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열린연단] "역사를 바꾼 총·균·쇠, 그 바탕엔 지리적 환경의 차이가"…김서형 교수 '재레드 다이아몬드, 역사 이해의 새 방법' 강연 요약
[네이버 열린연단] "역사를 바꾼 총·균·쇠, 그 바탕엔 지리적 환경의 차이가"…김서형 교수 '재레드 다이아몬드, 역사 이해의 새 방법' 강연 요약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10.13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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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네이버문화재단이 후원하는 문화과학 강연 프로젝트 ‘열린연단 : 문화의 안과 밖’의 9월 30일 순서는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 강연 3섹션 '정치/경제'의 마지막 강연으로 김서형 인하대 연구교수의 '재레드 다이아몬드, 역사 이해의 새 방법'을 주제로 진행됐다. (한남동 블루스퀘어 3층 북파크 카오스홀)

김서형 인하대 연구교수는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미국 질병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지구사연구소 연구교수 등을 지냈고 현재 인하대 연구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농경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초등학생을 위한 빅히스토리』, 『김서형의 빅히스토리 Fe연대기』 등이 있고 그밖에 앨프리드 W. 크로스비의 『인류 최대의 재앙, 1918년 인플루엔자』를 번역하고 데이비드 크리스천의 『세계사의 새로운 대안, 거대사』, 잭 골드스톤의 『왜 유럽인가』 등을 공역했다.

김 교수는 이날 강연을 통해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현대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면서 최초의 인류가 출현한 아프리카가 왜 유럽처럼 발전하지 못했나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고 서두에서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다이아몬드는 민족이나 국가마다 서로 다른 정도의 발전과 역사를 가지게 된 것이 지금까지 많은 역사학자들이 주장해왔던 것처럼 생물학적 혹은 유전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지리적 환경의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강연 요약.

김서형 인하대 연구교수

* 침팬지와 인류의 공통 조상, 그리고 직립보행과 도구를 제작했던 최초의 인류들은 모두 아프리카에서 출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아프리카의 모습은 어떤가요?

역사학자들은 1960년을 ‘아프리카의 해’라고 부릅니다. 유럽의 일부 국가들이 원료와 노동력, 그리고 시장을 얻기 위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았던 20세기 초에 아프리카의 독립 국가는 2개뿐이었습니다. 라이베리아와 에티오피아입니다. 이후 1957년 가나가 독립한 이후 점차 많은 국가들이 유럽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오늘날 아프리카의 독립 국가는 53개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상황은 독립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정치적 부패가 만연하고,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합니다. 위생과 공중 보건이 열악하기 때문에 치명적인 전염병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미국 생리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현대 사회의 불평등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비단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유럽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여러 지역이나 국가들은 왜 유럽의 여러 국가들처럼 발전하지 못했을까요?

그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던 오스트레일리아 북쪽에 위치한 뉴기니를 중심으로 이와 같은 의문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인류 전체의 역사로 확대시키고자 했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 속에서 다이아몬드는 민족이나 국가마다 서로 다른 정도의 발전과 역사를 가지게 된 것이 지금까지 많은 역사학자들이 주장해왔던 것처럼 생물학적 혹은 유전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지리적 환경의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환경의 차이가 기술과 정치, 경제, 그리고 문화의 차이를 야기하고, 그 결과 심각한 불균형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주장은 유럽 일부 국가들의 역사적 경험을 강조했던 기존의 세계사 교육 및 서술에 일침을 가하는 것이었습니다.

환경 및 그로부터 기인하는 생활 방식의 차이는 폴리네시아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나타났습니다.

다이아몬드는 남아메리카가 스페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과정을 환경 및 그로부터 기인하는 생활 방식의 차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습니다.

