현실의 스산함을 잊고자 하는 여성 독자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겐지 모노가타리』는 11세기 초에 성립된 이래 1000년의 시간을 거치며 일본 내 시대 상황에 맞게 당대의 문화에 차용되고 접목되며 향유되고 20세기 이후에는 세계 각국에서 번역되어 소개되면서, 선행하는 일본 문학의 유산을 이어받은 일본 문학의 정수(精髓)이자 최고봉, 나아가 후대 일본 산문문학의 규범이자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이유로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일본 문학의 ‘원형’(原型)이라 할 수 있는 요소를 작품 속에 구현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 ‘보편성’이란 신분에 관계없이 불완전하고 유한한 인간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과 내면 풍경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처신해야 하는지를 형상화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일본에서 모노가타리라고 하면 『겐지 모노가타리』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질 만큼 『겐지 모노가타리』는 앞서 나온 일본 문학의 성격을 계승하면서도 타 문화를 받아들여 모노가타리의 새 경지를 개척하였고, 나아가 모노가타리뿐만 아니라 이후 일본 문학의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겐지 모노가타리』라는 작품 속에 일본 문학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요소, 즉 일본 문학의 특질이라 할 수 있는 요소가 잘 구현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숙 연구원

2008년 일본에서는 일 년 내내 ‘겐지 모노가타리 천년기(千年紀)’를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개최되었 다. 『겐지 모노가타리 』가 언제 성립되었는지 정확한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1008년경에 성립되었다고 보는 근거는 『무라사키시키부 일기』(紫式部日記, 1010년경 성립)에 실린 기술에 연유한다.

『겐지 모노가타리』는 텍스트 표층의 주인공이 남성이기 때문에 종래의 연구는 남성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어 남성이 권력을 획득해가는 이야기, 종교에 귀의하게 되는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많이 연구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호색한(好色漢)인 남성이 많은 여성들과 관계를맺어가는 분방한 연애 이야기로 이해되어왔다.

즉 ‘이로고노미’(色好み)13인 히카루겐지가 여러 여성들과 관계를 맺으며 사계절 저택인 로쿠조노인(六條院)으로 상징되는 영화를 이루고 후지쓰보 중궁과의 사이에 태어난 친아들 레이제이 천황(冷泉天皇)의 배려로 준태상천황(准太上天皇) 자리에 오른 뒤 만년에는 불교의 도심(道心)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겐지 모노가타리』에 그려진 여성들의 이야기는 자의식 강한 여성들이 자신의 존재 기반 속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모색해나가는지, 즉 여성의 삶에 관한 문제를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와 결혼을 매개로 해 풀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여성들의 이야기가 지향하는 지점은 물론 히카루겐지와 가오루를 중심으로 하는 남성 이야기가 최종적으로 다다르는 ‘슬프고 무상한 인생’, ‘헛되고 우울한 인생’이라는 인식과도 통한다.

하지만 여성들의 이야기 속에는 남성과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인간 본연의 삶의 괴로움에 ‘여성’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괴로움이 더해진 이중적인 ‘삶의 괴로움’이 구체적인 삶 속에 녹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 특히 여성의 삶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겐지 모노가타리』야말로 여성 작가가 그 시대 여성의 삶의 문제에 깊이 천착한 ‘여성 문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907년에 당이 멸망한 뒤 발해와 통일신라가 멸망함으로써, 일본은 교류하던 동아시아 나라들과 교섭이 끊어지게 되었다. 외래문화의 유입이 끊어지면서 귀족 문화는 일본인의 일상생활에 바탕을 둔 일본적인 특질이 농후한 이른바 ‘국풍문화’(國風文化)를 꽃피우게 되었다.

일본적인 문화의 발달은 가나 문자의 발달이 전제가 된 문예의 발달로 대표된다. 외래 문자인 한자로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만 가나 문자의 발달로 그 부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나 일본인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내적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텍스트가 일본 문학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겐지 모노가타리』이다.

『겐지 모노가타리』는 11세기 초 어느 날 갑자기 일본의 헤이안 경(교토)에서 아무런 바탕 없이 등장한 작품이 아니다. 『겐지 모노가타리』라는 한 작품에는 내적으로는 그 이전의 일본문학의 전통이 담겨 있으며, 외적으로는 일본 문명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충돌하며 일본 나름의 문화를 형성해나가는 데 영향을 미쳤던 중국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문명과의 교류가 존재하였다.

일본 내적인 문학 전통 속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와카(和歌)와 『이세 모노가타리』와 『가게로 일기』라는 앞서 등장한 산문문학이다. 헤이안 시대에 와카는 단순한 문예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생활 속에서 배태되는 심정과 사유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매개체였다.

특히 연애나 사교의 장에서 와카는 없어서는 안 되는 수단이었다. 등장인물들의 마음속 생각을 표현하고 남녀 간의 마음을 서로 주고받는 수단으로 사용된 와카는 산문과 융합하여 지문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들면서 『겐지 모노가타리』의 문체를 형성하였다.

『겐지 모노가타리』는 일본 헤이안 시대의 정치, 경제, 생활 등 문화가 집약된 고전 텍스트로서 무사정권 이전의 일본 문화의 양상을 고찰할 수 있는 텍스트이자 11세기 이전의 동아시아 문화의 교류 양상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대표적 고소설이다.

따라서 『겐지 모노가타리』에 나타난 동아시아 문화의 수용 양상을 고찰하는 것은 외래문화를 도입하면서 그 속에서 독자적인 문화 세계를 구축해가는 일본 문화 형성의 실제를 명확히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당나라가 세워진 뒤 얼마 지나지 않은 630년부터 당으로 파견되기 시작한 견당사는 894년의 파견계획이 실현되지 못함으로써 사실상 헤이안 시대 초기인 838년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907년 당나라도 멸망함으로써 그 이전까지의 당풍문화(唐風文化)가 세력을 잃고 일본 나름의 국풍문화(國風文化)가 꽃을 피우게 되었다. 20여 차례에 걸쳐 파견된 견당사는 중국의 선진 문명을 받아들여 일본 나름의 고유문화를 구축해나가는 직접적인 통로이자 수단이었다. 그 대표적인 문화 교류의 예가 『겐지 모노가타리』이다.

이러한 문화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겐지 모노가타리』는 19세기 말부터 외국어로 번역되기 시작하여 현재 전 세계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연구되고 있다. 일례로 필자가 참석하여 『겐지 모노가타리』의 한국어 역에 관해 발표한, 2017년 3월 23~25일 파리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서는 한국어 역뿐만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체코어 등의 『겐지 모노가타리』 번역에 관해서도 발표와 논의가 이루어졌다.

『겐지 모노가타리』는 일본에서 10세기 이후 가나 문자가 여성들의 표현 수단으로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내줌으로써 일본 문자 문화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텍스트이자 종교 문화생활과 남녀 관계를 통해 일본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는 텍스트, 고대 일본인의 사상과 윤리를 살펴볼 수 있는 텍스트이자 외래문화를 수용하면서도 그 속에서 독자적인 문화세계를 구축해가는 일본의 문화 수용 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텍스트라는 점에서 일본 문화의
연원(淵源)을 고찰할 수 있는 ‘문명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 엄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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