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삶에는 지름길도 왕도도 없다. 각자의 길을 선택하고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다만 사회가 진화할수록 현대인들에게 이 길은 점점 더 복잡한 미로로 변했다. 차고 넘치는 선택과 가능성이 외려 혼란이 됐다. 길이 너무 많은 시대, 더 현명한 길잡이가 되기 위해 ‘길의 의미’에 주목한 책이 있다. 미래엔 와이즈베리가 출간한 『온 트레일스(On trails)』다.
『온 트레일스』는 ‘GQ’, ‘뉴욕 매거진’ 등에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 로버트 무어가 7년간의 대장정 속에서 깨달은 진정한 길의 본질과 의미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3200km 애팔래치아 트레일 하이킹부터 아이슬란드-모로코까지 다년간 길 위의 방랑자로 살았던 자신의 경험과 통찰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여기에 수억 년 전 생명체가 남긴 길부터 곤충·동물의 길, 고속도로와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길이 갖는 의미를 과학, 역사, 심리학 등 다양한 맥락에서 심도 있게 풀어냈다.
책은 무엇보다 ‘길’을 걷는 생명체들의 욕망에 주목한다. 저자와 생흔학자, 곤충학자, 사냥꾼, 스루하이커 등 많은 전문가가 함께 생명체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얻은 결론 중 하나는 고대 생물체부터 개미가 페로몬을 뿌려 만든 먹이 통로, 대를 거듭한 코끼리의 이동 경로, 인간이 만든 하이킹 트레일까지 모든 길은 ‘안정감’에 대한 욕망의 발현이자 목표와 목표를 가장 손쉽게 잇기 위한 소통과 지혜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즉, 길은 복잡성 속에서 단순함과 질서, 안정감을 찾아가는 과정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인 셈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저자는 모든 이와 연결되려는 현대인의 욕망은 ‘길’의 복잡성을 야기했다고 설명한다. 바쁜 삶을 벗어나 여유를 즐기기 위해 설계된 하이킹 트레일은 안내가 필요한 복잡한 미로가 됐다. 인터넷은 정보가 얽히고설킨 길이 됐고, 소통의 공간이었던 길에는 효용성과 경제성만이 남았다. 그는 이런 시대적 흐름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공감하면서도, 우리에게 길의 본질적 의미를 되새겨 볼 것을 주문한다. 삶의 의미와 가치를 천천히 음미하며 걸을 때, 비로소 우리 발밑에 놓인 길의 지혜를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 윤효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