1532년 11월 16일,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는 잉카 제국 황제 아타우알파(Atahualpa)를 인질로 삼았습니다. 그는 엄청나게 큰 방을 채울 만큼의 황금을 몸값으로 받고, 약속과는 달리 아타우알파를 처형했습니다. 인질로 잡혔을 때 아타우알파는 8만 명 이상의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반면, 피사로는 200명이 채 되지 않는 병사들을 데리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에 대해 많은 역사학자들은 갑옷이나 화승총, 말 등과 같은 스페인의 무기가 돌이나 곤봉, 물매 등 잉카 제국의 무기보다 훨씬 우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왔습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와 같은 기술적 우월성과 더불어 종교적 우월성도 함께 강조했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무기들이 스페인의 승리에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잉카 제국의 몰락과 식민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바로 질병이었습니다. 당시 스페인을 비롯해 아프로-유라시아에 만연했던 질병 가운데 한 가지가 천연두였습니다.

따라서 아프로-유라시아에 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잉카 제국을 비롯한 아메리카에서 천연두는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전염병이었습니다. 스페인 군대가 도착한 이후 천연두는 잉카 제국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이 없던 수많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사망했습니다.

결국 잉카 제국은 소수의 스페인 군대에게 쉽게 정복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아메리카에는 천연두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다이아몬드는 이에 대한 대답을 농경의 역사 속에서 찾고 있습니다. 흔히왜 사람들은 수렵채집 대신 농경을 선택했을까요? 다이아몬드는 수렵채집과 농경이 서로 경쟁하는 ‘대안적 방식’이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야생 먹거리가 감소하고, 작물화시킬 수 있는 야생 식물들이 증가하면서 이를 채집하거나 가공, 저장하는 기술들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농경의 시작과 더불어 인구가 증가하고, 식량 생산 역시 증가하면서 수렵채집인들보다 농경민들의 인구 밀도가 훨씬 높아졌습니다.

결국 수렵채집인들은 농경민들에 의해 쫓겨나거나 농경을 선택해야만 생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지역들에서 이와 같은 과정들이 발생했고, 결국 수렵채집보다 농경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수가 훨씬 많아졌습니다.

다이아몬드는 작물화와 가축화가 가장 먼저 발생했던 곳이 서남아시아라고 주장합니다. 많은 역사학자들 역시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시리아, 그리고 이집트에 걸친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에서 농경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이아몬드는 소수의 작물들이 길들여진 지역에서 도시와 문자, 제국, 그리고 문명이 먼저 시작되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작물화와 가축화가 발생했던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도시와 국가, 그리고 제국이 가장 먼저 발생했던 지역입니다.

그는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농경이 시작될 수 있었던 조건으로 지리적 환경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이 지중해성 기후에 해당하는 데다가 고도의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길들일 수 있었던 동물과 식물의 다양한 종들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지리적 환경의 차이가 문명과 역사의 발전 속도에 영향을 미쳤던 또 다른 사례로는 아메리카를 들 수 있습니다. 약 1만 4000년 전에 얼어붙은 베링 해협을 건너 아메리카로 이동했던 호모 사피엔스는 옥수수와 누에콩, 그리고 호박과 같은 토종 작물들을 재배했습니다.

하지만 아메리카에도 길들일 수 있는 대형 포유류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인류 역사 속에서 가축은 고기와 유제품, 알, 가죽, 털 및 운송 수단을 끄는 동력을 제공해왔습니다. 그리고 피사로의 잉카 제국 정복에서 살펴본 것처럼 치명적인 전염병의 근원이기도 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대형 포유류 가운데 14종만이 가축화되었는데, 이는 인간이 동일한 종 가운데 인간에게 더 유용한 개체를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한번 인간에게 선택되어 가축화된 종들은 크기가 더 커졌고, 인간에게 더 많은 것을 제공하였습니다.

양이나 소, 말, 염소, 돼지 등의 동물을 가축화시켰던 아프로-유라시아와 달리 아메리카에 살고 있던 동물은 라마와 알파카뿐이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가축화된 동물의 야생 조상들이 전 지구적으로 균일하게 분포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리적 환경의 차이 때문에 야생 조상의 분포가 달랐고, 이와 같은 점이 아메리카에서 가축화가 발생하지 않았던 근본적인 이유라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가 강조하는 지리적 환경의 차이는 대륙의 축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라시아는 동서로 뻗어 있는 반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대륙의 축은 작물이나 가축의 전파 속도뿐만 아니라 문자를 비롯해 도시와 국가, 그리고 제국의 탄생에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의 전파 속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라시아의 경우, 기원전 7000년경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재배된 작물들아 1000~2000년 이내에 인접한 지역들로 급속하게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메리카의 경우, 멕시코에서 옥수수가 작물화된 시기가 기원전 3500년경이었지만 미국 동부 지역에서 옥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후 900년경입니다. 동서를 축으로 삼는 지역과 남북을 축으로 삼는 지역들에서 작물이 확산되는 속도는 이와 같이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륙의 축은 농경의 부산물로 발생했던 문자와 도구, 무기 등이 확산되는 속도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이아몬드는 누군가는 지배하고, 누군가는 지배를 받는 불균형적인 관계가 근본적으로 농경의 시작 및 발달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작물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고, 그 결과 전문 계층이 발생하면서 발달된 무기를 가진 군대와 병사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정복 전쟁을 통해 다른 지역을 지배했고, 이와 같은 현상이 반복됨에 따라 지배하는 사람과 지배받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불평등하고 불균형적인 관계 형성에 보다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은 바로 가축화였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동물로부터 비롯된 질병 때문에 불평등한 관계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 속에서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던 질병으로는 인플루엔자, 천연두, 홍역, 결핵, 말라리아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질병들의 공통점은 바로 동물의 질병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점입니다.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와 비교했을 때 가축화시킬 수 있었던 동물들이 훨씬 많았던 유라시아에서 동물로부터 발생하는 질병은 매우 다양했습니다.

수렵채집 시기에는 질병이 발생해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 그 영향력이 치명적이지 않았던 반면, 농경이 시작되고 정착 생활을 하면서 질병이 미치는 영향력이 더욱 커졌습니다.

특히 야생 동물들을 인간의 생활공간 속으로 데려와 길들이면서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질병들이 발생했습니다. 이와 같은 질병들이 발생하면 인간의 신체는 면역 체계를 가동시킵니다. 그리고 특정 세균에 대항하는 항체를 형성한 이후에는 다시 질병이 발생하더라도 그 치명성은 이전보다 현저하게 낮아집니다.

뿐만 아니라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는 적은 지역과 비교했을 때 상호작용이 훨씬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다양한 질병들이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게 됩니다. 결국 다이아몬드의 말처럼 대중성 질병들은 반드시 대규모의 조밀한 인구 집단이 형성되어야만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실크로드를 따라 교역된 것은 비단 이와 같은 상품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치명적인 전염병도 함께 이동했습니다. 165년 로마 제국에서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의학적 수준이나 지식으로는 어떤 전염병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은 이 전염병을 역병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전염병이 천연두라고 생각합니다. 165년에 발생했던 천연두가 매우 치명적이었던 이유는 아마도 로마인들이 처음 접했던 전염병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천연두는 소와 인간에게 공통으로 발생했던 전염병입니다.

수렵채집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농경의 시작 특히 가축화 이후 등장한 이와 같은 질병들은 초기의 인류 사회에 매우 치명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라시아인들은 이와 같은 질병에 대해 점차 면역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상은 오랫동안 아프로-유라시아와 접촉하지 않았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유럽인들과 조우했을 때 그야말로 끔찍한 재난을 야기했습니다.

아즈텍인들은 쉽게 스페인에 점령당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역사학자들이 믿었던 것처럼 스페인의 우월한 무기나 종교 때문이 아니라 바로 질병 때문이었습니다.

스페인 군대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유라시아에 만연했던 질병 가운데 하나인 천연두와 함께 아메리카로 이동했습니다. 이들에게는 농경이 시작된 이후 수천 년 동안 인간과 함께 존재했던 익숙한 질병이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천연두는 처음 접하는 질병이었습니다.

천연두로 인해 아즈텍 인구가 10분의 1로 감소했습니다. 그야말로 끔찍한 재난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유럽인들과 함께 이동했던 질병은 북아메리카에서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미시시피 강 유역에 살았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스페인인들로부터 전파된 질병 때문에 거의 절멸했습니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15세기 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이후 한 세기 이내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90% 이상이 절멸했습니다. 바로 질병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역사학자들은 14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유럽에서 나타났던 예술 및 사회 개혁 운동인 르네상스를 고대 그리스 및 로마 문화를 부흥시키려는 유럽인들의 노력으로 설명해왔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을 비롯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이 담긴 서적들은 그리스의 몰락 이후 암흑 시기를 거치면서 오랫동안 잊혔습니다. 이러한 서적들을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하고 필사했던 것이 바로 이슬람 사람들입니다.

751년 인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나라와 이슬람 제국 사이에서 벌어진 탈라스 전투에서 이슬람 제국이 승리했고, 이들은 수많은 중국인들을 포로로 데려갔습니다.

이들 가운데 종이를 만드는 장인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후 이슬람에서는 종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종이를 이용해 고대 그리스 철학 서적들의 번역서를 출판했습니다. 이와 같은 번역서들이 14세기에 유럽으로 다시 이동하면서 르네상스가 나타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유럽에서 이와 같은 광범위한 지식의 축적이 가능했던 이유로 지리적 환경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확산을 통해 발명품이나 기술을 잘 습득할 수 있는 사회는 대륙에 속해 있는 사회라고 주장하면서, 다이아몬드는 이와 같은 사회에서 자신들이 만든 것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이나 사회에서 만든 것까지 흡수함으로써 기술을 축적할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그가 제기했던 ‘왜 대륙이나 지역마다 기술이 서로 다른 속도로 발전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뉴기니인들이 유럽인들처럼 총이나 균, 쇠를 가지지 못했던 이유는 이들이 유럽인들보다 인종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리적 환경이 서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지리적 환경이 달랐기 때문에 농경이 시작된 시기가 늦었고, 가축화시킬 수 있는 대형 동물이 없었으며, 이는 병원균에 대한 면역력의 부재로 이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문자가 발명되지 못했거나 다른 지역에서 발명된 문자가 전파되지 못했기 때문에 다양한 지식과 기술의 축적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다이아몬드는 농경의 시작으로부터 시작된 정주형 생활이 기술의 발전과 그로 인한 사회 혁신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유라시아 대륙은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와는 달리 동서 방향으로 축이 뻗어 있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등장한 발명품이나 기술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빨랐습니다. 그 결과, 유라시아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빨리 병원균과 문자, 기술이 등장했고, 이는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다이아몬드는 문화적, 그리고 역사적 차이가 환경 차이의 산물이라고 주장합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나타났던 차이가 특정 민족이나 인종의 우월성 때문이라고 강조했던 기존의 역사적 서술이나 설명과는 분명히 구별됩니다.

이와 같은 환경 차이가 실제로 인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서로 다른 역사를 만들어냈는지에 대해 그는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의 역사 서술은 여전히 유럽 중심적입니다. 그는 유럽과 아시아를 통합해 유라시아로 명명하면서, 19세기 중반까지 아시아에서 나타났던 기술과 지식들을 마치 유럽인들의 것처럼 서술하고 있습니다.

환경 차이가 서로 다른 역사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원동력이라면, 19세기 중반까지 아프로-유라시아의 주변부에 위치했던 유럽이 전 세계적인 헤게모니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를 환경 차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이아몬드는 지리적 환경이 인류 역사에 미치는 영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수십 만 년 동안 수렵채집 생활을 영위했던 인류의 조상들은 변화하는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생존에 매우 중요했습니다. 다윈의 적자생존 법칙이 인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종들과 달리 더 많은 생산물을 얻기 위해 야생의 여러 종들 가운데 인간에게 가장 유리한 종들만 선택해서 인위적으로 기르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더 이상 지리적 환경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산업화가 시작되기 전까지 인간은 농경을 통해 지속적으로 환경에 영향을 미쳐왔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다이아몬드가 자신의 저서에서 설명했던 다양한 기술들 가운데 일부는 이와 같은 환경의 영향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농경이 시작된 이후 인간은 끊임없이 환경과 상호작용해왔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살펴본다면, 지리적 환경이 인류 역사에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다이아몬드의 전제는 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의 정도가 서로 다른 역사를 만들어냈다는 주장으로 확대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엄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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